외교안보 주도권 다툼 이면엔 ‘문 정부 한·미워킹그룹’ 기억
[전문가 진단] 이재명 정부 자주파 vs 동맹파 갈등

이재명 정부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라는 대형 이벤트를 초기에 개최하며 외교로 국정의 초기 동력을 추동했다. 무난하게 출발한 외교안보 정책이었으나 6개월 만에 주도권 쟁탈전이 시작됐다. 갈등의 뿌리는 어디에 있으며 정권 초기에 알력이 공개적으로 표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자주파와 동맹파의 출현은 노무현 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6·15 정상회담을 개최했지만 관료 사회는 한·미동맹이 정책의 최우선이었다. 외환위기(IMF)를 어렵게 극복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에 주력했지만 워싱턴의 반신반의 의향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2001년 집권한 미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껄끄러운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우려를 해소하는데 주력했다. 부시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김 전 대통령을 “this man(이 사람)”이라고 지칭해서 굴욕외교 논란이 일었다.
2003년 “반미(反美)면 좀 어떠냐”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며 외교 안보에서 민족주의 기조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현 국가정보원장) 등 자주파 중견 연구자들이 포진하며 국방부·외교부·통일부 등에서 민족과 동맹 우선을 둘러싸고 파열음이 나왔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직시한다는 내재적 접근법을 내세워 민족 공조가 대북과 대미 정책에 키워드로 투영되기 시작했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 동북아 균형자론 및 이라크 파병 등 현안마다 동맹파와 자주파가 부딪혔으나 노 전 대통령은 자주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달은 2004년에 터졌다. “청와대의 젊은 NSC 보좌관이 탈레반 수준”이라는 사석에서의 대화가 대통령에게 보고돼 당시 조현동 북미과장(윤석열 정부 주미대사)과 위성락 북미국장(현 국가안보실장)이 좌천되고 윤영관 외교부 장관이 경질됐다. ‘자주파 투서 사건’으로 동맹파의 입지는 크게 약화됐다. 보수 정부에서 자주파와 동맹파 갈등은 수면 밑으로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판문점 선언, 9·19 군사합의 등 남북화해 협력 정책이 가속화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싱가포르·판문점에서 세 차례 만났지만 남북 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경험은 자주파로 하여금 판을 바꾸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시켰다. 북한 문제는 대미 협상에서 통일부가 맡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6개월도 안 돼 붉어진 불협화음의 이면에는 문재인 정부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주도권 다툼이 있다.
통일부와 외교부 간 기 싸움은 대미 및 대북 협상의 권한을 둘러싸고 이전투구 수준이다. 위성락 안보실장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조율하고 있고 원 보이스로 대외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위 실장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NSC를 중심으로 대북정책을 관리해 나가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당 대표까지 나서 통일부를 지원하며 당정이 개입하는 등 확전일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등 자주파들은 현 NSC 구조가 통일부 발언권을 약화시킨다고 불만이다. 차관급인 안보실 1·2·3차장이 외교·통일·국방부 장관과 동급이어서 통일부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주 외교부가 주도한 한·미 대북정책 협의는 외교부 청사에서 통일부의 불참 속에 열렸다. 외교부와 미 국무부, 국방부와 미 전쟁부 등만이 회의에 참석했다. 두 부처 갈등이 반영된 듯 회의 공식명칭에서 ‘대북정책’도 빠졌다. 한·미 당국은 회의 명칭을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JFS) 후속 협의’로 정리했다. 이날 회의장엔 협의 명칭을 담은 백드롭(걸개) 자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정례적 대북 정책 공조 회의가 ‘제2의 한·미 워킹그룹’이 될 수 있다는 통일부의 반발은 문재인 정부 시절 가동했던 한·미 워킹그룹의 추억에서 비롯된다. 진보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6명의 전직 인사들은 “한미 양국은 대북 정책에 관해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 한·미 워킹그룹 방식으로 이를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한·미 워킹그룹은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 당시 남북 교류·협력과 대북 제재 등을 조율하기 위해 창설된 협의체다. 대북 정책에 있어 한·미 간 신속한 의견 수렴을 위해 꾸려졌지만, 미국이 남북 협력 사업을 엄격히 심의해 남북 관계에 족쇄를 단다는 비판도 제기되어 2021년 폐기됐다.
실제로 2019년 1월 독감치료제 타미플루 대북 지원은 워킹그룹이 타미플루를 싣는 화물 차량의 제재 위반 여부를 따지다 무산됐다. 그해 2월 금강산 남북 민간교류 행사에선 워킹그룹 승인 지연으로 취재진이 노트북과 카메라를 가져가지 못했다.
양측 갈등은 향후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자주파들은 정권 초기에 외교부 중심의 한·미협력 구조가 고착화되면 임기 내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한다. 특히 북한의 두 국가론으로 바늘구멍 하나 꽂을 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워킹그룹은 강력한 걸림돌이라는 입장이다.
양측의 조정은 간단치 않다. 19일 외교·통일 부처 보고가 있었지만 이 대통령이 어느 편에 손을 들어주기는 쉽지 않았다. 동맹파가 트럼프의 미국을 관리해야 하는 막중한 업무 역시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내년 성사를 기대하는 북·미 정상회담 이후 자주와 동맹파 간의 불편한 동거 관계를 교통 정리할 것이다. 대미 협상이라도 남북교류는 통일부가, 북핵은 외교부가 담당하는 이원적 구조다. 워싱턴의 미 국무부는 서울의 두 개의 부처를 교대로 담당해야 할 것 같다. 한·미 공조는 혼선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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