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도 콕 찍은 ‘한화 모델’…김승연이 뿌린 ‘함께 멀리’ 씨앗, 김동관이 꽃피웠다

안옥희 2025. 12. 1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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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진=한화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월 11일 고용노동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한화오션의 협력사 동일 상여금 지급 사례를 콕 집어 “그런 바람직한 기업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헌법적 원리”라며 기업들의 상생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 발언의 배경에는 조선업 현장에서 오랫동안 ‘당연한 관행’처럼 여겨졌던 원·하청 간 처우 격차를 정면으로 건드린 한화오션의 결정이 있었다. 이는 조선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이중 임금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결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협력사 성과급 동일 비율로” 대통령이 극찬한 ‘파격’

한화오션은 사내 협력사 근로자들에게 직영 근로자와 동일한 성과급 지급률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협력사 근로자들은 본사 직원의 절반 수준으로 성과급을 받았다. 2024년 기준 직영 직원이 기본급의 150%를 받을 때 협력사 근로자는 약 75%에 그쳤다.

이번 조치로 협력사 근로자 1만5000여 명이 직영 직원과 동일한 비율의 성과급을 받게 된다. 한화오션은 “회사의 성과를 직영과 협력사 근로자들이 함께 나누며 상생을 실천한다는 의미”라며 “동등한 성과 보상이 안정적 공정 관리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사회의 반응도 즉각 나왔다. 경남 거제상공회의소는 “원·하청 간 처우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 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끄는 의미 있는 전환점”이라며 환영 입장을 냈다. 지역 상공회의소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변광용 거제시장도 “조선산업 생태계 전반의 안정과 신뢰 회복을 도모하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화오션의 결정은 숙련 인력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고 내국인 고용 확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조선업 불황과 호황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인력 유출과 협력사 경영 불안이 반복돼 왔다는 점에서 현장에서는 이번 결정을 구조적 변화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김승연의 ‘함께 멀리’…선언에서 원칙으로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조치를 한화그룹 특유의 경영철학 ‘함께 멀리’의 연장선으로 해석한다. 이 철학의 출발점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김 회장은 2010년 인천 남동구 협력업체 사업장을 직접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도 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협력업체는 단순히 하도급업체가 아니라 가족이고 동반자이므로 서로 도와서 상생해야 합니다.”

당시 김 회장은 협력업체들의 재무적 어려움을 듣고 무보증 융자 등 실질적 지원을 지시했다. 그는 “(한화와 협력업체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가장 가까운 파트너이고 서로 도와서 상생하는 관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듬해 한화 창립 59주년 기념사에서 ‘함께 멀리’는 그룹의 핵심 가치로 공식화됐다. “아무리 큰 나무도 혼자 숲이 될 순 없습니다. 우리가 100년 기업의 영속적인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선 ‘혼자 빨리’가 아닌 ‘함께 멀리’의 가치를 새롭게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이 메시지는 창업 이념인 ‘사업보국’ 정신과 맞닿아 있다. 기업의 성장이 곧 국가와 사회의 성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인식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한화오션 시흥R&D캠퍼스에서 공동수조 시연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한화

 김동관의 ‘상생 경영’…현장에서 제도로

이 철학은 이제 장남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을 통해 현장에서 구체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화오션의 동일 성과급 지급 결정은 그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원청과 하청의 성과 보상 체계는 구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업계의 통념에 제도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비용 조정이 아니라 ‘성과를 함께 나눈다’는 메시지를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앞서 한화오션은 2022년 전신인 대우조선해양 시절 하청노조를 상대로 제기됐던 4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취하했다. 점거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법적 다툼이 장기화될수록 현장 갈등이 굳어진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김동관 부회장의 상생 경영 의지와 지역사회의 중재가 더해지며 ‘갈등의 종결’을 택했다는 설명이다. 지난 6월에는 하청 노사 간 상여금 50% 인상, 상용공 확대, 산업재해 예방 활동 명문화 등에 합의하며 90여 일간 이어진 고공 농성도 마무리됐다.

김 부회장은 상생을 과거 보상이나 갈등 봉합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방산·조선·에너지 등 주력 산업 전반에서 협력사의 기술력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끌어올리는 구조를 강조해 왔다.

그는 ‘ADEX 2025’에서 “최첨단 AI 기술로 자주국방에 기여하고 협력사들과 경쟁력 있는 국내 방산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협력사를 관리 대상이 아닌 함께 성장할 파트너로 규정하는 접근이다.

그룹 차원의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관 상생협력 협약식에서 한화그룹은 중소기업과 공동 발전 협약을 체결했다. 그룹을 대표해 참석한 류두형 대표는 “앞으로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공정·투명한 상생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사진=한화오션

 ‘함께 멀리’…협력사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장

김 회장이 2021년 신년사에서 밝힌 메시지도 이 같은 흐름과 맞닿아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시하고 ‘함께 멀리’의 동반성장 경영을 확대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 기조는 협력사와의 상생을 넘어 미래 세대와 사회 전반을 향한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상생을 위한 활동 가운데 하나인 한화사이언스챌린지는 올해로 14년째를 맞았다. 전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과학 아이디어 경진대회로 지금까지 1만8000여 명이 참여했다. 올해는 ‘Saving the Earth’를 주제로 20개 팀이 본선에 올라 환경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 클래식 교육 기회가 제한적인 청소년을 위한 ‘한화청소년오케스트라’도 12년째 운영 중이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활동 역시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2000년 한 시각장애인의 이메일을 계기로 시작된 점자 달력 제작은 26년째다. 5000부로 시작한 달력은 올해 4만 부까지 늘었고 점자와 묵자를 함께 표기해 활용성을 넓혔다.

‘한화와 함께하는 서울세계불꽃축제’ 역시 1999년 “불꽃놀이를 공익적인 문화 축제로 만들어 보자”는 김 회장의 제안에서 출발해 시민 문화 행사로 자리 잡았다.

특히 올해는 “더 많은 시민이 불꽃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더 높이, 더 크게’ 연출하자”는 김 회장의 당부로 마포대교(서쪽) 방향과 한강철교(동쪽) 방향, 양 구간에서 시도하는 ‘데칼코마니’ 불꽃 공연을 통해 더욱 많은 관람객이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재계에서는 한화오션의 이번 결정을 창업 이념인 ‘사업보국’에서 김 회장의 ‘함께 멀리’, 김 부회장의 상생 경영으로 이어져 온 그룹의 일관된 기조가 현장에서 구체화한 사례로 보고 있다.

대통령의 공개 언급으로 주목을 받은 만큼 선언적 상생을 넘어 제도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관행처럼 굳어져 온 조선업의 원·하청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대기업이 먼저 상생 모델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한화오션의 선택은 업계 전반에 작지 않은 파장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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