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일본 ‘곰 공격’ 비상, 변해야할 쪽은 ‘인간’

박영서 2025. 12. 1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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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올해의 한자’로 뜻밖에도 ‘熊’(웅)이 선정됐다. 산속에 머물러야 할 곰이 마을로 내려와 일본 사회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관계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를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을 밀어낸 대가를 결국 인간이 치르는 것이다.

◆올해의 한자는 ‘熊’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는 지난 12일 교토(京都)에 있는 사찰인 기요미즈데라(淸水寺)에서 올해의 한자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의 한자로 선정된 ‘熊’은 엽서나 인터넷을 통해 접수한 18만9122표 가운데 가장 많은 2만3346표를 받았다. 올해 들어 일본 각지에서 곰 출몰이 잇따르며 전례 없는 피해가 발생했고, 이로 인한 사회적 충격이 투표 결과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올해의 한자는 1995년에 시작돼 올해로 31번째 선정이다. 정치도, 경제도, 외교도 아닌 야생의 곰이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쌀 미’(米)가 2만3166표로 2위에, ‘높을 고’(高)가 1만8300표로 3위를 차지했다. ‘米’는 일본의 쌀값 급등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한자로 미국을 ‘米國’으로 표기한다.

‘高’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신임 총리의 성(姓)과 고물가를 연상시키는 한자여서 많은 표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곰 습격’ 사상자 역대 최다

환경성이 집계한 인적 피해(속보치) 현황에 따르면 일본에서 지난 4∼11월 곰의 습격을 받아 숨지거나 다친 사람이 230명에 달한다. 이는 환경성 집계로 종전 최다였던 2023년도의 연간 피해자 수 219명을 이미 넘어선 수준으로 역대 최다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13명으로, 역시 최다였던 2023년도 6명의 2배를 웃돌았다.

지역별 피해자 수를 보면 아키타(秋田)현 66명, 이와테(岩手)현 37명, 후쿠시마(福島)현 24명, 니가타(新潟)현 17명 등 순이다. 주로 일본 북부 지역이다. 이 기간 곰 포획 건수는 9867마리로, 역시 2023년도의 9276마리를 넘어 역대 최다를 새로 썼다.

곰 출몰 신고 건수(홋카이도, 규슈, 오키나와 지역 제외) 역시 3만6814건으로, 2023년도의 2만4348건을 뛰어넘었다.

환경성은 “개체수가 늘은 데다 주민 생활권에서 먹이를 찾는 경험을 쌓은 곰도 증가했을 것이다”며 “12월에도 계속해서 출몰하고 있다”고 경계감을 피력했다.

◆신성시됐던 곰, 이젠 퇴치 대상

일본에서 곰은 인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일본 땅에 살아온 존재다. 일본 열도가 아직 대륙과 이어져 있던 수만년 전, 곰은 북쪽에서 남하해 정착했다.

오늘날 일본에 서식하는 곰은 크게 두 종류다. 홋카이도(北海道)에 사는 불곰, 혼슈(本州)의 도호쿠(東北)·주부(中部)·주고쿠(中國) 산지에 사는 아시아흑곰(반달가슴곰)이다. 불곰은 체중 300㎏을 넘는 대형종으로 러시아 극동지역 곰과 같은 계통이고, 흑곰은 가슴의 초승달 모양 흰 무늬가 특징이다. 규슈(九州)와 시코쿠(四國)의 곰은 이미 멸종했다.

일본 역사와 민담 속에서 곰은 두려움이자 존경의 대상이었다. 곰은 산의 주인으로 함부로 대하면 재앙을 부르는 상징이었다. 특히 아이누 문화에서 곰은 ‘신(神)의 화신(化身)’이었다. 아이누족은 곰을 ‘가무이’라 부른다. 일본어의 ‘神’(가미)과 같은 말이다. 웅신(熊神)인 것이다. 아누이족은 곰을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온 존재라고 인식해 신(곰)을 다시 하늘로 돌려보내는 ‘이오만테’ 의례를 치렀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일본인들의 곰 인식은 변화했다. 메이지 시대 이후 사냥과 개간이 확대되면서 곰은 ‘퇴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다 전후(戰後) 보호 정책이 펼쳐졌다. 정부가 곰 사냥을 금지하고 도시로 인구가 몰리면서 곰의 서식지는 넓어졌고 개체 수는 늘어났다. 이에 따라 주거지 침입과 공격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곰은 다시 퇴치 대상이 됐다.

◆곰이 묻는 ‘책임의 경계’

일본 곰은, 겁을 주면 도망가는 북미흑곰과 달리 사납다. 재팬타임스 분석에 따르면 일본에서 곰에게 사람이 살해될 확률은 미국보다 4.2배 높다. 더구나 곰은 근거리에서 갑작스럽게 공격하는 동물이다. 인간이 공격을 받으면 치명적이다.

일본 정부는 곰 사고를 막기위해 올해 ‘긴급 총기사냥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숙련된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자위대·경찰 출신 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총기 특성 차이와 생태 지식 부족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곰의 행동 변화다. 이제 곰의 활동 무대는 더 이상 산속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 생활권에 적응한 곰은 고영양 먹이와 안전한 환경을 학습했고, 그 결과 과거보다 대담해졌다. ‘신세대 곰’이다. 이는 단기 대응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변화다.

일본에서 곰은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가 됐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관계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곰은 산의 주인이자 신의 화신이었고, 동시에 인간의 개입 속에서 보호와 방치 사이를 오갔다. 곰이 일본 사회에 묻고 있다. 인간이 자연을 어디까지 밀어냈는지,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를. 바뀌어야 할 것은 곰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다.

박영서 기자 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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