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 15만원’ 농어촌 기본소득... 전남 신안 인구 2600명 늘었다
기본소득 주려다보니 예산 부족
농민·아동수당 등 다른 복지수당 깎아
주로 은퇴자·1020대 유입 많아

정부가 다음 달부터 시행하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두고 전국 곳곳이 진통을 겪고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지역 소멸 위기에 놓인 농어촌 지역 주민에게 2년간 월 15만원씩 지역화폐를 주는 사업이다. 소득이나 나이 관계없이 주민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정부는 지난 10월 공모를 거쳐 경기 연천, 강원 정선, 충남 청양, 전북 순창, 전남 신안, 경북 영양, 경남 남해 등 7곳을 시범 지역으로 선정했다. 지난 2일 충북 옥천과 전북 장수, 전남 곡성 등 3곳을 추가했다.
이들은 “선정돼 기쁘지만 뒤로는 돈 때문에 곡소리 난다”고 했다. 정부는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필요한 예산의 40%는 국비로 하고 나머지 60%는 도와 군이 반반씩 부담하도록 했다. 15만원 중 6만원은 정부가, 9만원은 도와 군이 나눠 부담하는 식이다. 도가 예산을 대지 않으면 선정이 취소된다. 분담 비율을 이렇게 정하니 사업 시작 전부터 예산을 놓고 갈등이 속출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을 이미 다 짠 상황에서 갑자기 수백억원을 부담하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인데 지자체 분담 비율이 너무 높다” “생색은 정부가 내고 부담은 지자체가 진다”는 소리도 나온다.
재정이 열악한 군은 기본소득 예산을 대기 위해 농민수당, 아동수당 등 다른 복지 수당을 줄이거나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을 깎고 있다.
◇月 15만원 선정 이후 신안 인구 2600명 늘어… 지자체는 재원 마련 비상
남해군의 경우 경남도의회가 경남도가 분담해야 할 예산을 삭감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남해군의원이 도의회 앞에서 삭발 시위를 하기도 했다. 최근 도의회에서 예산이 통과됐지만 경남도 분담액(210억3600만원)의 60%뿐이라 앞으로도 진통이 예상된다. 경남도는 내년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나머지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정부가 지자체와 협의 없이 분담 비율을 정해 갈등이 유발되고 있다”고 했다.
시범 지역으로 선정된 군은 30% 예산을 대기도 벅차 다른 사업 예산을 줄이는 등 진땀을 빼고 있다. 기본소득 예산으로 486억2000만원을 마련해야 하는 순창군은 농민수당(103억원), 아동수당(21억3000만원), 청년종자통장(5억1100만원) 등 다른 사업 예산을 깎았다.
그러자 시민단체 등이 ‘줬다 뺐는게 어딨어!’라고 쓴 현수막을 내걸고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부당한 예산 삭감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순창군 관계자는 “지역 소멸 위기에 놓인 군 지역은 그만큼 재정 여력이 없다”며 “선정됐는데 포기할 수도 없어 버거운 상황”이라고 했다.
재정자립도가 전국 최하위 수준인 전남 신안군은 454억원을 마련해야 한다. 올해 신안군 예산(7000억원)의 6% 수준이다. 특히 신안군은 기본소득 월 15만원에 자체적으로 5만원을 더 얹어주기로 해 부담이 크다. 신안군 관계자는 “기본소득 예산을 짜기 위해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예산을 줄이고 필수 복지 예산도 조정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연천군 관계자는 “실거주 여부 등을 확인할 계약직 직원 인건비 등 부대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정부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 정책을 펴고 있다”고 반발했으나 “청양군민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이번 한 번만 도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입장을 바꿨다.
◇인구 급증.. 대체 어떤 사람들?
시범 지역은 갑자기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공인중개사 이모(연천군)씨는 “요즘 연천에서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월세·전세도 씨가 말랐다”고 했다. 지난 9월 4만1027명이었던 연천군 인구는 시범 지역으로 선정된 이후 951명 증가했다. 신안군은 최근 두 달 새 2662명이 전입했다. 지난 9월 3만8883명이었던 인구가 11월 4만1545명으로 증가했다. 해마다 인구가 줄던 신안군은 5년 만에 4만명을 회복했다. 지난 10월 시범 지역 선정을 기점으로 ‘수직 상승’했다. 신안군 관계자는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몰릴 줄은 몰랐다”며 “예산을 초과해 시범 지역 선정 발표 이후에 전입한 사람은 나중에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했다. 정선군, 남해군 등도 시범 지역 선정 전후 인구가 1000명 이상 증가했다. 영양군은 11월 말 인구가 1만5793명으로 한 달 새 325명 늘었다. 이는 한 달 기준 33년 만에 가장 많이 증가한 것이라고 영양군은 밝혔다. 영양군 관계자는 “온갖 용을 써도 인구 유출을 막을 길이 없었는데 농어촌 기본소득이 ‘구세주’가 됐다”고 했다.

남해군이 이번에 전입한 사람을 분석해보니 경남 도시 지역에서 온 10·20대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남해군 관계자는 “학업 때문에 창원·진주·사천 등으로 주소를 옮겼던 학생들이 부모 집으로 다시 주소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남해의 경우 부산 사하구에서 전입이 급증했다고 한다. 남해군 관계자는 “부산 사하구는 남해군 출신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며 “평소 귀촌을 생각했던 은퇴자들이 기본소득을 계기로 낙향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신안군은 근처 광주광역시나 전남 목포에 사는 은퇴자들이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정 수급을 노린 위장 전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청양군이 지난 10월 이후 전입한 주민 50명을 표본 조사한 결과 전입 신고만 하고 실제 살지 않는 주민이 2~3명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양군 관계자는 “농어촌 기본소득 때문에 전입한 것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다.
◇효과 있을까?
이 사업은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인 2022년 경기 연천 청산면에서 시작한 실험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경기도는 100% 도비를 들여 청산면 주민에게 5년간 월 15만원씩 지급하고 있다.
청산면 인구는 2021년 3895명에서 2022년 4217명으로 322명(8.3%) 증가해 주목받았다. 그러나 1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작년에는 4068명이었다.
기본소득이 인구 감소세를 막는 데 기여했다는 반론도 있다. 2021~2024년 연천군의 인구는 4.3% 감소했지만 청산면은 4.4% 증가했다는 것이다.
경기도가 지난 9월 발표한 ‘농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정책 효과 분석 연구 용역’ 결과에 따르면, 2022~2024년 청산면에는 미용실, 정육점, 편의점 등 가게 39곳이 새로 생겼다. 보고서는 “지역 경제가 활성화하는 효과가 입증됐다”면서도 “지속성은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김기흥 경기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지역 소멸 위기에 놓인 농어촌은 정주 기반이 열악한 곳이 대부분”이라며 “이를 함께 개선하지 않으면 유입된 인구도 2년 뒤 증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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