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발 금산분리 논란, 핵심은 지배구조다 [세상읽기]

한겨레 2025. 12. 18. 20:4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이 지난달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동범 |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첨단 기술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어떻게 뒷받침할 것인지를 두고 규제 완화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반도체·인공지능(AI) 투자 촉진을 위한 제도 개선이 거론되면서, 뜻밖에도 금산분리 원칙이 논쟁의 중심에 섰다. 규제 합리화와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구체적인 해법을 놓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논의가 혼란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여러 쟁점이 한꺼번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투자를 어떻게 촉진할 것인지, 특정 산업에 대한 선별적 지원이 타당한지, 기존 규제 원칙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가 동시에 거론되며 초점이 흐려졌다. 그 결과 ‘금산분리 완화’라는 표현 아래 서로 다른 문제의식이 뒤섞였다. 상황의 정리를 위해서는 우선 금산분리 원칙의 본래 취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금산분리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핵심은 금융회사가 특정 기업집단의 내부 자금 조달 창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 시장에서는 사업의 전망과 위험에 대한 평가를 거쳐 자금이 배분되지만, 계열 금융사를 통한 자금 공급은 이러한 규율을 우회해 경제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사업으로까지 자금이 흘러갈 가능성을 키운다.

물론 모든 투자는 원칙적으로 자기 책임이며, 기업 내부에서 자원 배분이 왜곡된다고 해서 곧바로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은행이나 증권사처럼 금융 안정성과 직결되는 회사의 경우, 부실이 공적 기금 투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사적 판단의 결과가 사회 전체의 비용으로 전가될 위험이 생기고, 이 지점에서 금산분리 원칙은 규범적 정당성을 갖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에 제안된 방안이 금산분리의 취지를 곧바로 위배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구상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은 현행 제도상 ‘금융업’으로 분류돼 규제와 충돌할 소지가 있지만, 실질은 금융기법을 이용해 특정 투자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을 돕는 도구에 가깝다. 해당 프로젝트 역시 경제성 자체가 문제 되는 사안은 아니며,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부담은 원칙적으로 참여 투자자가 감내한다.

지분 구조상 이 법인이 ‘자회사’로 분류돼 지주회사 규제의 적용을 받는 점도 논란거리다. 그러나 통상적인 사업 확장을 위한 자회사라기보다는 기존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는 점을 고려하면, 규제 적용이 과도하다는 주장에도 일정한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규제 완화와 관련한 특혜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는 굳이 규정을 바꾸지 않더라도 활용할 수 있는 정공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상증자 등 전통적인 자금 조달 수단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에스케이의 경우 이 방식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현재의 지분 구조하에서 하이닉스가 신주 발행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경우, 지주회사 차원의 지배력이 약화될 수 있다. 기존 지배구조의 유지를 전제로 자금 조달 방안을 모색하다 보니,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소유가 분산되고 특정 주주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것은 자본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지주회사 규제 역시 소수 지분으로 회사를 지배하며 발생할 수 있는 폐해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주주와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강화하려는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 선진화 논의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이를 거슬러 ‘전략적 중요성’을 명분으로 특정 주주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예외를 허용하려 하니 특혜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배주주의 장기적 안목과 추진력이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저성장 국면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 역시 절실하다. 지배구조 문제가 발목을 잡아 하이닉스가 필요한 투자를 제때 집행하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아쉬운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도를 최선의 경우만을 전제로 설계할 수는 없다. 현행 규제에 불합리한 부분이 있을 수는 있지만, 긍정적인 전망을 근거로 성급히 완화할 경우 향후 악용의 여지도 함께 열린다. ‘전략 산업’이라는 명분 아래 성장 논리를 앞세워 지배구조 문제를 뒤로 미루는 접근은 과거 개발 시대의 논리를 떠올리게 한다. 자본시장 선진화를 이야기해온 흐름과는 어딘가 어긋나 보이는 이유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