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인공지능과 직업생태계 변화

월천꾼(섭수꾼), 보장사, 착호갑사, 매품팔이, 추노 등.
지금은 사라진 조선시대 직업들이다.
월천꾼은 사람을 업고 물이 불어난 하천을 건너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보장사는 고을과 고을을 오가며 공문을 전달한다.
착호갑사는 호랑이를 잡아 호환을 막는 전문 특수부대를 일컫는다. '경국대전'에는 착호갑사 수를 440명으로 명시했다.
매품팔이는 돈을 받고 매를 대신 맞아주는 사람이다. 추노는 달아난 노비를 붙잡아 오는 일을 한다.
월천꾼은 하천에 다리가 놓이면서, 착호갑사는 호랑이가 이 땅에서 사라지면서, 추노는 18세기 후반 정조 때 노비추쇄관을 혁파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그 같은 직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그 뒤에 어떻게 됐을까.
이런 궁금증이 요즘 새삼 화두가 되고 있다.
인공지능(AI) 때문이다.
AI는 1950년대 중반 학문 분야에 이미 들어섰지만 대중에게 인식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6년 3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눈이 TV 생중계로 쏠렸다. 당시 세계 최상위급 프로 바둑 기사인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국이다. 결과는 알파고의 4승1패 압승.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한국기원은 알파고에 프로 명예 단증(9단)을 수여했다.
알파고의 승리로 AI는 새 장을 열었다.
그 무렵 한국고용정보원은 영국 옥스퍼드대 칼 베네딕트 프레이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가 제안한 미래 기술 분석 모형을 활용해 우리나라 주요 직업 406개 중 AI와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직업을 분석·발표했다.
AI·로봇으로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직업은 콘크리트공, 정육·도축원, 고무·플라스틱제품 조립원, 청원경찰, 조세행정사무원 등이 최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에 화가·조각가, 사진작가·사진사, 작가, 지휘자·작곡가·연주가, 애니메이터·만화가 등 인간의 감성에 기초한 예술 관련 직업은 AI·로봇이 대체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하지만 지난해 한 지방교육청이 박람회에 쓸 주제가를 공모한 결과 1등에 뽑힌 곡이 초등교사가 AI로 만든 노래로 밝혀지면서 심사를 맡았던 유명 작곡가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제 뭐 먹고 살아야 하나"며 헛웃음을 지었다.
예술 분야와 함께 뉴스 앵커, 외국어 번역 등도 이미 AI 영역에 들어섰다. 쉽게 대체할 수 없다고 본 인간의 창조 영역까지 AI가 빠르게 점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내 일자리를 AI에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4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20~5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 중 33.6%는 생성형 AI가 자신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답했다. 과거 수작업으로 하던 일이 자동화하면서 많은 직장인이 실직의 두려움에 놓였다.
지금의 AI 불안은 자동화 불안과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두려움이 더 크게 다가오는 이유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을 만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인간 지능의 1만배에 달하는 초인공지능(ASI) 시대가 눈앞에 왔다"고 했다. 인공지능도 아니고 초인공지능이다.
AI가 직업생태계나 산업생태계의 변화를 주도할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의 거대한 변곡점이 되는 문명 전환의 중심에 선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신속하고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국민의 불안 심리는 걷잡을 수 없다. 법령과 조례 등 관련 제도가 AI 시대에 뒤처지지 않도록 선제적인 손질과 촘촘한 설계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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