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동학농민군, 일본군 개입과 관군에 의해 짓밟히다
경북 상주서 동학농민군 무장 활동 본격화
1894년 5월 일본군 진주하며 병참선 구축
상주 낙동·태봉 병참부 설치에 무장 강화
8월 25일 예천-문경서 일본군과 첫 충돌
8월 29일 문경 석문서 동학농민군 첫 교전
9월 22일 1만여 동학농민군 상주읍성 점거
9월 29일 일본군 공격으로 읍성 다시 함락
상주에 소모영 설치돼 조직적 토벌 시작
접주·지도자급 잇따라 총살·참수·효수
시신 실은 달구지 지나간 ‘상주아리랑길’





경북 상주의 동학농민군 움직임은 1894년 5월께 시작된다. 해월 최시형의 문바위 기포가 있기 전이다. 이 무렵 일본군이 조선 땅에 군화를 내디딘다. 그리고 경복궁을 침탈하고 고종과 민 황후를 위협한다. 김홍집 친일내각이 이때 수립된다. 일본군은 청일전쟁 준비를 위해 부산에서 한양까지 병참선 가설을 서두른다. 부산에서 낙동강을 따라 한양까지 이른다. 아울러 40리마다 병참선을 지키는 군인 40명을 주둔시킨다. 이 부대가 병참부다. 상주에는 낙동과 태봉 두 곳에 들어선다. 이런 움직임을 지켜본 동학농민군은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무장활동을 강화한다. 일본 히로시마 대본영은 장차 조선 병탄에 걸림돌이 된다며 동학농민군에 대한 '살육' 명령을 내린다.
8월25일 예천 용궁현과 문경 산양 경계지점에서 동학농민군과 일본군 사이에 첫 충돌이 일어난다. 동학농민군은 태봉병참부 공격을 계획했다. 정보를 입수한 병참부 다케우치 대위는 병사 둘을 이끌고 주둔지를 정찰한다. 그런데 그만 동학농민군 초병에게 발각된다. 대위와 병사 1명은 그 자리에 살해된다. 나머지 1명은 손가락이 잘리고 총을 빼앗긴 채 풀려난다. 이 소식은 부산 일본군 중로병참감 요시가와 대좌에게 전해진다. 그는 충주와 문경병참부에 태봉병참부 지원을 명령한다. 8월29일 공병 고토 소위가 이끄는 일본군 25명과 인부 12명은 문경 석문에 집결한 동학농민군을 공격한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사상 첫 교전이다. 동학농민군 600여명은 불의의 습격에 흩어진다. 2명이 전사하고 다수가 부상당한다. 병영 11채도 불태워진다. 화승총 103정, 도검 4자루, 창 3자루, 말 2마리, 동전 9관 등을 빼앗긴다.
8월28일 인근 예천에서는 동학농민군이 예천관아 공격에 나섰다가 민보군의 공격을 받고 흩어진다. 이들은 다시 상주로 집결한다. 함창에서 빠져나온 이들도 합세한다. 대략 1만여 명에 이르는 이들은 9월 22일 상주관아가 자리한 상주읍성을 공격한다. 당시 읍성에는 100여명의 관군이 있었지만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들은 선산, 김천 동학농민군과 함께 예천을 재공격한 뒤 안동과 의성을 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불과 7일 만인 9월29일 상주읍성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의 공격을 받게 된다. 부산수비대 후지타 부대였다. 8월29일 낙동에 도착해 진압 명령을 받고 상주읍성을 공격한 것이다. 일본군은 줄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넘어온다. 이들과 3시간여 접전끝에 동학농민군은 패퇴한다. 무기의 열세로 전사자 50명과 2명의 포로를 남긴다.
상주관아에 다시 모인 양반 향리층은 500명 민보군을 모아 재공격에 대비한다. 이어 9월29일 경상 북부 토벌부대장 격인 소모사로 상주의 전 승지 정의묵이 임명된다. 장관청이던 벽유당 건물이 상주소모영이 된다. 안동, 상주, 문경, 예천 등 경상도 15개 고을이 그 관할이었다. 정의묵은 유생 김석중을 유격대장으로 차출한다. 김석중은 200명 군사를 이끌고 영동, 청산, 보은 등 충청도 동학농민군 토벌에 앞장선다. 그해 12월 17, 18일 보은 북실 전투에서는 2,700여명을 참살한다.김석중은 이 공로로 경상관찰사가 되지만 문경 이강년 의병대장에 의해 참살된다. 해월 최시형과 의암 손병희는 북쪽으로 몸을 피한다. 소모영은 이듬해 1월 24일 해체 될 때까지 동학농민군 토벌 거점이 된다.
상주읍성을 점거했다 빼앗긴 동학농민군들은 상주 서북부 산속으로 피신한다. 그러나 접주나 지도자급은 관군과 유격대의 끈질긴 수색으로 붙잡혀 처형된다. 소모영 설치 이전 체포된 접주나 지도자급도 9명이 된다. 이들은 장날 10월22일 상주읍성 태평루앞 형장에서 가장 먼저 처형된다. 그리고 11월 7일 체포돼 끌려온 화북면 임곡 대접주 강선보는 '거괴'라는 이유로 총살 아닌 참수형에다 효수까지 당한다. 그는 처형 직전 어머니를 불러 달라고 했고 도착하자 그 앞에서 참수를 당한다. 어머니는 아들의 머리를 치마에 감싸 안고 임곡까지 걸어와 마을 앞 계곡에 묻는다. 지금도 그 무덤이 남아 있다. 11월22일 체포된 접주 남계일, 손덕여, 최선장, 이의성, 장판성, 피색장, 억손 등 6명은 24일 총살된다. 12월14일 전날 체포된 남촌 접주 최인숙, 윤경오, 김순녀, 전명숙 등 4명이 효수된다. 이들의 시신은 상주 북천건너 공동묘지에 가매장된다. 이때 시신을 끈 달구지가 지나간 상주 계림동 일대 고갯길이 '상주아리랑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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