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전기료 '年 3.2조'… AI반도체 증설 땐 감당못할 판
작년 단번에 10% 인상하며
반도체·철강 등 원가 직격탄
SK하이닉스도 年1.2조 부담
美 산업용 싸고 가정용 비싸
韓 '역전 현상'에 기업 이탈
고려아연 美투자 결단 이어
제2의 포항·온산 나올수도

제련·철강 등 전통적인 전력 다소비 업종은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가 핵심 반도체 기업들까지 전기요금 급등에 따른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산업통상부와 한국전력이 산업용 전기료를 평균 9.7%(대기업용 10.2%) 인상하면서 기업 부담은 더욱 커졌다. 재계에서는 상위 20대 법인이 부담하는 전기료만 연간 1조2000억원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철강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는 전기요금을 관리 가능한 원가로 봤지만, 이제는 환율이나 원자재 가격 못지않은 리스크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의 미국 투자 결정은 이러한 고민이 집약된 사례로 평가된다. 국내 제련 업계는 공급과잉과 전기료 상승이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해 있다. 국제납아연연구그룹(ILZSG)은 내년 글로벌 시장에서 아연 27만1000t, 납 10만2000t의 공급과잉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고려아연이 미국 테네시주에 건설 중인 신규 공장 내 아연 30만t, 납 20만t 규모의 물량까지 더해질 경우 제품 가격 하락과 제련수수료(TC) 감소, 전기료 부담이 겹치는 '삼중고'를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공급과잉 국면에서 제련 원가의 30~40%를 차지하는 전력 비용은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꼽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기요금 격차를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물량은 미국 공장으로 이전되고, 온산 공장은 가동률 하락과 적자에 시달리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제련 업계 관계자는 "전기요금이 킬로와트시(kWh)당 수십 원만 달라도 연간 수백억~수천억 원의 비용 차이가 발생한다"며 "미국 제련소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국내 제련소 가동률이 조금만 떨어져도 구조조정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미국 제련소는 새로운 수요처를 겨냥한 투자"라며 "핵심 광물 신규 설비투자까지 감안해 국내 채용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도 전기료에 민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전력공사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력 다소비 상위 20대 대기업의 전력 사용량은 8만4741GWh로 전국 가정용 전력 사용량(8만6989GWh)의 97.4%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는 2만2409GWh로 단일 기업으로 전체 산업용 전력의 약 17%를 사용했다.
같은 자료와 상위 20대 법인 평균 단가(kWh당 146.37원)를 일괄 적용해 단순 추정하면, 삼성전자는 연간 약 3조2600억원, SK하이닉스는 1조1700억원 안팎의 전기료를 부담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24시간 가동되는 반도체 공장 특성상 전력 사용량은 실제 가동률과 상관없이 고정적일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전기료 인상 추세가 이어지면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는 기업들에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앞으로다.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화성에 첨단 라인을 증설하고 있고, SK하이닉스는 경기 용인에 약 126만평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 중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공정 미세화와 클린룸 가동에 필요한 전력 수요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냉난방·클린룸 유지, 노광장비·이온주입기·식각장비 등 첨단 설비 가동에 전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만큼 전기료 인상은 곧바로 웨이퍼당 제조 원가(OPEX)를 밀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업계에서는 전기료가 지금 수준으로 계속 오르면 국내 팹 증설 투자 자체가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기료 구조의 왜곡도 산업계 불만을 키운다. 상당수 국가에서 가정용 전기료가 산업용보다 비싼 것과 달리, 한국은 산업용 전기료가 가정용보다 훨씬 비싸다.
미국은 산업용 전기료가 낮지만 가정용은 MWh당 164.8달러로 산업용의 두 배에 가깝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 필요한 건 한국에 공장을 붙잡아둘 수 있는 최소한의 전기료·입지 전략"이라며 "해법을 못 만들면 제2·3의 포항·온산 같은 사례가 줄을 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국제유가 급등과 한전 경영난을 감안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점은 이해하지만 산업용에 집중된 요금 인상으로 기업들의 부담이 한계에 다다랐다"며 "산업용 전기요금의 과도한 인상은 자제하고 전기요금 체계와 관련된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성 기자 / 박민기 기자 / 신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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