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공원의 정치학:누구의 공간인가?

김천권 2025. 12. 18. 15:1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김천권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서울 영등포구 양화대교 초입에 '선유도공원'이 있다. 조경 전문가 전영선의 대표 작품으로 꼽히는 선유도공원은 한강 변에서 여유와 평온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복잡한 도시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천천히 산책할 수 있는 공간,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도시공원이다.

그래서 영국 작가 폴 드라이버(Paul Driver)는 공원은 바쁜 일상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괄호와 같은 공간이라고 표현했고, 학자이며 언론인인 이어령은 공원을 인체의 배꼽에 비유하며, 불용의 공간이지만 중심에 비어 있기에 전체가 산다고 말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서 공원은 잠시나마 마음을 진정시키며 긴장을 풀고 자연을 접하게 하는 공공의 공간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공원 내부를 들여다보면 권력관계가 확연히 드러난다. 공원에 설치된 시설들을 살펴보자. 먼저 눈에 띄는 게 농구장, 다음으로 놀이터, 체육시설이 있으며, 나무와 꽃으로 이루어진 조경이 들어서 있다. 좀 더 큰 공원에는 팔각정, 공원 조성 기념비 그리고 풋살 경기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한마디로 도시공원이 거의 표준화·획일적이라는 느낌이다. 이제 왜 공원에서 권력관계가 연상되는지를 이해하셨으리라! 농구장, 풋살 경기장은 물론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여성도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공원 설계에 지역 주민의 의견이 모아졌다면 이런 구조로 공원이 만들어졌을까?

필자의 미국 유학 시절, 물줄기 흐르는 작은 연못에서 노는 오리, 그 옆을 산책하는 가족과 조깅하는 여성, 책을 읽는 노인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폭의 평화로운 그림 같았다.

그러나 우리 공원에서는 이런 풍경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이는 공원 설계가 오랫동안 남성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축구장, 농구장, 운동 트랙 등 체육 위주의 시설이 우선시되었고, 여성과 노인, 어린이들을 위한 조용한 휴식 공간이나 산책로, 연못·정원 등은 상대적으로 적게 배치됐다. 표면적으로는 모두를 위한 공공 공간이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이용자의 필요를 외면한 채 남성이 공간을 독점해 온 것이다. 성별·나이·신체 조건·문화적 배경에 따라 공원을 이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따라서 이제는 도시공원이 단순한 체육·여가 공간을 넘어, 다양한 삶의 방식을 포용하는 공간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도시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그래서 공원은 단순한 쉼터를 넘어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에 화답해야 할 시점이다.

/김천권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Copyright © 인천일보 All rights reserved - 무단 전재, 복사,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