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으로 파괴됐다 다시 따오기 비상한 희망의 늪으로

함안 용화산 앞을 지나면서 남강은 낙동강과 한 몸이 되어 흐른다. 낙동강은 함안과 창녕의 경계를 이루며 동쪽으로 흐른다. 창녕의 여러 하천 가운데 낙동강과 가장 먼저 만나는 하천은 토평천이다. 토평천은 화왕산 뒤쪽 열왕산에서 발원해 대지면과 우포늪을 거쳐 낙동강에 합류한다. 대지면은 국내 최초로 양파가 본격 재배된 곳이다.
1909년 이후 일본에서 들어온 양파는 만석꾼 집안이었던 대지면 성씨 문중에 의해 체계적으로 재배되었다. 지금도 창녕은 전국 5대 양파 주산지 가운데 한 곳이다. 김정일의 장남으로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당한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이 이곳 성씨 집안이다.

우포늪은 한반도의 형성을 이해하는 고문서이기도 하다.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1만 5000년 전 빙하기가 최대였을 때 바다의 수면은 지금보다 100m 정도 낮았다. 이때 바다(남해)는 낙동강하구에서 60㎞ 정도 떨어져 있었고, 낙동강과 우포늪은 폭이 좁고 깊은 골짜기였다. 빙하가 녹으면서 바닷물의 수면이 점차 높아졌다. 1만 년쯤 전에는 제주도가 육지와 분리되어 섬이 되었고, 6000년 전쯤 수위가 지금 상태로 안정화가 되었다. 우포늪의 본격적인 형성은 그 이후이다.
우포늪을 거쳐 낙동강으로 빠져나가는 토평천은 우포늪보다 해발고도가 높다. 그래서 홍수가 나면 낙동강 물이 우포로 역류한다. 우포늪의 수심은 평소에는 1m 내외이지만, 홍수가 들면 강물이 역류해 4~5m로 수위가 상승한다. 평소에도 물이 잘 빠지지 않는 우포 일대는 5000~6000 년쯤에 현재처럼 물이 고여 있는 늪이 되었다.

개발 시기 '늪'은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나 상태를 비유하는 부정적인 어감의 단어였다. 그래서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습지를 개간해 농경지를 만들었다. 연안 습지인 갯벌 간척도 마찬가지였다. 17세기 조선 굴지의 부자였던 윤선도 집안의 부는 전남 해남과 진도 일대의 간척사업 덕분이었다.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도 서산 천수만을 막아 거대한 농경지를 조성하면서 찬사를 받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습지의 수질 정화, 담수 제공, 홍수 방지 기능 등이 알려지면서, 습지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농경지 간척을 위해 현대 정주영 회장이 서산 천수만에 건설했던 방조제를 허무는 공사가 추진되고 있을 정도이다. 찬사를 받았던 세계 최대 규모의 새만금 간척지도 지금은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우포늪은 한반도 최대의 내륙 습지이다. 100여 년 전보다는 규모가 3분의1 정도 줄었다. 1930년대 우포늪 동쪽에 대대제방이 축조되어 늪이 농지로 바뀌면서 면적이 줄어든 것이다.
남한에서 가장 긴 길이 510㎞의 낙동강은 하류로 갈수록 경사가 완만해지고 흐름이 느려진다. 장마철이나 홍수가 들면 강이 쉽게 범람해 주변 저지대에 물이 고여 자연적인 늪지가 많이 형성되었다. 범람이 끝난 늪지에는 다양한 물속 생물들이 모여 살았다. 물이 빠지면 늪지 이외의 땅은, 범람으로 유기성분이 가득한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 근대 들어 토목기술이 발달하면서 낙동강 중·하류 자연 상태의 저지대 습지는 개간을 통해 점차 농지로 바뀌었다. 1910년대까지만 해도 낙동강 배후 100여 곳에 이르던 내륙 습지는 하나하나 사라져갔다.
우포늪이 한반도 최대의 내륙 습지가 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생성형 인공지능인 챗GPT는 1960년대까지 남아있던 함안 유전늪은 우포늪의 최소 2배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유전늪은 낙동강과 남강 합류 수역 부근 저지대에 있어 조운선 같은 꽤 큰 규모의 선박들이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유전늪은 일제강점기 이후 계속 줄어들었다. 습지는 메워져 농지가 되었다가 산업화 시기에는 공업용지와 도로, 주택단지가 되었다.

습지의 생태·사회·경제·문화적 가치를 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자연 생태계로서의 습지를 인류와 환경을 위하여 체계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1971년 이란 람사르(Ramsar)에서였다. 그래서 "습지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Wetlands)이 람사르 협약이라고 불린다.
한국은 1997년 101번째로 람사르 협약에 가입했고, 다음해 강원도 인제 대암산 용늪과 창녕 우포늪을 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철새 감소를 이유로 1973년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었던 우포늪은 38년 만인 2011년 천연기념물 524호로 재지정되었다. 하지만, 우포늪의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2008년 창원에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유치한 '제10차 람사르 총회'가 개최되었다. 람사르 총회는 일명 환경올림픽으로도 불린다. 이명박 대통령은 개막식 연설에서 저탄소 녹색성장 전략을 강조하며 람사르 총회 개최를 계기로 습지 보호지역과 람사르 협약 등록 습지를 늘려 람사르 협약의 모범 국가가 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람사르 총회 100일도 되지 않아 4대 강 사업에 착수하며 습지를 훼손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의 4대 강 사업은 4년 뒤인 2012년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11차 람사르 총회'에서, '세계 습지 네트워크'로부터 'Grey Award(회색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Grey Award'는 최악의 습지 파괴사업을 의미한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 소리"의 따오기는 그간의 노력으로 이제 경기도에서도 관찰될 정도가 되었다. 따오기와 함께 창녕과 우포늪의 상징이었던 가시연꽃은 언제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2025년 5월, 20여 년 동안 우포늪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보전 운동을 해 온 우포자연학교 이인식 선생과 우포늪을 걸었다. 왕버들을 비롯한 온갖 나무들이 푸르름을 뽐내는 날이었다. 우포늪에는 2018년 4월 27일의 판문점 숲처럼 짝을 부르는 되지빠귀 울음이 한창이었다. 북한 김정은과의 판문점 도보 회담 다음 날 한 신문의 기사 제목은 이랬었다.
"文(문)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관심이 없든 2018년의 우리는 그에게 빚을 졌다"
그 6년 뒤 윤석열은 평양 상공에 무인 드론을 날리며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유도해 비상계엄의 명분을 만들려 했다.

/김석환 박사·지식 큐레이터
☞ 필자는 KNN 사장, 한국인터넷진흥원장,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고인돌과 인공지능'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언론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으며 콘텐츠와 한국 언론기업의 문제에서부터 산업혁명 이후 헤게모니를 둘러싼 세계와 한국의 근현대사, 생성형 인공지능, 플랫폼, 빅데이터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