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새 국면… “범 내려온다” [홍길용의 화식열전]
韓·미 산업장관 “공급망 안정” 한 목소리
영풍·MBK “배임” 반발…‘조호이산’ 반격
정기주총서 YPC 의결권 부활 여부가 변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트럼프 정부가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지난 15일 미국 정부와 합작을 통한 미국 공장 설립을 명분으로 3자 배정 유상증자에 나섰다. 호랑이(미국)을 끌어들여 이리(영풍·MBK)를 쫓아내려는 구호탕랑(驅虎吞狼)의 계책이다. 영풍과 MBK에 필요한 계책은 호랑이를 판에서 내보낼 조호이산(調虎離山)의 계책이다. 그런데 호랑이가 워낙 굶주려 있어 산에서 쉽게 떠날 듯하지 않다. 호랑이와 이리의 승부로 바뀐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전망을 살펴본다.
▶ 호랑이를 끌어들인 고려아연 최윤범
고려아연은 최근 미국 전쟁부(국방부) 및 전략적투자자(SI)들과 합작법인(JV) ‘크루셔블(Crucible)’을 설립하고 지분 9.9%를 출자하기로 했다. 동시에 고려아연은 JV에 2조8000억원 규모의 신주를 발행(3자배정 유상증자)하기로 했다. 이 구조라면 JV의 최대주주인 미국 정부가 고려아연 지분 10.3%를 가진 대주주가 된다. 고려아연의 JV 지분율은 상호주 규제 대상이 되는 10% 미만이다. 미국 정부가 최 회장 측의 우호 주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최 회장은 지난 해 상호주 제한 법령을 이용해 40%에 달하는 영풍·MBK의 고려아연 보유 지분 가운데 25%의 의결권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이 때문에 영풍·MBK의 현재 고려아연 의결권은 15% 수준이다. 미국 정부가 백기사로 나서준다면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율은 현재의 35%에서 40% 이상으로 높아질 수 있다.
▶ 중국에 약점 잡힌 굶주린 호랑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산업의 필수 소재인 희토류 공급 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희토류 가공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중국이 수출 통제를 무기화할 경우, 미국의 첨단 무기 생산은 물론 미래 산업 전체가 마비된다. 중국을 대상으로 관세 전쟁의 수위를 높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최근 우방국을 중심으로 공급 망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0월 호주와 대규모 핵심 광물 합작 프로젝트에 합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고려아연과의 합작도 이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미국 내 가동 중인 1차 아연 제련소는 테네시주(Tennessee) 클락스빌(Clarksville)에 위치한 니어스타(Nyrstar) 제련소 뿐이다. 이마저도 시설이 노후화되고 채산성이 맞지 않아 가동이 불안정하다. 고려아연은 이 제련소 부지를 인수한 뒤 기반 시설을 재구축해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고려아연의 독보적인 습식 제련 기술로 아연 광석을 제련하면 안티모니(탄약·미사일 필수재), 게르마늄(야간투시경·광섬유), 갈륨(반도체) 같은 희귀 금속들이 함께 생산된다. 미국에 꼭 필요한 전략 자산이다.
▶ 호랑이 쫓으려는 영풍·MBK, 호랑이에 기대하는 고려아연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즉각 법원에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금지시켜 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내 공장 건설이 목적이라면 JV이 직접 미국 측 투자를 받거나 차입을 하면 되는데, 굳이 본사 주식을 발행하려는 것은 기존 주주 가치를 희석시키는 배임이고 경영권 방어용 꼼수라는 주장이다.
특히 영풍 측은 고려아연이 미국 전쟁부와 맺은 대출 계약에서 제련소 생산법인이 전쟁부에 신주인수권(워런트)을 발행하고, 주당 1센트(14원)에 최대 14.5%까지 회사 지분을 매입하도록 구조를 짰다고 주장했다. 생산법인 기업 가치가 150억달러(약 22조원)에 이르면 추가로 지분 20%를 취득할 권리도 부여했다고 주장했다. 최대 34.5%의 생산법인 지분이 미국 측에 넘어갈 수 있는 구조다. 생산법인은 JV에 각종 인허가 서비스를 받는 대가로 매년 최대 1억달러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영풍 측은 강조했다. 한마디로 최 회장이 고려아연을 호랑이의 먹이 감으로 전락시켰다는 논리다.
문제는 영풍 측의 논리는 자칫 호랑이가 더 먹이 감에 집중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과 SI들은 초기 리스크(Greenfield Risk)가 큰 현지 생산법인 지분보다는, 유동성이 풍부하고 언제든 현금화(Exit)가 가능한 본사 상장 주식을 일종의 담보로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고려아연은 미국 전쟁부(국방부)에 약 4조 4085억 원, JP모건에 3조 6738억 원, 상무부에 3086억 원 등 8조 3909억 원의 보증까지 제공했다. JV가 미국 현지 생산법인에서 받을 연간 1억 달러의 수수료도 상당한 규모다. 영풍 측 주장대로 미국에 유리한 조건이 많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15일(현지시간)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고려아연이 테네시주에 대규모 제련소를 건설하기로 트럼프 행정부와 계약한 데 대해 “미국의 큰 승리”라며 반겼다. 미국 정부가 유리한 조건을 지키기 위해 이번 거래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해 입장을 한국 법원에 전달한다면 판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17일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건설 계획에 대해 “고려아연 공장 설립은 지난 8월 이미 MOU(양해각서) 형태를 통해 공감대가 있었다”면서 “고려아연뿐 아니라 우리나라 입장에서 희토류나 희귀광물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김 장관은 “고려아연이 재무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판단을 한 것에 대해 희귀광물을 담당하는 주무 장관으로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고려아연은 이번 거래가 자사에 불리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해 배임 논란만 피하면 된다. 고려아연이 이번 거래 과정에서 미국에 제공하기로 한 지급보증은 자기자본 7조 6000억 원을 넘는 규모다. 신주를 발행을 통한 자본 확충 명분이 될 만하다. JV가 취득할 수 있는 생산법인 지분도 경영권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고, 기업가치 150억 달러(22조원)이라는 구체적인 조건까지 걸려 있다. 고려아연 본사 시가총액(25조원)과 비슷한 액수다. 고려아연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고 보지 않을 여지가 있다.

▶ 영풍의 반전 카드는 선수(先手)
미국 공장 법정 공방에서 영풍이 불리하더라도 그 전에 판을 뒤집을 기회는 있다. 미국 JV에게 발행될 고려아연 주식이 상장되는 시점은 내년 1월 13일이다.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영풍(엄밀히 말해 영풍의 100% 자회사인 YPC 등)이 보유한 약 25% 지분의 의결권만 부활시킨다면 주주총회에서 반전을 이룰 수 있다.
지난해 주총에서 영풍이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 이슈에 발목이 잡힌 이유는 고려아연이 영풍 지분을 10% 이상보유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고려아연(자회사 Sun Metals Holdings Limited) –영풍-YPC(영풍자회사)-고려아연’의 소유구조가 인정됐다. 11월 말 기준으로 여전히 SMH의 영풍 지분율은 10.3%다. 연내에 영풍이 발행주식수를 늘려 SMH의 지분율을 10% 미만으로 떨어뜨리거나, 자회사가 아닌 곳으로 YPC의 고려아연 지분을 넘긴다면 의결권을 15%에서 40% 이상으로 회복할 수 있다. 최 회장 측 지분 35%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 MBK 출구 전략 가능성 있지만…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을 승부
미국 공장 논란과 정기 주총의 승부는 홈플러스 사태로 투자자 이탈이 심각한 MBK파트너스에 영향을 미칠 만하다. 투자자 돈을 펀드를 운용하는 사모펀드인 MBK로서는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든 못하든 중요한 것은 차익실현이다. MBK의 고려아연 지분 평균 매수 단가는 약 93만 원대로 추정된다. 현재 주가(약 130만 원대)를 고려하면 이미 막대한 평가 차익 구간에 진입해 있다.
경영권 확보에 성공한다면 고려아연을 통한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통해 차익실현을 하면 된다. 문제는 경영권 확보가 어려워졌을 때 어떻게 투자를 회수할 지다. 영풍은 MBK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시가 2조3000억원 상당)을 우선매수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자금력(현금성 자산 1400억원, 유동자산 1조3000억원)이 제한적이다. 영풍이 우선매수권을 활용할 수 없다면 MBK는 더 높은 값을 주는 다른 이에게 지분을 팔아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고려아연이 이를 사들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고려아연의 이익잉여금은 6조9000억원, 유동자산은 8조원에 달한다. 고려아연이 MBK 지분을 자사주로 매입해 소각한다면 일반 주주들도 반대할 이유는 적다.
물론 이번 승부에서 이긴다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권이 공고한 것은 아니다. 최 회장이 가진 고려아연 지분은 1.67%에 불과하다. 특수 관계인 지분을 다 모아도 19%다. 영풍은 여전히 고려아연 지분 35% 가량을 가진 최대주주다.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경영권에 다시 도전할만한 수준이다. 최 회장이 최대주주인 영풍에 맞서 경영권 분쟁을 이어올 수 있었던 배경은 현대차그룹, 한화,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들의 지지 덕분이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까지 계속 최 회장을 지지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끝날 때까지는 끝나기 어려운 승부다.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며 몰려오는 것도, 어지럽게 달려가는 것도 모두 이익을 좇기 위해서다”
(天下熙熙, 皆爲利來 天下壤壤, 皆爲利往) –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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