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범석 법적 책임 면하려…‘대타 사장’ 논의에 보고라인 은폐까지

서혜미 기자 2025. 12. 1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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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쿠팡아이엔씨(Inc) 이사회 의장이 2021년 3월1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상장을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범석 쿠팡 창업자(현 쿠팡아이엔씨 이사회 의장)는 2021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이후 “글로벌 경영에 전념하겠다”는 이유로 한국 법인의 모든 공식 직위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쿠팡 전 시피오(CPO·개인정보보호최고책임자) 미국인 ㄱ씨가 부당해고를 다투는 과정에 한국 법원에 제출한 2016~2020년 쿠팡 내부 문건과 사내 커뮤니케이션 기록 등을 보면, 김 의장의 사임을 단순한 경영상 판단으로만 해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자료에는 각종 논란에 대비해 김 의장을 한국 법인의 책임에서 분리하려는 논의가 오랜 기간 이뤄진 정황이 담겨 있다.

이런 논의가 있었던 정황은 2018년 10월부터 확인된다. 당시 쿠팡은 2017년 국정감사에서 배송직원인 ‘쿠팡맨’에게 포괄임금제 계약을 적용해 시간 외 근로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은 데 이어, 2018년엔 새벽배송 시범 운영으로 가혹한 노동 조건과 열악한 근무 환경을 둘러싼 논란까지 겹친 상황이었다.

이 시기 쿠팡 내부에서는 김범석 의장이 정부의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논의가 오갔다. 문건을 보면, 현재 쿠팡에서 법무 담당 부사장이자 최고관리책임자의 비서실장인 새뮤얼 오브라이언은 당시 ㄱ씨와 ‘시그널’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는데, 그는 “노동부 관계자가 시디엠(CDM·쿠팡맨) 이슈와 관련해 김 의장을 직접 조사할 것 같다”며 “이번 사안은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응 방안으로 김 의장을 미국 유한책임회사(LLC)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로 두고, 한국 법인 대표는 다른 현지인에게 맡기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과거 전 법무 자문위원이 이 방안(한국 법인에 따로 대표를 두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새뮤얼은 당시 후보군 가운데 자신과 골프를 친 김앤장 출신 인사가 포함돼 있다고도 언급한다. ㄱ씨는 한겨레에 “해당 인물은 강한승 전 쿠팡 대표”라고 전했다. 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거쳐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며 쿠팡의 법률 자문을 맡아오다, 2020년 10월 쿠팡 경영관리총괄 대표이사로 영입됐다. 이후 2021년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뒤 김범석 의장은 한국 법인 의장직과 등기 임원직을 내려놨다. 한국 사업과 관련한 법적 책임을 분산하기 위해 법인을 쪼개고 별도 대표를 내세우려는 논의 정황이 수년 뒤 현실화한 셈이다.

2020년 4월에는 김범석 의장의 외부 노출을 줄이기 위한 또 다른 시도 정황도 나온다.문건에 따르면, 당시 최고관리책임자(CAO)였던 해롤드 로저스(현 쿠팡 대표이사)는 인사운영 책임자에게 아웃룩·워크데이 등 사내 인사시스템에서 김 의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임원들의 보고 라인을 숨겨달라고 요청했다. 공식 조직도에서 김 의장의 존재와 영향력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서울의 한 쿠팡 차고지에 배송 트럭들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이와 함께 쿠팡 내부의 불투명한 의사결정 방식도 내부 기록을 통해 드러난다. 2016년 정보보안실 보안정책팀 소속 직원이 보낸 내부 전자우편(이메일) 형식의 자료에는 “중요한 회의 내용은 이메일로 공유하거나 보고하는 것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이 담겨 있다. 또 2020년 5월 물류센터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에서 김 의장이 경영진과 ‘시그널’로 대응 방안을 논의하며 “이메일로 남기지 말자”고 지시한 기록도 ㄱ씨 문건에 담겨 있었다. 문서화된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대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이사(변호사)는 “쿠팡의 구조 자체는 문제가 있지만 기업 거버넌스 원리에 위배된다고 볼 순 없다”며 “문제는 실제로 미국 법인이 주요 의사결정을 하되 사업은 한국에서 하기 때문에, 한국은 한국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규제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한국 법인 이사회 내에 보건·인권·안전·보안 등을 감시 감독할 수 있는 특별위원회 등 내부 통제 조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쿠팡 쪽은 “5년 전 해임된 전 임원이 당사에 불만을 가지고 왜곡된 주장을 일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며 “관련 법정 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당사가 승소한 바 있다”고 밝혔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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