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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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암묵적인 계급 사회다.
결국 인류는 수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문명부터 이어져 온 신분제 사회에서 '이름' 하나만 제거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개개인의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과 경제적 배경, 사회적 가치관은 모두 반(反)페미니즘, 보수화라는 하나의 이름표 아래 희석된다.
사회가 붙인 이름에 대한 반발심과 자부심이 섞여 집단이 더 응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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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가 과거 신분제 사회와 딱 하나 다른 게 있다면 사회가 계급을 '명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아무리 소외당하는 집단이라도 그들을 과거처럼 노비나 백정 계급으로 구별 짓지 않는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도 해당한다. 결국 인류는 수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문명부터 이어져 온 신분제 사회에서 '이름' 하나만 제거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이름 없애기' 노력을 얕잡아봐서는 안 된다. 이름을 제거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초등학교 때 남들에게 섣불리 붙인 별명 하나가 6년 내내 따라왔던 것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섣부른 장난으로 한 누군가의 명명은 찰나의 순간에 이뤄지지만 그 별명을 제거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았나. 앞선 예를 달리 생각해 보면 인류는 이름 하나를 없애기 위해 수천 년간 혁명과 투쟁을 해온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특정 집단을 명명하는 작업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누군가에게 붙인 이름은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이대남' 명칭을 생각해 보자.
20대 남성 집단이 특정 사회 현안에 대해 눈에 띄게 보수 성향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은 유의미한 사회통계 데이터로 입증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대남이라는 공식 명칭이 정치권과 언론에서 통용되고 신분처럼 그 명명이 굳어지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대남은 20대 남성 전체를 단일하고 획일적인 집단으로 묶어버린다. 개개인의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과 경제적 배경, 사회적 가치관은 모두 반(反)페미니즘, 보수화라는 하나의 이름표 아래 희석된다. 이는 20대 남성 전체에 대한 이해를 왜곡하며, 이들이 겪는 실제 어려움을 가려버린다.
또 이 용어는 특정 정치 세력이 손쉽게 20대 남성 집단을 호 명하고 정치적 표심으로 규정하는 도구가 된다. 명명은 곧 분리이고 분리는 갈등의 시작이다. 이대남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이들은 더 이상 과거의 '20대 남성'으로 돌아가기 힘들며 스스로 부여된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사회가 붙인 이름에 대한 반발심과 자부심이 섞여 집단이 더 응집되는 것이다. 이대남뿐만이 아니다. 최근에 화제가 된 '영포티' 명칭도 마찬가지다. 이 용어는 이대남들이 반발심과 조롱 조로 만들어낸 용어였으나 어느새 언론과 사회가 받아 적으며 40대를 일컫는 '고유명사'가 됐다.
영포티 명칭은 이대남과 마찬가지로 특정 세대에 대한 악의적인 프레임을 형성시키며 자연스럽게 기성세대를 향한 혐오를 정당화시킨다.
"영포티니까 이럴 것이다", "영포티는 무조건 틀렸다"라는 식의 단순 논리가 횡행하면서 세대 갈등은 더욱 부추겨진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영포티라는 이름이 내포하는 '늙음'에 대한 한국 사회의 혐오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세대 전체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나이 듦을 경계하는 사회 분위기를 더욱 공고히 한다. 언론은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대중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책임이 있다. 하지만 자극적인 보 도와 시청률 경쟁 속에서 단순화되고 갈등을 유발하는 명명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확산하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언론이 무심코 사용한 이름 하나가 세대 간 이해의 다리를 끊고 혐오를 공고히 하며 사회적 불신을 키우는 씨앗이 될 수 있다. 섣부른 명명에 대해 우리 사회, 특히 언론이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름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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