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외면 초기 수사…2차 피해 키웠다

김혜진 기자 2025. 12. 16. 19:4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찰, 남성 이유 부차적 문제 취급
피해자 30% 남자…인식개선 시급
▲ 연합뉴스

'셀프 감금'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한 20대 남성이 알몸 촬영 등 성적 피해를 진술했음에도 경찰이 초기 수사에서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서 2차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통계상 남성 성범죄 피해자 역시 적지 않은 만큼 성인지 감수성을 갖춘 수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인천일보 2025년 12월16일자 6면>

16일 인천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강모(29)씨는 지난 8월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범 지시·협박에 따라 사흘간 서울 송파구 한 주택형 숙박업소에 머물면서 나체 상태로 촬영한 사진 여러장을 피싱범에게 전송했다.

송파경찰서는 강씨를 구조한 뒤 조사를 진행했는데 그는 조사 과정에서 피싱범들이 자신의 알몸 촬영물을 갖고 있다며 여러 차례 유포 우려를 진술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당시 작성된 신고서를 보면 보이스피싱 피해로 6000여만원이 이체됐다는 내용만 기재돼 있을 뿐 알몸 촬영 등 성 관련 피해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강씨 측은 이후 경찰에 성적 피해 누락 문의 과정에서도 "여성 피해 성착취물이 수백건씩 접수되는데 남성 피해는 우선순위가 아니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피해가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경찰은 당시 텔레그램 등에서 실제 촬영물이 오간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고 금전 피해 회수에 우선 대응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러나 강씨는 성적 피해 가능성을 초기 수사 단계에서 함께 다뤘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강씨는 촬영물 유포 불안으로 수개월간 심리상담을 병행했다.

▲ 성평등가족부가 올해 발간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담긴 디지털 성범죄 성별 피해 유형 비교 내용

강씨와 비슷한 피해 사례는 적지 않다. 성평등가족부가 올해 발간한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 지원을 요청한 피해자 1만305명 중 남성은 2877명(27.9%)이다. 피해자 10명 중 3명 가까이가 남성인 셈이다.

피해 유형별로는 '유포 불안'이 4358건(25.9%)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실제 유포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퍼졌을지 모른다는 공포 자체가 피해로 이어지는 구조다. 남성 피해자의 경우에도 유포 불안 피해가 1125건으로 집계됐고 불법촬영 피해는 1813건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범죄 특성상 피해 발생 이전 단계부터 심각한 심리적 불안이 유발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초기 수사에서 성적 피해 여부를 놓칠 경우 유포 불안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영미 경기도젠더폭력통합대응단 디지털성범죄피해자원스톱지원센터장은 "보이스피싱에서 '몸캠 피싱' 등은 남성 피해자가 많은 유형임에도 수사기관에선 이를 성적 피해로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며 "금전 피해를 주로 담당하는 수사팀이 맡다 보니 수사가 돈에 집중되고 성적 피해 문제는 배제되는 구조가 반복된다"고 했다. 이어 "사건이 부서별로 나뉘면서 피해자는 금전 피해와 성적 피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고소조차 쉽지 않다"며 "경찰 내 전담 조직 부재로 피해자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성인지 감수성을 갖춘 수사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혜진 기자 trust@incheonilbo.com

Copyright © 인천일보 All rights reserved - 무단 전재, 복사, 재배포 금지

인천일보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