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학교·회사, 밤엔 물류센터로 …"새벽 노동은 착취 아닌 선택"
생활비 벌러 온 학생·직장인
"2030 일자리 왜 뺏나" 분통
생활 인프라 된 새벽배송
물류센터 새벽시간 셧다운땐
2천만여 이용자 불편 우려
중요한건 시간 아닌 근무여건
적절한 보상·안전확보 우선

"정치인들이 왜 막나요. 이건 제 선택인데요."
밤 9시 경기도 광주 쿠팡 곤지암1센터의 출고 라인. 신선식품을 다루는 현장인 만큼 실내 온도계가 3도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지급받은 방한복과 방한화를 착용한 채 카트를 끌며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작업자는 토드(상자)에 상품을 차곡차곡 담아 컨베이어벨트에 올린다. 신선식품으로 가득 찬 토드는 쉼 없이 흘러갔고 심야 작업은 새벽 2시에 끝났다.
기자는 직접 쿠팡 물류센터 일용직으로 일하며 휴식 시간마다 동료 근로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 시간대에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식하는 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최근 불거진 '새벽 노동 금지' 논의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쿠팡 물류센터 일용직 업무는 크게 입고(IB), 출고(OB), 재고관리(ICQA), 허브(HUB) 등 네 가지로 나뉜다. 입고는 쿠팡이 직매입한 상품을 물류센터에 배치하는 역할이고, 출고는 고객 주문에 따라 상품을 토드에 담아 내보내는 작업이다. 재고관리는 물류센터 내 재고의 정확성을 점검하는 일이다. 허브는 각 지역 배송지에 맞게 물품을 분류하거나 상하차하는 업무를 맡는다. 허브는 작업 강도가 높은 편이라 지원자가 적다. 일부 센터에서는 다른 공정 인원에게 추가 수당 3만원을 제공하며 허브 업무를 맡기기도 한다.

허브를 제외한 나머지 세 업무는 상대적으로 난도가 낮은 편이다. 출고 공정에서 집품(picking)에 투입된 기자 역시 '1+1 우유 상품' 14개를 나눠 담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단순 업무이다 보니 체력적으로 크게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일을 마칠 무렵 휴대전화를 켜보니 그날 찍힌 발걸음 수가 2만보를 훌쩍 넘었다. 두툼한 방한복은 이미 허리춤에 반쯤 걸쳐 있었다.
곤지암센터에서 만난 20대 커플은 새벽배송 금지 논란에 대해 "왜 국가가 내가 일할 시간을 대신 정하느냐"고 반문했다. 이들은 "데이트 비용을 벌려고 함께 나왔다"며 "이것도 일종의 데이트"라면서 웃었다. 낮에는 각자 학교 일정으로 바쁘다 보니 주말 밤이 유일하게 맞는 시간대였다. 이들에게 새벽 노동은 착취가 아니라 일정과 소득을 동시에 맞출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지였다.
또 다른 20대 여성 A씨는 유럽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새벽 물류 일을 택했다. 그는 "짧은 시간에 비교적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며 "같은 시간 동안 낮에 일해서는 이만큼 벌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센터에서 출고 업무를 해봤지만 크게 힘들다고 느끼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새벽배송 금지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직장인 B씨는 틈날 때마다 쿠팡 물류센터 야간 일용직으로 일한다. 그는 새벽배송 논란에 대해 "현장 시스템을 전혀 모르는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허브 업무를 해보면 컨베이어벨트가 쉼 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시간에 맞춰 화물을 6~8단으로 쌓아올려야 한다. 새벽배송을 금지할 경우 물류센터에 쌓이는 방대한 물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지적이다.
B씨는 "입고·출고·허브를 모두 해봤는데 주간조와 야간조가 교대되는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면 물류센터는 사실상 24시간 돌아간다"며 "소비자에게는 새벽배송이라는 편의를, 2030세대에게는 소중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구조인데 이를 왜 무너뜨리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C씨는 주말마다 쿠팡 일산캠프에서 주간 및 야간직을 병행했다. 본업 소득만으로는 외벌이 가계를 감당하기 어려운 데다 한 번 근무하면 10만~13만원의 일당을 받을 수 있어 '투잡'으로 쿠팡만 한 곳이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직장인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는 쿠팡 겸업과 투잡 관련 정보가 다수 공유되고 있다. 공무원이 아니고, 본업과 부업을 합한 월 소득이 637만원을 넘지 않으며 월 60시간 또는 월 8회 이상 근무하지 않을 경우에는 쿠팡 일용직으로 근무한 사실이 본업 회사에 통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C씨도 이 기준을 활용해 매주 토요일 네 차례 주야간 근무를 해왔다. C씨는 "집 근처 역에 위치한 배달의민족 B마트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는 응모를 해봤지만 한 번도 당첨되지 않았다"며 "배민에 비해 쿠팡 물류센터 알바는 외곽으로 가야 하지만, 셔틀이 오고 밥도 줘서 다닐 만하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노동계 일각에서는 새벽 노동이 건강과 안전을 해친다며 새벽배송을 제한하거나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공통된 인식은 달랐다. 본질적 문제는 '새벽'이라는 시간대가 아니라 근무 환경과 조건이라는 것이다. 강요 없는 선택인 이상 그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지는지, 근무 현장에서 충분히 안전이 확보되는지가 핵심이라는 주장이었다.
[최예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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