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영어’ 아닌 ‘영국 영어’ 쓴 카니 행정부···언어학계 “정체성 훼손” 비판
“미국 저항 입장 취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 지적

지난 3월 출범한 마크 카니 캐나다 행정부가 최근 공식 문서에서 캐나다 영어가 아닌 영국식 철자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이 되고 있다. 캐나다 언어학계는 이를 국가 정체성 훼손 문제로 규정하며 정부에 시정을 촉구했다.
캐나다 공영방송 CBC는 15일(현지시간) 언어학자와 편집자 단체 대표 등 5명이 최근 카니 총리에게 “국가적 정체성을 지키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공식 문서에서 캐나다식 영어를 정확히 사용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2025년 연방 예산안을 포함한 여러 정부 문서에서 ‘utilisation(활용·이용)’, ‘globalisation(세계화)’, ‘catalyse(촉진하다)’ 등 영국식 철자가 사용된 점을 문제 삼았다. 이는 캐나다에서 통상 사용돼 온 utilization, globalization, catalyze와 다르다.
서한은 “정부가 다른 철자 체계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어떤 철자가 캐나다식인지에 대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캐나다식 철자는 단순한 언어 규범을 넘어 “국가 고유의 역사와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총리실과 연방정부, 의회를 향해 “1970년대부터 2025년까지 일관되게 유지해 온 캐나다 영어 철자를 계속 사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총리실은 이 서한에 대한 언론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캐나다 영어는 지리적·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의 영향을 모두 받았지만, 두 언어와는 구별되는 독자적 언어 변종으로 평가된다. 표준 캐나다 영어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도 독립된 영어로 인정받고 있다.
이번 서한에서 전문가들은 캐나다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엘보즈 업(elbows up)’ 입장을 취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라고도 주장했다. 아이스하키 용어인 ‘엘보즈 업’은 카니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위협과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 수 있다’는 발언에 맞서 캐나다의 저항 의지를 표현할 때 사용한 표현이다.
서한 작성자 중 한 명인 슈테판 돌링거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언어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총리실이 반세기 이상 시간을 되돌리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것은 역행”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서명자이자 언어학자인 J K 체임버스 토론토대 교수는 카니 총리의 개인적 이력이 이번 논란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카니 총리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성인기 상당 기간을 영국에서 보냈다. 비영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총재를 7년간 역임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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