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홀린 ‘빨간맛’…‘면비디아’ 삼양식품 성공 방정식
스코빌지수·매운맛 경쟁 촉발 라면 판도 바꿔
소비자 주도 레시피 ‘불닭 시리즈’ 확장 견인
유튜브 챌린지 콘텐츠화, K-푸드 아이콘 등극
누적판매 80억개, 삼양식품 韓 라면수출 60%
글로벌 팬덤 강화·맵(MEP)등 차기 브랜드 모색

![유튜브에서 ‘파이어 누들 챌린지’로 검색한 영상 [유튜브 캡처]](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2/16/ned/20251216112210508rvlv.png)

“한국 라면이 한류의 최전선에서 한국의 문화와 정체성을 알리고 있다는 사실은 저에게 큰 기쁨과 자부심을 안겨줍니다. 이런 성장세를 가속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헤럴드 ‘더인베스터’ 2023년 12월 인터뷰)
전 세계 방방곡곡을 휩쓸고 있는 ‘매운맛’이 있다.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중독성 강한 매운맛으로 회사의 운명까지 바꿔버린 라면, 바로 ‘불닭볶음면’이다.
불닭볶음면은 글로벌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강타한 ‘먹방 챌린지’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물, 콧물 쏙 빼는 매운맛에 세계인들이 열광하며 도전의 아이콘이자 K-푸드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1년에 10억개 이상이 팔리며 매일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기도 하다.
삼양식품家 며느리, 명동 맛집서 ‘유레카’
“너무 매워서 도저히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수준”, “입 안에 불이 난 줄 알았다.” 2012년 4월 첫선을 보인 불닭볶음면에 쏟아진 혹평이다. 흔치 않은 화끈한 ‘빨간 맛’에 소비자들의 반응이 엇갈렸던 것이다. 당시 라면업계의 대세는 ‘하얀 국물’이었다. 개그맨 이경규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만든 ‘꼬꼬면’을 시작으로 하얀 국물 라면이 줄줄이 출시되며 라면업계를 주름잡았던 시절이다. 삼양식품이 낸 ‘나가사키 짬뽕’ 역시 히트를 쳤다. 일부 대형마트에선 ‘신라면’ 매출을 앞지르기도 할 정도였다.
빨간 맛을 대표하는 불닭볶음면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삼양식품가 첫째 며느리인 김정수 부회장이 주인공입니다. 김 부회장은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여파로 삼양식품이 화의에 들어가며 경영난을 겪던 시기에 회사에 입사했다. 서울예고를 나온 그는 섬세한 미각과 디자인·마케팅 능력을 살려 패키지 디자인을 개선하고 ‘맛있는 라면’, ‘갓 짬뽕’ 등을 내놓으며 회사 분위기를 다시 일으켰다. 불닭볶음면의 아이디어는 2011년 초 고등학생이던 딸과 명동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매운 찜닭 식당에서 나왔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강렬한 매운맛을 라면에 적용할 수 있겠다는 힌트를 얻었다.
이후 김 부회장은 마케팅 부서, 연구소 직원들과 함께 전국의 유명한 불닭·불곱창·닭발 맛집 탐방에 나섰다. 다양한 매운맛을 직접 시식하고 세계 각국의 고추를 연구하며 ‘맛있게 매운 소스’ 개발에 몰두했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매운맛을 찾기 위해 청양고추, 하바네로고추, 베트남고추, 타바스코, 졸로키아 등 세계 모든 지역의 고추를 혼합해 보면서 최적의 소스 비율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위가 약한 연구원들은 매일 계속되는 매운맛 시식에 약을 복용할 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한다. 1년 간의 제품 개발 기간 동안 매운 소스 2톤, 닭 1200마리가 투입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이런 집념과 노력이 지금의 불닭볶음면 신화를 만든 토대가 됐다.
스트레스 풀리는 매운맛 경쟁…마니아에서 대중으로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 출시 전 소비자 반응 테스트에서 “콧잔등에 땀이 맺힐 정도로 매웠는데, 이상하게 다 먹고 나서도 계속 생각이 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중독성 있는 매운맛에 자신감을 가지게 된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을 출시하며 라면업계에서 처음으로 매운맛을 수치화한 ‘스코빌지수(SHU)’를 도입했다. 불닭볶음면의 스코빌지수는 4404SHU로, 청양고추(약 4000~1만SHU)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출시하자마자 잘 나가는 라면은 아니었다. 칼칼한 하얀 국물이 대세였던 시절이고, 매운 볶음면은 생소했다. “흥행에 실패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중독적인 매운맛이라며 라면 마니아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매운맛을 찾는 사람이 증가한다”는 속설도 통했다. 당시 총선과 고물가로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았기 때문인지, 얼얼한 매운맛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소비자들이 불닭볶음면을 찾았다. 출시 초기 국내 매출은 월 7억~8억원 수준이었는데, 1년 만에 30억원대로 늘어났다. 출시 1년 6개월이 되자 월 매출은 60억원대가 됐다. 통상 월 매출이 20억원을 넘으면 히트 상품으로 보는 라면업계에서 이 정도면 ‘대박’이라고 볼 만했다.
라면업계의 매운맛 경쟁에도 불을 붙였다. 스코빌지수를 통해 매운맛 정도를 알리는 마케팅도 불닭볶음면 이후 본격화됐다. 팔도는 2012년 5월 시중의 국물 라면을 분석해 자사의 ‘틈새라면 빨계떡’의 스코빌지수가 8557SHU로 가장 맵다고 알리기도 했다.
모디슈머 열풍과 만난 불닭, ‘불닭 시리즈’의 시작
불닭볶음면을 얘기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모디슈머’다. 제조업체가 제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용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품을 활용하는 체험적 소비자를 의미한다. 라면업계에선 2013년 초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너구리’와 ‘짜파게티’를 섞은 ‘짜파구리’가 소개되면서 모디슈머 열풍이 시작됐다.
‘맵부심(매운 것을 잘 먹는 자부심)’ 트렌드에 끼고 싶지만, 매워도 너무 매운 불닭볶음면을 시도하기 무서웠던 소비자들은 우유, 치즈, 참치, 계란 노른자 등을 섞어 먹기 시작했다. 불닭볶음면에 치즈, 삼각김밥을 곁들여 먹는 레시피도 유행했다. SNS에 공유되는 이런 레시피들은 입소문을 재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여러 재료를 조합해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 보니 꾸준히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단순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게 해줬다. 인기 라면의 판도도 바꿔놨다. 한 대형마트가 2013년과 2014년 라면 매출을 살펴보니, 불닭볶음면 매출이 1년새 64.8%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매출 상위권 라면 대부분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것과 대조되는 결과였다.
삼양식품도 모디슈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런 소비자들의 레시피에 착안해 2014년 12월 ‘스노윙치즈 불닭볶음면’을 한정 출시했다. 정식 제품으로 출시해달라는 소비자 의견이 빗발치자 2016년엔 ‘치즈불닭볶음면’을 내놨다. 이후 ‘커리불닭볶음면’, ‘까르보불닭볶음면’, ‘마라불닭볶음면’ 등을 출시했다. 삼양식품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불닭볶음면은 20종이나 된다.
후속 제품들은 불닭볶음면만큼이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특히 불닭볶음면에 크림소스를 섞어먹으면 맛있다는 소비자들의 레시피에 착안해 2017년 12월 국내 한정판으로 출시한 까르보불닭볶음면은 3개월간 3600만개가 판매됐을 정도였다. 까르보불닭볶음면은 기존 불닭볶음면 액상 스프에 모짜렐라 치즈 분말, 크림맛 분말, 파슬리 가루를 넣어 진입장벽을 낮췄다.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2018년 5월 정식 제품으로 출시됐고, 불닭볶음면과 함께 불닭브랜드 대표 제품이 됐다.
모디슈머는 ‘불닭 세계관’ 확장의 원동력도 됐다. 불닭볶음면에 들어있는 액상스프만 별도로 판매해달라는 소비자 요청을 반영해 2017년 이벤트성으로 출시된 ‘불닭소스’가 시작이었다. 5000개 한정으로 1·2차 2500개씩 판매했다. 1차 판매에선 2500개가 2시간 만에 완판을 기록했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삼양식품은 1년 뒤 불닭소스를 정식 상품으로 내놨고, 이후 소스류, 스낵류, HMR(가정간편식)로 카테고리를 확대했다. 불닭소스의 경우 ‘1000억 브랜드’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해외 유튜버 ‘챌린지’, 먹거리에서 놀거리가 된 불닭
불닭볶음면을 K-푸드를 대표하는 메가히트 상품으로 성장시키는 데는 SNS의 역할이 컸다. 해외 소비자들이 SNS에서 자발적으로 확산시킨 ‘파이어 누들 챌린지(Fire Noodle Challenge)’가 중심이었다. 이 챌린지 열풍에 불을 붙인 것은 유튜브 스타 ‘영국남자’가 2014년 2월 영국인 지인들과 불닭볶음면에 도전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11년이 지난 현재 이 영상의 조회 수는 1146만회에 달한다.) 지금까지 맛본 적 없는 매운맛에 우유를 벌컥벌컥 마실 정도로 힘들어하면서도 맛있게 먹는 모습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불닭볶음면은 누구나 한 번쯤 시도하고 싶은 도전의 아이콘이자 K-푸드의 아이콘이 됐다. 하나의 제품을 넘어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또 다른 주역으로는 미국의 인기 여성 래퍼 카디 비(Cardi B)를 빼놓을 수 없다. 카디 비는 지난해 3월 자신의 틱톡 계정에 까르보불닭볶음면을 끓여 맛보는 영상을 올렸다. 그는 SNS에서 까르보불닭볶음면 영상을 많이 봤다면서 차로 30분을 운전해 제품을 구해왔다고 말했다. 치즈와 우유를 첨가해 조리하고, 소스를 절반밖에 넣지 않았지만 “재밌는 제품”이라는 평가도 남겼다. 이 영상은 지금까지 4466만건의 조회수를 올렸다. ‘좋아요’는 472만5000건, 댓글은 2만8000건에 달한다. 이후에도 카디 비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팬들과 소통하던 중 까르보불닭볶음면을 김에 싸서 먹는 등 여전한 애정을 보여줬다.
또 지난해 까르보불닭볶음면을 깜짝 생일선물로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소녀의 영상이 SNS에서 화제가 된 일도 있다. 삼양식품이 소녀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까르보불닭볶음면 1000여개를 가득 실은 ‘불닭 차’를 보낸 영상 역시 큰 관심을 받았다. 미국 유력 매체 뉴욕타임스(NYT)가 지난해 4월 까르보불닭볶음면 품절 사태를 소개할 정도로 SNS를 뜨겁게 달궈놨다. 별다른 광고 없이도 SNS 입소문만으로 이뤄낸 쾌거였다. 요즘도 불닭 챌린지는 계속되고 있다. 불닭소스를 추가해 2~10배 매운 불닭볶음면을 만들어 먹거나, 치즈 비중이 99%에 달할 정도로 추가해 만드는 ‘99 치즈 불닭’ 등이 화제다.
80억개 팔린 ‘K-스파이시’의 아이콘
지금까지 팔린 불닭볶음면은 무려 80억개에 달한다. 전 세계인이 하나씩 나눠 먹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특히 불닭볶음면이 SNS를 타고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불닭 브랜드는 삼양식품 해외 매출의 80% 가까이를 차지하는, 수출의 일등공신이 됐다. 한국 라면 수출액 60% 이상을 삼양식품이 담당하고 있다. 현재 불닭 브랜드가 수출되는 국가는 100여개국이나 된다. 불닭볶음면 덕에 삼양식품은 매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시가총액이 9조원을 넘어 식품업계 대장주에도 올랐다. ‘면비디아(라면+엔비디아)’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불닭볶음면의 흥행은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전 세계 어느 마트를 가더라도 찾아볼 수 있는 불닭볶음면을 보면, 이번 유행의 유통기한은 당분간 오지 않을 듯하다. 물론 ‘제2의 불닭’ 찾기도 현재진행형이다. 삼양식품은 1980년대 후반 우지(소기름) 파동으로 라면업계 1위 자리를 내주고 오랜 침체기를 겪은 뼈아픈 기억이 있다. 아무리 잘 팔리는 제품이 있더라도 그 의존도가 절대적이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새 라면 브랜드 ‘맵(MEP)’, ‘탱글’을 론칭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매운맛 라면, 어디까지 아시나요?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라면 중 가장 매운 라면은 편의점 GS25가 게임회사 넥슨과 협업해 지난 10월 선보인 ‘메이플스토리 용사라면’이다. 스코빌지수는 2만3000SHU, 불닭볶음면의 약 5배에 달한다. 2위는 ‘염라대왕라면’으로 2만1000SHU다. ‘3배 매운 핵불닭볶음면’은 1만3000SHU, ‘킹뚜껑’은 1만2000SHU다. 전 세계로 넓혀보면 뉴질랜드의 ‘컬리의 세계에서 가장 매운 라면 2.0(Culley’s World’s Hottest Ramen Noodles 2.0)’이 있다. 스코빌지수가 104만SHU다.
강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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