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큐의 시선] 도널드 저드, 앉을 수 있는 미니멀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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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은 왜 지금도 유효한가
도널드 저드는 오랫동안 미술계에서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불려 왔다. 다만 그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보다, 이미 그의 감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장식 없는 구조, 반복되는 형태, 재료를 숨기지 않는 태도. 우리는 이런 특징을 두고 '깔끔하다'거나 '정돈된 취향'이라고 말하며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미니멀리즘은 이제 미술관보다 집과 사무실에서 더 자주 마주치는 언어가 됐다.
요즘 선호되는 주거 공간과 업무 환경을 떠올려보면 이 변화는 더욱 분명해진다. 모듈형 수납 가구, 직선 위주의 테이블, 필요에 따라 분해하고 다시 조합할 수 있는 가구들은 더 이상 디자인 아이콘으로 과시되기보다 오래 써도 질리지 않는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이미 미니멀한 환경 속에 살고 있지만, 정작 이 감각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어떤 사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쉽게 묻지 않는다.


미니멀리즘은 흔히 '덜어내는 디자인'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것은 단순히 비워내는 행위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에 가깝다. 무엇을 없앨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리고 남겨진 것들이 어떤 관계를 맺으며 공간을 이루는가에 대한 판단이다. 이 지점에서 도널드 저드는 여전히 중요한 이름이 된다. 그는 미니멀리즘을 하나의 스타일이나 유행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예술과 삶이 어떤 구조 위에 놓일 수 있는지를 끝까지 고민했다.
저드의 가구가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작업은 사용자의 몸을 전제로 한다. 손이 닿는 높이, 몸이 머무는 위치, 움직일 때 생기는 간격까지 모두 구조 안에 포함된다. 그는 예술을 감상의 대상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삶의 높이로 끌어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결과가 편안하거나 느슨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의 미니멀리즘에는 분명한 긴장감과 엄격함이 존재한다. 장식과 설명은 사라졌지만, 구조와 비례, 배치에 대한 책임은 더 커진다. 아무렇게나 놓일 수 있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은 그 자리에 놓여야 할 이유를 가진다.


앉을 수 있는 예술, 살아갈 수 있는 구조
이런 태도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장식을 덜어내고 구조를 전면에 드러내려 했던 근대 건축의 사고, 이를테면 르코르뷔지에가 말한 '살기 위한 기계로서의 집'에서 이미 그 방향은 예고돼 있었다. 이후 디터 람스는 기능은 분명해야 하고, 형태는 오래 사용될 수 있어야 하며, 불필요한 요소는 자연스럽게 사라져야 한다는 원칙을 통해 이 생각을 산업 디자인의 언어로 정리했다. 도널드 저드는 이 흐름을 다시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왔다. 그는 예술이 감상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구조로서 존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실제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끝까지 질문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미니멀한 가구와 공간은 이 긴 흐름의 끝에 놓여 있다. 그래서 저드는 과거의 작가라기보다 지금 우리의 생활 방식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기준점에 가깝다. 미니멀리즘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양식이 아니라, 공간과 삶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오랜 질문의 축적이다. 저드는 그 질문을 가구라는 형태로 다시 제시한다. 앉을 수 있고, 사용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이동하고 재배치할 수 있는 구조로서 그의 작품은 완결된 조형물이라기보다 계속해서 관계를 새롭게 맺는 장치에 가깝다.
미니멀리즘이 여전히 힘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유행이 아니라 태도이기 때문이다. 좋은 가구가 주는 안정감은 장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변화한 관계를 다시 정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나온다. 저드의 가구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한 사용법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아무렇게나 쓰이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기능 설명이 아니라, 예술이 삶 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하나의 신호처럼 느껴진다.

이 글을 읽고 전시를 보게 된다면, 작품의 형태보다 배치가 먼저 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금속이나 목재의 질감보다, 작품이 공간을 대하는 방식이 더 선명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전시장을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익숙한 가구들이 조금 다르게 보일 가능성도 크다. 단정한 선반 하나, 반복되는 수납 구조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저드의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무엇을 더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정확히 놓을 것인가에 대해.
도널드 저드는 미니멀리즘을 멀리 있는 예술 사조로 남겨두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우리 삶 속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만나는 도널드 저드는, 이미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미니멀리즘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하나의 계기다. 우리의 공간과 선택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으로서 말이다.
Donald Judd: Furniture
2025.11.27 – 2026.4.26
현대카드 스토리지
관람료 일반 5,000원
글쓴이 이혜민(@comme_haemin) 18년간 미술관과 전시 현장을 두루 거쳐온 큐레이터. 한국일보 문화사업단, 일민미술관, 서울경제 백상미술정책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예술에 대한 시선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감정의 여백을 기록하는 글을 쓴다. 현재 인공지능 예술 융합 분야에서 실험적 전시와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하은정 기자 hah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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