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곁 지킨 공간, 양덕동 성당의 반세기
김수근 건축 위에 쌓인 ‘노동과 공동체’
산업화 시기 한복판서 ‘열린 교회’ 실천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천주교마산교구 양덕주교좌성당이 8일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이 성당은 마산교구를 상징하는 장소이자, 한국 천주교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다. 고 김수환(1922년 5월 8일~2009년 2월 16일) 추기경이 거친 마산교구 본당이라는 상징성, 산업화 시기 노동자들과 함께했던 사회적 역할, 공동체 중심으로 설계된 건축적 의미가 이곳에 겹겹이 쌓여 있다.
마산교구 출범 후 거점 교회로 성장
양덕동 성당 역사는 마산교구 출범과 맞물려 시작된다. 마산교구는 1966년 2월 부산교구에서 분리돼 새롭게 출범했고, 초대 교구장으로는 김수환 스테파노 주교가 임명됐다. 착좌식이 그해 5월 성지여자중·고등학교 교정에서 7000여 명 인파 속에 거행됐다. 당시 김 주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제시한 교회의 내적 쇄신과 천주 백성의 일치를 사목의 첫째 목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마산교구 양덕동 성당은 1975년 12월 8일에 설립됐다. 김 주교가 교구 토대를 닦다가 뜻하지 않게 1968년 4월 서울대교구장으로 떠나고 나서 7년 뒤다. 초창기 성당에는 석전동·합성동·양덕동·회성동·구암동·봉암동·웅남동 등에 거주하던 신자 650명이 옮겨왔다. 초대 주임신부는 그라츠교구 소속으로 대구대교구에서 사목하던 오스트리아 출신 박기홍(요셉 플라처) 신부였다.

노동운동 둥지가 된 양덕성당
양덕동 성당은 일대가 급격한 산업화 한복판에 있던 시기부터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공동체 공간으로 기능했다. 노동자 삶 한가운데서 지역 공동체와 함께 숨 쉰 셈이다. 성당 인근 마산수출자유지역을 중심으로 봉제·전자·조립 산업이 확장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젊은 노동자들이 몰리던 때다. 성당은 열악한 노동자 삶을 외면하지 않고 야학과 모임, 상담이 이뤄질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그 덕에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세상을 토론했다. 노동 현실을 이해하고 스스로 권리를 인식하도록 돕는 노동교육도 받았다. 노동권 관련 강의, 노동자 모임이 성당 안에서 활발하게 열렸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문제의식과 연대는 지역 노동운동으로 확장됐다.
마산자유무역지역 일본 전자자품 업체와 한일합섬에서 근무했던 양덕동 성당 신자 김무연(1954년생) 씨는 이렇게 기억했다.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노동 문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일은 늘 감시와 압박을 동반했습니다. 그런데도 성당은 과도한 노동에 지친 노동자들에게 버팀목이 돼줬어요. 직장인끼리 노동 현실을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내줬고, 서로 위안을 얻을 수 있게 도왔습니다."

'사람 중심 설계' 김수근의 건축 철학
양덕동 성당하면 건축적 의미 또한 주목할 만하다. 가치를 더욱 두텁게 만드는 것이 이 건물이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고 김수근(1931년 2월 20일~1986년 6월 14일) 건축가와 그의 제자인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곳이라는 점이다. 두 사람이 이곳을 단순 종교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고 머물며 관계를 맺는 공동체 공간으로 구상했다. 위압적인 성당 건축과는 거리를 뒀다. 신자 신앙 활동 참여와 만남을 고려한 배치를 택했다. 이는 당시 천주교가 강조하던 '열린 교회' 흐름을 반영한 결과다.
건물은 대지 2299.6㎡(696평)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연 면적 1703.57㎡)로 지어졌다. 주요 구성은 △1층 849.15㎡ 규모 대회합실 1개·소회합실 5개 △2층 588.83㎡(178평) 성전 200석 △3층 139㎡(42평) 성가대석 100석 등이다. 건립 비용은 오스트리아 그라츠교구 50만 달러, 독일 미세레올 재단 3000만 원, 마산교구 1100만 원, 김한수 전 한일합섬 회장 500만 원, 성당 신자 500만 원 등으로 마련됐다.
양덕동 성당 건축 성격은 그간 성당이 수행한 사회적 역할과도 맞닿아 있다. 노동교육과 모임, 야학과 상담이 가능했던 이유 역시 공간이 배제보다는 개방을, 침묵보다는 소통을 전제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산업화 한복판에서 지어진 이 성당은 개발과 효율이 지배하던 시대에 사람 중심 공간이 무엇인지를 묵묵히 보여준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 성당을 둘러싼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산업 구조가 변했고, 많은 노동자가 지역을 벗어났다. 그러나 성당이 지킨 기본적인 존재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성효 천주교 마산교구장은 이렇게 전했다. "하느님 안에서 함께한 지난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그 섭리에 감사드리고, 신앙 안에 더 깊이 뿌리내리는 계기를 만들어 나갑시다. 오늘이 있기까지 양덕동 공동체를 이끌어주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모든 일들이 주님 뜻 안에서 순조롭게 이뤄지길 기도드립니다."
/최석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