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빈티지 골프'

방민준 2025. 12. 1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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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 한 병을 열어 잔에 따르면 우리는 단순히 액체를 마시는 것이 아니다.

한 병의 와인은 결국 그 해의 자연과 인간이 공동으로 빚어낸 연대기다.

우리가 다시 골프 코스를 찾는 이유 또한 마치 와인 애호가가 새로운 빈티지를 찾듯 '오늘의 나'라는 또 다른 맛을 알아가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한 병의 와인이 한 해의 기후를 담듯 한 라운드는 그날의 나를 고스란히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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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용과 관련 없는 참고 이미지입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사진, 이미지를 무단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골프한국] 포도주 한 병을 열어 잔에 따르면 우리는 단순히 액체를 마시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엔 포도가 자란 해의 햇살과 바람과 비, 산비탈의 흙냄새, 재배자들의 손길까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기후가 변덕스러웠던 해에는 맛도 흔들리고, 장대비가 지나간 해에는 예상치 못한 부드러움이 깃든다. 한 병의 와인은 결국 그 해의 자연과 인간이 공동으로 빚어낸 연대기다.



 



골프 역시 다르지 않다. 한 라운드는 그날의 골퍼가 가진 모든 환경을 그대로 담아 낸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스윙이 조금은 떨리고, 마음이 복잡한 날은 퍼팅 라인이 흔들린다. 또한 동반자의 기운, 코스의 잔디 결, 아침 공기 속 습도와 체온까지 담긴다. 라운드는 우리 몸과 마음, 그리고 자연이 함께 빚어낸 그날의 빈티지(vintage)다.



 



빈티지란 통상 포도주가 만들어진 연호가 표시된 정선된 와인을 가리키거나 특정 해에 생산된 특정 와인을 지칭한다. 라틴어인 vinum(wine)과 demere(take off)가 합쳐진 말로, 풍작의 해에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이라는 뜻이다.



 



2년 또는 그 이상에 걸친 해에 생산된 와인을 섞어 만든 일반적인 와인은 nonvintage wine이라고 하지만 vintage wine이라고 해서 특정 해에 만든 와인이 100%라는 뜻은 아니다. 그 기준은 나라마다 달라 유럽·미국·호주권에선 85퍼센트 이상, 칠레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75퍼센트 이상이면 vintage wine이라고 한다. 오래되었으나 가치 있는 고풍스런 아름다움을 지닌 의류나 가구, 장신구 등에도 빈티지란 용어를 쓴다.



 



골프 스코어는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골프 코스의 모든 조각들이 모인 퍼즐 판이다. 호쾌한 샷을 날리고 난 뒤의 상쾌함, 위험 앞에서 긴장했던 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혼돈에 빠진 마음, 미묘하게 출렁이는 바람, 벙커 앞에서의 작은 망설임까지 차곡차곡 담긴다.



 



와인이 숙성되며 향미를 가꾸듯 골퍼 역시 경험을 켜켜이 쌓아가며 자신만의 풍미를 완성해 간다. 어떤 와인은 첫 향보다 끝의 여운이 길 듯 어떤 라운드는 버디보다 특정 홀에서의 파 하나의 감흥이 훨씬 길게 남는다.



 



우리가 다시 골프 코스를 찾는 이유 또한 마치 와인 애호가가 새로운 빈티지를 찾듯 '오늘의 나'라는 또 다른 맛을 알아가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한 병의 와인이 한 해의 기후를 담듯 한 라운드는 그날의 나를 고스란히 담는다. 그렇기에 골프도 와인도 칠 때와 마실 때의 자신이 곧 그 순간의 품질이 된다. 



결국 골프는 내가 경작해 만들어낸 포도주다. '빈티지 골프'다. 어찌 나의 모든 것이 담긴 포도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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