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유출 이후, 그놈 목소리 [편집국장의 편지]

변진경 편집국장 2025. 12. 15.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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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던 중 전화를 받았다.

"○○야, 네가 얘기해봐." 전화기 너머로 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집 주소나 아이 학교 정보까지 조합해 더 그럴 듯하게 속이고, 전화를 도중에 끊거나 다른 데 얘기하면 지금 당장 아이를 해코지하겠다며 피해자의 혼을 빼놓는 경우도 있었다.

나의 개인정보(이름·전화번호·주소·가족관계 등)를 알고 있는 상대방 앞에서, 사람은 생각보다 취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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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시사IN〉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편집국장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 시대를 정직하게 기록하려는 편집국장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개인정보 유출은 '보이스피싱' 처럼 실제 삶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시사IN 신선영

일하던 중 전화를 받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 엄마죠?” 내 아이 이름이었다. “네? 누구시죠?” 굵은 목소리의 남성이 말했다. “○○야, 네가 얘기해봐.” 전화기 너머로 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저씨가 나 때렸어, 흑흑···.” 순간 뇌 정지. 숨을 멈추고 생각하는 사이 전화가 뚝 끊겼다.

‘이게 그거구나, 아이 납치 사칭 보이스피싱.’ 머리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몸은 벌벌 떨렸다. ‘내 아이 이름? 이미 다 털렸겠지. 하지만 목소리가 비슷한걸? 아냐, 울먹이는 사람 목소리는 남녀노소 비슷하게 들려서 사람들을 현혹시킨댔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콜백을 해볼까? 안 돼, 그러다 낚여서 귀신에 홀린 듯 피해 본 사례 많이 봤잖아···.’ 불안과 이성이 머릿속에서 격렬히 부딪쳤다. 손이 떨려서 스마트폰 터치가 잘 안 됐다. 천만다행으로 아이와 금방 연락이 됐다. 집에서 간식 먹으며 게임하고 있었다. 다리 힘이 풀리고 눈물이 쏟아졌다. ‘와, 말로만 들었는데 이런 거구나.’ 만약 바로 아이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면? 이성의 끈을 놓고 어딘가로 통장의 돈을 입금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것저것 찾아보니 더 끔찍한 사례도 많았다. 집 주소나 아이 학교 정보까지 조합해 더 그럴 듯하게 속이고, 전화를 도중에 끊거나 다른 데 얘기하면 지금 당장 아이를 해코지하겠다며 피해자의 혼을 빼놓는 경우도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렇다고 속나’ 싶겠지만 직접 당하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나의 개인정보(이름·전화번호·주소·가족관계 등)를 알고 있는 상대방 앞에서, 사람은 생각보다 취약하다. 특히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가족·돈·명예 등)을 담보로 걸고 위협해오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어디에서 내 정보가 털렸을까? 의심되는 곳이 너무 많아서 특정하기가 어렵다. 5% 할인쿠폰을 받기 위해 마케팅 활용 동의 ‘선택’ 버튼을 누르고, 스스로 자진해서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이벤트에 참가하려 온라인 교육 사이트에 아이 이름을 적고 가입한 숱한 날들이 떠올랐다. 긴 약관 속 어딘가 내 정보를 제공받는 측의 의무와 권리가 적혀 있었겠지만, 이미 ‘어차피 다 털렸겠지’라는 체념에 익숙해진 지 오래되었다. 그 체념이 너무 깊어져서, 기업이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가지지 않아도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구조가 어느새 완성돼 있다.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까. 개인정보 유출이 실제 삶의 위협으로 다가온 지금, 한국 사회가 절실히 고민해야 할 문제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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