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家호호] 노부부가 인생 황혼기를 함께 보낼 집 | 전원생활
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12월호 기사입니다.

강씨의 손길이 닿지 않는 데가 없다는 마당과 텃밭은 잡초 하나 없이 정돈돼 있다. 강씨가 시집왔던 때부터 모아온 크고 작은 옹기들은 소나무 아래의 장독대 위에 정갈한 모습이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이 풍경 속에 노부부가 산 지는 어느새 7년 차. 바로 옆 주택에서 10년 정도 살다가, 집을 관리하기가 힘에 부쳐 평수를 줄여 새로 지은 게 이 집이다.
강씨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서자 나무살로 된 내창 안으로 아침 햇살이 가득 들어와 바깥 풍경만큼이나 따뜻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방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남편 정씨가 인사를 건넸다. 편백나무로 벽면을 두른 정씨의 방에선 은은한 숲향이 느껴졌다. 황토 벽돌을 쌓아 올린 침대는 집을 지을 때 함께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내 방, 아내 방 침대 모두 직접 제작한 거예요. 황토가 몸에 좋잖아요. 벽이랑 천장은 편백나무로 했는데, 숲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요. 잠도 아주 잘 옵니다.”

이 집의 설계자는 부부의 둘째 아들 정희철 씨(48)다. 서울에서 건축설계사로 근무했던 그는 견문을 넓히기 위해 느지막이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3년 뒤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설계를 진행한 프로젝트가 바로 부모님 집을 짓는 일이었다. 10개월간 설계도 100여 종류와 집 모형 30여 개를 제작하는 등 매주 주말마다 서울과 문경을 오가며 설계를 진행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좋은 건축이 완성될 수 있다는 생각은 그가 유학 시절 마음 깊이 새긴 건축 철학이다. 부부는 그런 아들을 믿고 원하는 집의 모습을 마음껏 그려갔다. 이후 9개월간의 공사를 마치고 2018년 겨울, 마침내 노부부가 남은 세월을 보낼 아담한 전원주택이 완성됐다.
“요즘은 이런 옛 기와를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구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과거 번듯한 집의 표상이던 기와 올린 집을 온전히 구현해 젊은 시절 넉넉지 못했던 부모님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기와를 올리고 나니 부모님도 만족스러워하시고, 저도 마음이 뿌듯했죠.”
이 집은 복도가 1자로 돼 있어 자칫 단조로운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이에 정씨는 집 외벽에 원통과 삼각기둥 모양의 구조물을 만들었다. 현관 양쪽에 설치된 두 구조물은 황색 흙벽돌을 쌓아 올려 토속적인 멋을 더한다. 흙벽돌 벽은 내부로도 이어져 집 안팎으로 예스러운 분위기를 낸다.

한편 부모님이 작은 공간 안에서 관리가 편리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생활하길 바란 아들은 여러 부분에서 효과적인 설계를 적용했다. 집을 남향으로 배치해 모든 방에 햇살이 넉넉히 들어오도록 한 덕에 썰렁해지기 쉬운 노부부의 일상 공간을 한결 포근하게 만들었다. 또 거실을 조용한 분위기로 유지하기 위해 부엌을 거실 벽 뒤로 숨기고, 양쪽에 미닫이문을 달아 조리 소리와 냄새가 퍼지는 걸 최소화했다. 이와 함께 조그만 다락 공간을 만들어 평소엔 창고로 쓰다가, 명절이나 가족 행사 때 친지들이 머물 수 있도록 하는 등 공간의 효율성을 높였다.
“클 때부터 희철이는 성격이 곰살맞고 사려 깊었어요. 조그만 장난감을 하나 사줘도 분해해서 세부를 살필 만큼 호기심도 많았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건축가가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아들이 우릴 위해 집을 지어주니 감회가 새로워요. 아들을 잘 둔 덕이죠.”
“조그만 셋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어요. 남편 사무실에서 회계 업무 보면서 맞벌이로 일했죠. 오래된 양옥 주택에 살면서 아이들 공부시키고, 그 후엔 둘이서 단층 주택에서 살았어요. 그렇게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나니까 세월이 다 가버렸어요. 둘 다 없이 시작해서 젊었을 땐 손해도 보고 고생도 했지만, 돌이켜 보면 남부러울 것 없이 산 거 같아요. 이젠 이 집에서 근심 없이 남편이랑 사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어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부부의 옛 흔적들은 집 안 곳곳에서 보물처럼 빛나고 있다. 정씨가 보험설계사로 근무하며 받았던 상장과 트로피 등 영광의 증표들은 장식장을 가득 채운다. 부부의 신혼 때부터 시작해 두 아들이 한 뼘씩 커갈 때마다 찍은 가족의 추억이 담긴 사진, 두 아들이 각자 가정을 이룬 후 새 식구와 함께 찍은 사진 등을 보건대 세월은 흘러가는 게 아니라 쌓여가는 모양이다. 아들 정씨는 자신이 설계한 집에서 젊은 날을 떠올리며 은퇴 후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부모님을 보면 기쁜 마음도 들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무겁다 말한다.
“부지 선정, 설계, 시공까지 전 과정에 있어 오롯이 부모님만 생각하고 지은 집이에요. 설계 과정에서 부모님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최대한 반영했죠. 그런데도 공사를 마치고 난 후에는 마음이 무거웠어요. 부모님에게 마지막 집이 될 수도 있는 집을 저 사는 일에 바빠 이제야 지어드렸다는 생각에 죄송스럽더라고요. 그간 표현은 많이 못 했지만, 앞으로는 이 집에서 두 분 모두 자식 걱정 없이 편히 지내시면 좋겠어요.”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의 등을 보고 배우고, 그 등을 받쳐주면서 어른이 된다. 그 말이 그대로 담겨 완성된 집. 노부부의 신산했던 세월의 더께와 이를 헤아려 든든한 새 울타리를 만들어준 아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 맞닿은 아늑한 품 같은 ‘기와 올린 집’에 따뜻한 가을 햇살이 환히 내려앉았다.
글 이수정 기자 | 사진 고승범(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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