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마다 콩 산적…“농자재값도 못 줄판”

윤슬기 기자 2025. 12. 1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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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수매 배정물량 적어 ‘혼선’
추가수매 늦고 판로 없어 ‘암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되풀이
“정책 믿고 벼에서 논콩 전환 물량
전수배 서둘러 유동성 높여야”
전북 김제 죽산면에서 논콩농사를 짓는 정대일씨가 창고에 보관 중인 올해산 논콩을 보여주고 있다. 1t이 넘는 톤백이 50여개 쌓여 있다.

“이번에도 내년 3월까지 콩을 자체 보관해야 하는 건 아닌지 답답합니다.”

8일부터 정부의 콩 비축물량 수매가 시작된 가운데 전북지역에선 지역별 수매물량 배정이 적절치 않아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전남 등 다른 지역에선 배정물량을 못 채울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지만 전북지역은 배정량이 턱없이 부족해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11일 찾은 전북 김제시 신덕동 죽산면에 위치한 한 보관창고에는 50㏊ 규모로 논콩농사를 짓는 정대일씨(42)가 생산한 올해산 논콩이 가득했다. 지역농협이 배정받은 정부비축 약정물량(정부 수매량)이 적어 출고하지 못해 창고에 쌓아둔 것이다.

정씨는 “농협에 1.2t짜리 50포대만 출고하고 아직 50여개가 남았다”면서 “연말까지 논 임차료도 현금으로 지불해야 하고 농자재값도 갚아야 하는데 자금 유통을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이정용 김제농협 조합장은 “올해는 작황이 좋지 않아도 재배면적이 늘면서 농협이 파악한 계약농가의 생산량이 7000t에 달하는데 정부 수매량은 3289t밖에 배정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부 수매가 원활하지 않자 논콩농가들의 불안감도 치솟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물량을 채우지 못해 남은 잔여물량이 전북에 추가 배정될 거라는 이야기가 돌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확답해주는 곳이 아무 데도 없기 때문이다.

신정식 부안중앙농협 조합장은 “지난해는 밭콩 작황이 좋지 않아 타 지역 잔여물량을 늦게라도 받아왔는데, 올해는 논콩과 달리 밭콩 작황이 좋아 잔여물량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농가도 많다”고 말했다.

수매 이후로 미뤄뒀던 각종 영농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농가 입장에선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도 없다. 게다가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상인들이 가격을 낮춰서 부르는 터라 농가들은 사면초가다.

정씨는 “내년 3월까지 (정부 수매를) 기다리면 콩 수분함량이 줄어 무게가 감소해 몇백만원이 날아가기 때문에 이미 손해는 발생했다”면서 “그럼에도 현재 정부 수매가격이 1㎏당 4600원인데 상인들은 4170원을 부르기 때문에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문제는 이것이 ‘예고된’ 혼란이라는 점이다. 지난해에도 전북에선 주요 지역농협들이 배정받은 정부 수매량이 부족해 타지역 잔여물량을 넘겨받아야 했고, 결국 올 3월까지 수매를 이어갔었다.

이 조합장은 “지난해 처음 배정받은 물량이 3280t이었는데 수차례 잔여물량을 배정받은 끝에 6730t까지 수매했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선 올해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배정물량을 늘려줄 것을 꾸준히 요구했지만 지난해와 대동소이한 물량이 배정되면서 문제가 반복됐다는 것이다.

신 조합장은 “지난해 수매실적을 바탕으로 배정해줬으면 좋았을텐데 거의 반영되지 않아 생산량이 많은 농협은 올해도 전수배(다른 시·도로 물량 이관)를 통한 추가 물량 배정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일단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전략작물육성팀 관계자는 “콩 6만t 수매 목표량을 여지껏 달성한 적이 없으니 일단 수매를 진행하며 기다려볼 것”이라면서 “지역별로 약정물량을 다 채우지 못하는 곳의 물량을 빠르게 전수배하고, 그러고도 부족하면 추가 수매방안까지 고려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를 믿었던 농가들은 당혹감을 토로한다. 사실상 개별 판로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의 벼 재배면적 감축 정책에 따라 정부 수매를 믿고 콩으로 전환한 농가가 대부분이어서다. 현장에선 ‘정부에게 배신당했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2년 연속 수매에 혼란이 빚어지면서 기계설비 투자를 하지 않은 소농을 중심으로 다시 벼 재배로 돌아설 우려가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수종 정읍 샘골농협 조합장은 “매년 잔여물량 배정만 기다리며 이듬해 3월까지 농가들이 불안해해서야 되겠냐”면서 “쌀 적정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지금까지 논콩농사에 뛰어든 농가들의 물량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제·부안·정읍=윤슬기 기자 sgyoo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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