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벼락같이 찾아온 비극에 굶게 생겼는데… 긴급 예산 다 떨어진 지자체들

홍인택 2025. 12. 15.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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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개 기초지자체 긴급복지 예산 분석]
익산·울릉·거제·금산 등 7개 시군구서 고갈
일부선 "추경 통과까지 기다려달라" 안내
지난해 강남 비극처럼 연말 사각지대 우려
"지자체 문책 대신 국가가 예산 넉넉히 짜야"
서울 지역의 한 주민센터 현판. 기사 본문과 관련 없는 사진. 허유정 기자

주 소득원의 사망이나 실직 등 벼락같이 찾아온 위기 탓에 큰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가구에게 기댈 언덕인 긴급복지 예산이 한 해가 다 가기 전 동이 나버리는 현상이 올해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말 서울 강남구에서 50대 남성이 긴급복지 지원을 받지 못하고 끝내 숨진 사건처럼, 주민센터를 찾고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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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굶주리다 주민센터 찾았지만 결국 사망… 연말이면 긴급복지 예산이 없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70612110000881)

한국일보가 14일 행정안전부의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지방재정365)을 통해 전국 기초자치단체 226곳의 긴급복지 사업 예산 집행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북 익산시·임실군 △경북 울릉군 △경남 거제시 △충남 금산군 △인천 서구 △제주 서귀포시의 긴급복지 사업 예산은 이미 소진됐다. 집행 잔액이 1인 가구 한 달 생계 지원금인 73만500원 밑으로 떨어진 지역이다. 긴급복지는 주 소득자의 사망·실직·질병 등으로 위기에 처한 가정에 생계비를 즉각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가장 먼저 예산이 떨어진 지자체는 전북 익산시로 지난달 28일 다 소진됐다. 이어 경북 울릉군에서 이달 1일에 예산이 소진됐고 경남 거제시는 이달 3일, 충남 금산군은 10일 예산이 떨어졌다. 12일엔 전북 임실군, 인천 서구, 제주 서귀포시의 예산이 떨어졌다. 최초로 예산이 고갈된 지자체가 나온 시점은 지난해(11월 29일 부산 남구)와 비슷하나 12월 14일을 기준으로 예산이 고갈된 지자체는 올해가 더 많다. 지난해엔 12월 1일 인천 동구까지 2곳이 예산 부족을 겪었다.

그래픽=신동준·송정근 기자

예산이 부족한 지역에 사는 위기 저소득층 가정은 제도 취지대로 '72시간 내 긴급 지원'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민간에서 모금한 후원금으로 생계비를 지원하는 지역도 있으나, 기부금마저 부족한 지역에선 "며칠만 기다려달라"며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더라도 지방의회의 의결과 예산 배분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금산군청 관계자는 "추경은 해놓은 상태인데 의회에서 오는 15일에 의결이 된다고 해도 예산이 도를 통해 내려오는 데는 1주일이 더 걸린다"며 "생계 지원의 경우 사정을 말씀드리고 22일 이후로 지급이 가능해서 그때 신청을 하시라고 안내하고 있다"고 했다. 예산이 없는 경우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모금된 기부금을 통해 급하게 생계비를 지원하기도 하지만 금산군은 그마저도 다 떨어진 상황이다.

울릉군도 비슷한 상황이다. 예산이 고갈된 후 11일이 지나서야 추경이 의회에서 통과되며 예산이 충원됐다. 그간 울릉군은 더 긴급한 주민들에겐 민간 기부금을 통해 생계 지원을 하고, 다른 이들에겐 추경 이후 지원이 가능하다고 안내했었다. 가장 먼저 예산이 고갈된 익산시도 민간 후원을 통해 지원받고 있다. 거제시는 경상남도 차원에서 따로 실시하는 긴급복지 사업의 예산이 남아 있다.

긴급복지는 지역의 경기 상황 등 변수가 많아 예측이 쉽지 않다. 애초에 본예산 자체가 넉넉히 마련돼야 하는 이유다. 가령 금산군은 당초 올해 본예산에는 긴급복지 예산이 5억250만 원으로 전년보다 6,150만 원 많게 편성됐으나, 지난 9월 군의회에서 통과된 추가경정예산안에서 다시 4,326만 원이 삭감됐다. 당시 긴급복지 예산이 부족한 다른 시군에 지원하기 위해 충청남도 차원에서 조정이 이뤄진 것이었다.

울릉군은 올해 본예산은 지난해와 동일하게 9,238만 원으로 편성했다가 지난 9월 추경을 통해 2,000만 원을 이미 증액한 바 있다. 또 금산군과 거제시의 경우 지난해 12월 31일을 기준으로는 긴급복지 예산이 남았던 지역이기도 하다.

부족한 예산 탓에 지원이 급한 저소득 가구가 '긴급 지원'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빚어지지 않으려면, 중앙정부와 국회가 애초에 보다 넉넉하게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긴급복지에 '선지원 후조사'라는 원칙이 지켜지려면 예산이 충분하게 확대돼야 한다"며 "지자체에 대한 문책이 아닌 국가 차원의 예산 확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긴급복지 예산은 약 4,052억 원으로 올해보다 약 322억 원 늘었다.

긴급복지 제도란
2004년 12월 대구 불로동에서 건설 일용직 아버지가 겨울철 일감이 떨어지자 온 가족이 굶주렸다. 이 여파로 세 아이 중 다섯 살 된 둘째 아이가 굶어서 사망한 비극이 발생했다.

'대구 5세 남아 영양실조 사망사건'을 계기로 2006년부터 시행된 제도가 긴급복지 지원이다. 처음에는 주 소득원의 사망·가출·구금·질병으로 한정했다가 실직 등으로 확대됐다. 현재는 가구구성원으로부터의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화재 또는 자연재해로 거주지에서 살기 어려운 경우, 주 소득자의 폐업 및 휴업, 실직으로 소득을 상실한 경우, 이혼, 단전, 출소, 노숙 등 다양하다.

소득이 기준중위소득의 75% 이하여야 하고, 부채를 뺀 재산 총액이 대도시 기준 2억4,100만 원(농어촌은 1억3,000만 원)이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심사하는 것은 생계비를 지급한 이후다. 우선 빨리 지원해야 하는 긴급성을 감안한 것이다.

사망진단서(주 소득자 사망), 퇴거명령서(거주지 강제철거 등 때), 전류제한기 부설 예고 통지문(요금 장기 체납으로 전기공급 제한)처럼 비교적 간단한 서류를 내고 최장 6개월의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의료 지원은 한 해 300만 원 이내의 의료비를 지원한다. 주거 지원은 국가 또는 지자체가 소유한 임시 거소를 수급자에게 제공하거나, 곤란할 경우 1회에 한 해 주거 비용을 지원한다. 예산은 국비가 80%이며,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가 각각 10%씩 부담한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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