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진짜 사장” 원청에 성과급 인상 요구한 하청 노조

김아사 기자 2025. 12. 15. 00:4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화오션 상생안 후폭풍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지난 12일 현대차 울산공장 앞에서 결의 대회를 연 모습. 이들은 현대차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하청업체 노동자들로, 현대차 공장에서 보안·미화·급식 등 업무를 맡고 있다./민주노총 텔레그램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지난 12일 울산시 현대차 울산공장 앞에서 결의 대회를 열고 “‘진짜 사장’인 현대차가 나서 성과급을 올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현대차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하청업체 노동자들로, 현대차 공장에서 보안·미화·급식 등 업무를 맡고 있다. 원래는 자신들이 속한 하청업체 경영진을 찾아가야 하는 사안인데, 이날 현대차를 ‘진짜 사장’으로 지칭하면서 성과급 인상을 요구한 것이다.

이를 놓고 경영계에선 “지난 11일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게 된 한화오션 사례의 여파”란 분석이 나온다. 한화오션은 하청업체에도 본사와 같은 비율로 성과급을 지급해주기로 했는데, 이 같은 결정이 노동계에서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차는 구매 협력사까지 합치면 협력사 수만 8500개에 달하는 국내 제1의 제조업체다. 그런 만큼 현대차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노동계가 이번에 현대차를 선제적으로 겨냥한 것이란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 현대차의 미화·보안·급식 관련 업무는 하청업체를 통해 이뤄진다. 현대차는 핵심인 자동차 생산에 집중하고, 비핵심 기능은 외부 전문 업체에 맡기자는 취지다. 자연히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성과급은 이들이 속한 하청업체가 결정해 지급해 왔다. 그런데 이날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현대차는 (사내 하청 업체에) 도급비 안에서 성과급을 알아서 결정하라고 하는데, 이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너희는 찌꺼기나 받아 먹으라’는 모멸적 말과 같다”며 “현대차가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안정과 공정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현대차는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기본급의 450%를 성과급으로 주기로 했는데, 이들도 비슷한 비율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청 업체의 임금, 성과급을 대폭 올리라는 요구는 이미 곳곳에서 거세지고 있다. 조선 업계에서도 다른 업체들이 한화오션처럼 하청 노동자에게 정규직과 동일한 성과급을 지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지난 12일엔 조선소가 몰려 있는 울산 동구의 김종훈 동구청장이 HD현대중공업을 콕 집어 거론하며 “연말 성과급을 원·하청 차별 없이 지급해 달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대차 하청 비정규직지회가 ‘진짜 사장’을 외치며 교섭을 요구하는 모습이 내년 3월 이후엔 전국 곳곳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문제는 일단 하청 노조가 이런 식의 주장을 담은 교섭을 요구할 경우 기업들은 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노란봉투법 때문이다. 실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노란봉투법이 정의한 ‘사용자 판단 기준’과 관련해 “(교섭 의제 중) 어느 하나라도 인정이 되면 사용자로 판단된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장관 발언대로라면, 하청 노조가 산업 안전 분야 등 비교적 사용자로 인정받기 쉬운 항목을 내세워 원·하청 간 사용자성을 인정받아 교섭 테이블을 차리면 사측은 무조건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처벌받기 때문이다. 하청 노조들은 교섭 과정에서 파업 등을 무기 삼아 무리한 요구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경영계에선 결국 이 같은 교섭의 반복이 하청업체의 직고용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하청 노조가 주장하는 원·하청 간 차별 철폐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다 보면 하청 노조를 직접 고용하는 수순으로 이어지는데, 이를 방어할 수단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하청을 두는 건 각자 전문화된 분야에 집중해 효율을 높이자는 것인데, 노란봉투법으로 기본적인 경제 논리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실제 경영계의 노란봉투법 시행에 대한 두려움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매출액 5000억원 이상 국내 기업 100곳을 대상으로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3일까지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 기업 87%는 노사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하청 노조의 원청 대상 교섭 요청과 과도한 요구 증가’(74.7%), 모호한 규정에 따른 법적 분쟁 증가(64.4%) 등이 가장 큰 이유로 꼽혔다. 응답 기업 99%는 ‘국회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했고, 63.6%는 ‘법 시행 시기를 유예해야 한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