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직장 내 갑질’ 같은 대통령 업무 보고, 민망·유치하지 않나

이재명 대통령이 국토부 업무 보고에서 야당 3선 의원 출신인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을 공개 질책했다. ‘100달러짜리를 책갈피로 끼워 해외 밀반출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이 사장이 “주로 유해 물질을 검색한다” “세관하고 같이한다”고 설명하자 말을 끊으며 “옆으로 새지 말라” “참 말이 기십니다”라고 했다. 준비 자료를 보려는 이 사장에게 “써준 것만 읽지 마시라” “지금 다른 데 가서 노시냐”고도 했다. 전 국민에 생중계되는 자리에서 앞 정부가 임명한 공기업 사장을 면박 준 것이다.
이 대통령이 지적한 ‘외화 반출 단속’은 기본적으로 세관 업무다. 공항 검색은 칼·흉기 등 승객 안전을 위협하는 물품을 적발하는 것이 주 업무이고 종이인 지폐 자체는 보안 검색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대통령 지시대로 승객 책을 모두 뒤지려면 검색 지연으로 제때 탑승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은 입찰 공고조차 안 나온 이집트 공항과 관련한 수요·전망 등을 따지듯 물으며 이 사장을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러면서 “임기가 3년씩이나 됐는데 업무 파악을 정확하게 하고 있지 않은 느낌”이라고 했다. 다음 날 이 사장은 조목조목 해명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대통령은 면박을 주고, 공기업 사장이 공개 반박하는 일이 벌어졌다.
동북아역사재단 업무 보고에선 “역사 교육 관련해 ‘환빠(환단고기 추종자)’ 논쟁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환단고기는 고조선 이전의 ‘환국’이 최초의 문명이자 유라시아에 걸쳐 방대한 영토를 차지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학계에선 ‘위서(가짜 책)’로 판명 난 지 오래다.
박지향 이사장이 “전문 연구자와 문헌을 중시한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환단고기는 문헌 아니냐” “문헌에 있는 것을 증거라고 하는지 논쟁거리”라고 했다. 허황한 자료를 놓고 어떻게 ‘역사 교육’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지 의아하다. 이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박 이사장의 ‘파면’을 요구했었다.
대통령이 부처 보고를 공개하고 기관장이나 정책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개된 자리에서 상급자가 하급자를 질책할 때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일반 직장에서도 상급자가 모욕적 말로 꾸짖으면 ‘갑질’로 징계 대상이 된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일선 기관장을 생방송에서 면박하는 모습은 국민 보기에 민망하다. 만약 앞 정부 인사를 내쫓으려는 의도가 있다면 유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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