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조끼 벗어라” 롯데백화점은 사과했지만···드러난 ‘노동 혐오’와 ‘책임의 외주화’

김태욱 기자 2025. 12. 1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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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이수기업 해고자 등이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백화점의 노조 조끼·몸자보 탈의 요구에 항의하고 있다. 김태욱 기자

지난 10일 롯데백화점이 노조 조끼를 입은 손님에게 ‘조끼 탈의’를 요구해 논란이 일자 백화점 측이 공식 사과했지만 비판은 식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노동혐오·몰이해가 노조 조끼에 대한 혐오로 나타난 사례”라고 지적했다.

지난 10일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벌어진 ‘노조 조끼·몸자보’ 등 착용 고객에 대한 탈의 요구는 곧바로 회자되며 공분을 일으켰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합원 등 11명이 인근 쿠팡 본사 사옥에서 집회를 한 뒤 백화점 식당가에 들러 식사를 하려다 백화점 보안요원으로부터 “공공장소에선 에티켓을 지켜달라”며 탈의를 요구받으면서다.

노조 조끼를 착용한 이김춘택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이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식당가에서 백화점 보안요원(왼쪽)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X(옛 트위터) 영상 갈무리

☞ 저녁 먹으러 왔는데···노조 조끼 벗어야 한다는 롯데백화점
     https://www.khan.co.kr/article/202512120807001

‘노동혐오’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백화점 측은 지난 11일 사과 입장을 내고 “안전요원이 주변의 다소 불편한 분위기를 감지해 이슈 발생을 막고자 탈의 요청을 드렸던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백화점 측의 해명에도 논란은 거셌다. 일각에선 “노조 조끼가 주변 이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제지 대상이라는 인식이 깔렸다”는 지적이 먼저 나왔다. 당시 현장에서 제지를 당했던 A씨는 14일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주변의 불편한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며 “백화점에 들어설 때부터 (보안요원이) 제지했다”고 말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이수기업 해고자 등이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 1층 식당가에서 취재진을 만나 지난 10일 롯데백화점 측이 노조 조끼·몸자보 탈의를 요구하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태욱 기자

신하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변호사)은 서울남부지법 사례를 들며 “탈의 요구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말했다. 2022년 1월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 지회장은 노조 조끼를 입고 남부지법 민원실을 방문했다가 직원들로부터 제지를 당했다. 신 변호사는 “당시 인권위는 출입 제지를 차별행위로 봐 시정을 권고했다”며 “인권위 진정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도 “독일에서는 손팻말 등을 가리는 것조차 위법으로 보는데, 단순 착용을 제지하는 건 다른 나라였다면 있을 수 없는 몰상식한 일”이라고 했다.


☞ 노조 조끼 입고 법원 출입 안된다는 서울남부지법, 인권위 “과잉제지”
     https://www.khan.co.kr/article/202207131517011

백화점이 책임 소재를 ‘외주화’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백화점은 “용역업체 보안 요원이 혹시 모를 불편 상황을 우려해 요청한 것일 뿐, 백화점 차원의 복장 관련 규정은 없다”며 책임을 하청 보안업체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자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은 지난 11일 성명을 내 “(제지하던 보안요원의) ‘저도 노동자에요’라는 말에 ‘나도 노동자이니 위에서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담겼다”고 했다.

하 교수는 “(보안요원이) 직고용직이었다면 (백화점 지침과 다른) 대응이 나왔겠냐”며 “외주화가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하고 서비스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신 변호사도 “용역이 한 일로만 주장한다면 보안업무를 용역으로 돌려 관리가 안 된 책임은 누구 몫인지 되물을 일”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일이 뿌리 깊은 노동 혐오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하 교수는 “장기간 분단 상태에 놓인 우리 사회의 특수성은 ‘레드 콤플렉스’에 기반한 노동 혐오·몰이해의 만연으로 이어졌다”며 “(이 사건은) 노동이란 단어에 대한 혐오감을 보여준 일”이라고 했다.

신 변호사는 “정장 입고 사무직 해야 제대로 된 직업이라는 비유부터, 과거 범죄자 수배 공고에 ‘노동자 풍 인상’이라는 표현까지 노동 혐오는 오래된 정서”라며 “이번 일은 그런 정서가 천박한 형태로 드러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이수기업 해고자 등이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롯데백화점의 노조 조끼·몸자보 탈의 요구에 항의하고 있다. 김태욱 기자

김태욱 기자 woo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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