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시선] 우리시대의영화⑭ 부산행-새로움·즐거움 그리고 ‘K-좀비’의 시작

KBS 2025. 12. 1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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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형 좀비’의 탄생·확산

영화 '부산행'(2016)은 장르적으로 재난, 공포, 괴물(괴수) 영화의 성격을 모두 지닌 작품이다.

한국 영화사의 맥락에서 보면, 멀리는 1960년대 영화 '대괴수 용가리'(1967)와 '우주괴인 왕마귀'(1967), 가깝게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 영화들에서 용가리, 왕마귀, 돌연변이 괴생명체는 엄청난 힘으로 도시를 파괴하고 시민들을 납치 혹은 살해한다.

이 괴물(괴수)들의 몸에는 분단, 냉전, 환경과 같은 정치적‧사회적 이슈가 새겨져 있다.

영화 '부산행'의 인물과 서사, 주제는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공통점이 많다.

하지만 동어반복은 아니다. 그랬다면 천만 영화(1,157만 명)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부산행'은 할리우드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좀비를 한국 현실에 맞게 바꾸었고, 이 새로운 괴물은 영화를 포함한 대중문화 콘텐츠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다.

실제로 영화 '부산행'의 흥행 성공은 ‘K-좀비물’ 제작 붐으로 이어졌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의 4년 후를 그린 영화 '반도'(2020)를 다시 연출했다. 이어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과 '지금 우리 학교는', 영화 '#살아 있다'와 같은 좀비 드라마·좀비 영화가 잇따라 제작됐다.

영화 ‘부산행’ (사진: ㈜NEW 제공)


■ 원작 웹툰에는 없는 것들

영화 '부산행'의 주인공과 서사, 주제는 익숙하다.

펀드 매니저인 석우(공유 분)는 아내와 이혼을 앞둔 인물이다. 그는 딸 수안(김수안 분), 어머니와도 데면데면하다.

상화(마동석 분)는 석우를 개미핥기라고 비난한다. 개미핥기와 좀비는 다른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존재라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하지만 석우는 영웅적인 인물이다.

동서양 영웅신화에서 영웅의 핵심 덕목은 초능력이 아니라 자기희생이다. 석우와 상화는 자기 목숨을 희생해 딸과 임신한 아내 성경(정유미 분)을 지켜낸다.

석우는 수안이 “자기밖에 모르는 아빠”라고 비난할 만큼 이기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석우는 재난을 겪으면서 이타적인 인물로 재탄생한다.

그는 이제 개미핥기가 아니라 영웅이다.

연상호 감독은 영웅의 행적과 가족 서사를 영리하게 융합해 대중성을 확보했다.

영화 ‘부산행’ (사진: ㈜NEW 제공)


■ '좀비'에 새겨 낸 '메시지'

영화 '부산행'에서 좀비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부조리를 드러내는 존재다.

좀비 떼의 진원지는 석우(공유 분)가 ‘작전’을 통해 억지로 살려놓은 바이오 업체이다.

즉 좀비로 인해 발생한 혼란은 사회적 재난이다.

영화의 핵심 공간이 열차인 점도 주목할 만하다.

증기기관차와 철도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달을 이끌었다.

그래서 빠르고 편안하고 안전한 교통수단인 KTX가 재난의 핵심 공간인 것은 상징적이다.

영화 '부산행'에서 증권사, 바이오 회사, 열차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한 점에서 영화 '부산행'은 생태주의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영화 '부산행'의 좀비는 문명 발달과 환경 재난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영화 ‘부산행’ (사진: ㈜NEW 제공)


■ '부산행', '우리 시대의 영화'인 까닭

영화 '부산행'에서 좀비는 단순히 ‘살아있는 시체’가 아니다. 자본주의와 한국 사회의 모순이 응축되어 있는 존재이다.

즉, 영화 '부산행'은 현실 재현과 비판이라는 묵직한 담론을 제기한 좀비 서사이자 재난 영화다.

여기에 재난의 스펙터클, 영웅과 가족 서사라는 대중성까지 아우르고 있다.

석우와 상화의 자기희생, 이기적인 용석의 행동은 ‘우리는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윤리적 질문까지 던진다.

이처럼 영화 '부산행'은 장르적 새로움과 재미는 물론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주제, 대중성 등 영화의 여러 측면을 두루 갖춘 영화이다.

영화 '부산행' 이 '우리 시대의 영화'로 손색없는 이유다.

● 영화 '부산행' 이야기

영화 '부산행' (사진: ㈜NEW 제공)

하나,
영화 '부산행'은 연상호 감독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연상호 감독은 그전에는 '지옥', '돼지의 왕', '사이비' 등 애니메이션 연출로 유명했다.

둘,
영화 '부산행'의 흥행에는 ‘아크로바틱 좀비들’의 빛나는 열연도 큰 역할을 했다.

이 좀비들은 괴성을 지르며 질주하기만 하는 할리우드 좀비들과 달리 다양한 표정과 자세로 영화의 긴장감과 역동성을 강화했다.

셋,
영화 '부산행'은 국내 최초로 LED 후면 영사 기술을 도입해 열차의 미장센을 구축했다.

글 : 영화평론가 임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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