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대통령의 ‘디테일’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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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현장을 앞세우고 실무 논쟁을 피하지 않는 특성은 이 대통령이 '일 잘하는 행정가'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이걸 '쇼'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통령이 디테일에 강하면 공직사회는 긴장하고 변화한다.
외화 반출, 고체 로켓, 올바른 어휘도 중요하지만, 대통령 관심 사항을 챙기느라 다른 민생 현안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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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숫자에 밝고 업무 구석구석을 꼼꼼히 챙기는 상사는 부하 직원이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유형이다. 명석하고 헌신적인 ‘똑부 상사’가 디테일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부하들의 애로사항이 꽃핀다. 생중계 업무보고에서 놀라운 디테일 차력 쇼를 선보인 이재명 대통령도 그랬다. 외화 밀반출 문제로 인천공항 사장을 질타하더니 철도차량 납품 문제에선 선급금의 구체적 비율(70%)까지 언급했다. 환단고기, 고체연료 로켓, 신조어 ‘대인배’의 논리적 모순(‘무리 輩’는 좋은 의미에 쓰일 수 없음)까지 폭넓은 관심사를 과시했다.
□ 단체장 시절부터 이 대통령은 디테일에 강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경기지사 재직 시 코로나 방역에선 신천지 본부로 직접 출동했고, 계곡 불법 시설물 단속에선 상인들과 난상 토론을 마다하지 않았다. 현장을 앞세우고 실무 논쟁을 피하지 않는 특성은 이 대통령이 ‘일 잘하는 행정가’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이걸 ‘쇼’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통령이 디테일에 강하면 공직사회는 긴장하고 변화한다.
□ 다만 ‘디테일 카리스마’의 부작용도 있다. 부처들은 대통령이 언급한 문제 해결에 많은 자원을 최우선으로 투입할 것이다. 외화 반출, 고체 로켓, 올바른 어휘도 중요하지만, 대통령 관심 사항을 챙기느라 다른 민생 현안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문제는 또 있다. 대통령이 말단의 일까지 일일이 간여하면, 잘못된 결과는 모두 대통령 책임이 된다. ‘백해룡 팀’이 그런 예다. 앞으로 외화 반출을 막겠다고 출국자의 책갈피를 전수 검사하면, 긴 줄에 선 이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대통령 얼굴만 떠올릴 게 아닌가.
□ 리더가 디테일에 강한 것은 남다른 장점이다. 하지만 할 말을 다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이 더 필요한 순간이 분명히 있다. 특히 대통령은 물리적으로 만기친람이 불가능한 자리다. 대통령이 자꾸 디테일 욕심을 내면, 대통령이 가리키는 쪽에서만 나랏일이 잘 돌아가는 ‘전시행정’으로 이어진다. 대통령이 보지 못하는 곳까지 온기가 돌도록 하려면, 시시콜콜한 말은 절제하는 게 나은 방법일 수 있다.
이영창 논설위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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