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의 우리술 이야기)가양주문화 되살리는 작은 노력들

최미화 기자 2025. 12. 1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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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한국전통주를 빚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음을 실감한다. 알음알음 배우기도 하고, 전통주교육기관을 찾아 본격적으로 술 빚는 법을 배우는 사람도 늘었다. 집에서도 동영상을 보고 술을 따라 빚는 분들도 많은 듯하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뿌리내렸다. 집집마다 술을 직접 빚어서 마시는 문화다. 집에서 내 손으로 빚는 만큼 술맛도 손맛이나 집의 환경에 따라 당연히 달랐다. 된장이나 김치의 맛이 다 다르듯 말이다.

술을 빚는 방법도 모두 달랐다. 예전에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술빚는 법이 전해져왔다. 여자들은 시집가기 전 어머니로부터 술빚는 법을 배웠다. 시집에서는 그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주방문으로 술을 빚었다. 두세 가지 방법을 응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빚는 것도 발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양주는 각각의 방법으로 집안 대대로 빚는 법을 전해오는 술이다. 이름난 집에서 빚는 맛과 향이 뛰어난 술을 뜻하는 명가명주(明家銘酒)도 가양주문화 속에서 뿌리내린 전통이다. 이 가양주는 같은 지역이더라도 집마다 다른 맛을 낸다. 가양주 중에는 그 지역에서 나는 각종 부재료들을 사용하기도 해서 수천가지의 술이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사대부 집안에서는 집안의 대소사를 치르고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서 술이 필수였다. 가양주 문화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저마다의 재료와 가문마다의 비법으로 개성 있는 술이 생산되었다는 뜻이다.

가양주 문화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가 최근 들어 하나씩 복원되어 명맥을 잇고 있다. 문헌상의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가양주를 직접 빚어보면서 맛과 향을 되찾는 노력들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주 대구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되는 '나의 누룩 나의 술' 품평회다. 대구의 한 전통주교육기관에서 주최하는 이 행사는 일년 동안 자기가 직접 만들고 집에서 띄운 누룩으로 자기만의 주방문(酒方文)을 써서 자신이 직접 빚은 술을 출품하는 대회다.

지방자치단체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민간에서 주최하는 '2025 나의 누룩 나의 술' 품평회에 는 총 30여명의 전통주 동호인이 자기만의 술을 출품했다. 양조장 대표들과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심사위원단을 구성하고 정해진 기준에 따라 수상자를 결정한다.

올해 대회엔 부분적이긴 하지만 일반 시민들도 참여했다. 술을 출품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은 품평회에 나온 30종류의 술을 시음하면서 인기상을 선정하는 심사위원이 되는 것이다. 30여종의 술을 한 자리에서 시음해볼 수 있는 기회도 거의 없기 때문에 한국전통주의 제대로 된 맛과 향을 알아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 역시 가양주 문화를 확산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자기 누룩으로 자기 술을 빚는다는 것은 넓은 의미로 보면 한 집안의 가양주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해서다.

당장 양조장 창업은 아닐지라도 집에서 취미로 술을 빚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 사람들 주변에서부터 맛과 향이 뛰어난 한국전통주가 알려져 나간다면 결국엔 상업양조장에서도 좋은 재료를 써서 좋은 술을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나의 누룩 나의 술' 품평회의 특징 중 하나는 정해진 레시피가 아니라 자신만의 방법으로 술을 빚은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술빚기를 배우는 단계에서는 고문헌에 나와 있는 그대로 따라 만들면서 술을 빚는다. 하지만 결국은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 역시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가양주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쌀을 어떻게 가공하는지, 몇 번에 걸쳐 술을 빚는지, 멥쌀로 빚는지 아니면 찹쌀로 빚는지, 부재료는 무엇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이것 뿐이겠는가. 사람의 손맛(술빚는 기술)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에 가양주는 저마다의 특징이 뚜렷할 수밖에 없다.

'나의 누룩 나의 술' 품평회를 개최하면서 가양주 문화가 다시 꽃피우기를 기대해본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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