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찬성 79%…그들은 정말 일을 계속하고 싶은 것인가, 불안한 것인가 [남인숙의 신중년이 온다]
(시사저널=남인숙 작가)
며칠 전 오랜만에 번화가에서 저녁 약속을 잡아 식사를 했다. 원래 저녁을 먹으며 논의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이야기가 길어져 폐점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술을 곁들이는 식당이라면 늦게까지 영업할 거라 막연히 생각해 영업시간을 미리 묻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10시쯤 쫓기듯 밖으로 나온 우리 일행은 잠깐이라도 머물며 이야기를 마무리할 장소를 찾았지만 문을 연 곳이 없었다. 십여 년 전 대다수 스타벅스 매장이 밤 11시에 마감하고 자정까지 문을 연 개인 카페도 흔하던 시기가 아직 가까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필자에게는 어두운 겨울 서울의 도심 풍경이 새삼 낯설었다.
당혹감 속에서도 생각은 자연스럽게 여러 의문으로 흘렀다. 이 도시에서 '2차 모임'이라는 것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2차, 3차를 담당하던 그 많은 자영업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알바나 창업을 하던 청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요즘 퇴사하는 40~50대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따라가 보니 이 의문의 한 축에 정년 연장 문제가 있었다.
정년 65세 연장 법제화가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1월 발표된 여론조사(전국지표조사: NBS)에서는 79%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지지 의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치 성향과 세대를 불문하고 정년 연장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당도 이에 호응하듯 잇따라 관련 정책안을 내놓고 있다.

퇴사자들, 자영업 대신 계약직·플랫폼 노동
사실 인구 감소와 노령화를 목도하고 있는 이 사회의 일원들은 이것이 더 이상 '한다, 안 한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보다 앞선 국민연금 논의를 보면, 미래세대를 믿고 고율의 복지세를 부담해 노후를 보장받는 식의 복지 모델이 작동할 수 없는 구조가 뻔히 눈에 보이는데 수급 개시 연령이 늦춰진 것을 마냥 반대할 수는 없었다. 수급 연령과 정년은 한 몸이니 이번 여론조사 결과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직장을 은퇴하면 가게나 하나 열어야겠다'는 미래 계획이 드물지 않던 시대가 지나고 자영업 시장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거기에 일자리는 줄어들고 자녀들은 아직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제 우리 앞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쪽으로 방향이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든 결정이 그렇듯 '어떻게'에 대한 답은 가부(可否)에 대한 논의보다 복잡하다. 이미 여당에서는 점진적 개혁안 3가지를 내놓았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서는 입장차가 있다. 기업들은 가뜩이나 고용 유연성이 떨어지는 한국 산업구조상 기계적인 정년 연장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고, 고용 안정성이 높은 직종 종사자들은 정년 연장에 대체로 찬성한다. 이 지점에서 은퇴 후 계약직으로의 재고용, 임금 체계 재편 등의 논의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논의에서 '당사자성'을 가진 이들은 얼마나 될까? 필자와 일면식이 있는 이들 중 정년을 채우고 퇴직한 이는 극소수다. 공직과 교육직 종사자를 제외하면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승진할 정도의 능력자들 정도가 정년까지 일한다. 그나마 정년까지 조직에 있느라 더 일찍 두 번째 직업을 준비하지 못한 이들은 고문 등 다양한 계약직 직함으로 업계에 머무른다. 사실상 법 개정 이후 정년을 맞아 직접 영향을 받을 대상은 10% 내외일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대다수 사회 구성원이 정년 연장에 동의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앞으로 더 오래 일해야 한다는 직간접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직장에서 정년 이전에 퇴사한 시니어들은 어디에서 일을 이어가고 있을까? KDI 자료에 따르면 2025년 8월 기준 비정규직 856만 명 중 60세 이상 비정규직이 304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통계 최고치다. 직장에서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한 이들이 파이가 줄어든 자영업 시장 대신 파견, 계약직이나 플랫폼 노동 등에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 김 부장이 퇴직 후 대리운전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또한 플랫폼 노동에 해당한다.
이전 세대보다 정서적, 신체적으로 젊어진 요즘 노년층이 몇 년 더 일해도 좋겠다는 생각은 대체로 공감 가능하지만, 이 논의에서 가장 불거지는 것은 세대 갈등에 대한 염려다. 여당에서 법안 추진과 함께 '정년연장특별위원회 청년 TF'를 출범시킨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청년 구직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필자가 수년 전 확인한 데이터에서는 일본처럼 청년층이 저출생 기조로 취업난에서 벗어나게 되는 시기를 2001년생이 사회에 진출할 때라고 내다봤다.
정년 연장 문제로 촉발되는 세대 갈등 여전
그러나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기 시작한 작년과 올해 청년 취업난은 오히려 정점을 찍고 있다. 수치상으로는 실업률이 떨어졌지만 이 통계에는 구직활동을 포기한 '쉬었음 청년'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 정확하다는 인구통계학 기반의 예측도 팬데믹, 국제 질서 재편과 그로 인한 세계적 불황, AI로 인한 업무 자동화 등의 변수는 계산에 넣을 수 없었다.
생존이 지상과제인 기업은 개인화된 가치관을 가져 편하게 '굴릴' 수 없는 데다 업무를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청년 고용을 꺼린다. 기존 시스템에 익숙해 바로 투입 가능한 시니어들을 재고용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다. 신입사원이 할 수 있을 법한 일을 인공지능이 꽤 해낸다는 것은 현업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부정하지 못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MZ세대와 영포티 대립 구도 등 세대혐오가 판치는 마당에 정년 연장이라는 변화가 어떤 갈등을 촉발할지 조마조마하다.
청년층은 장년층이 은퇴하지 않고 자신들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기득권을 누린다며 원망하고, 반대 입장에서는 그 혐오를 무능과 안일한 사고라는 프레임으로 되돌려주는 상황을 상상하는 게 어렵지 않다. 청년층의 위기의식은 20대 정년 연장 찬성 비율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다는 점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다만, 통계 속에서 통념을 비켜가는 수치가 하나 눈에 띈다. 이 논의의 직접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60대의 찬성률이 오히려 평균보다 낮다는 것이다. 60대 중에서는 청년층을 안쓰럽게 보고 그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시각을 가진 이가 적지 않다. 미래가 불안하긴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일을 쉬고 싶은 마음도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이들은 고도성장기에 다음 세대가 자신들보다 잘살기를 바라며 열심히 일하고 교육에 투자한 세대다. 부디 이들이 20대와 일자리 경쟁을 하며 척을 지는 구도가 만들어지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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