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축구팬들의 눈높이…홍명보號 성공 기준점은 ‘월드컵 8강’
토너먼트 2~3경기 더 소화할 수 있는 준비 필요
(시사저널=서호정 축구칼럼니스트)
12월6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워싱턴DC의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2026 FIFA(국제축구연맹) 북중미월드컵 본선 조추첨식.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의 운명은 NBA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공룡 센터' 샤킬 오닐의 손에 의해 결정났다. 미식축구의 톰 브래디, 야구의 애런 저지, 아이스하키의 웨인 그레츠키와 함께 북미 4대 스포츠의 레전드 자격으로 포트별 추첨자로 나선 오닐은 한국이 속한 포트2를 담당했다.
포트1 추첨이 끝나고 자신의 앞에 놓인 포트2 12개 팀 쪽지가 든 공을 꺼내 펼쳐 든 오닐은 "KOREA REPUBLIC"을 외쳤고, 한국은 공동 개최국 중 하나인 멕시코가 속한 A조로 향했다. 포트3의 저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A조로 보냈고, 포트4의 그레츠키는 내년 3월 최종 결정나는 유럽 플레이오프(PO) 패스D 승자(덴마크·북마케도니아·체코·아일랜드 중 한 팀)를 뽑았다.
당초 한국은 월드컵 대다수 경기가 미국에서 열리는 걸 감안해, 미국 동부와 서부에 초점을 맞추고 준비했다. 홍명보 감독과 코치진이 멕시코와 캐나다의 트레이닝캠프도 체크했지만, 가장 많이 본 것은 미국 쪽 캠프였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멕시코에서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치르게 됐다. 홍 감독도 조추첨 후 인터뷰에서 "우리에겐 멕시코월드컵이 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짧은 이동 거리는 장점, 관건은 고지대 적응
기존 32개 팀 체제에서 48개국으로 확대해 시행하는 첫 대회에서 한국은 자력으로 처음 포트2에 속했다. 조 편성을 놓고 보면 포트2 효과를 확실히 누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멕시코가 껄끄러운 상대지만 개최국 세 나라를 제외한 포트1의 9개국과 비교하면 전력이 떨어진다. 남아공은 포트3에서 가장 해볼 만한 상대 중 하나다. 유럽 PO 승자가 3월말까지 결정이 안 나 전력 분석에 어려움을 겪겠지만 누가 올라오든 한국을 압도하는 전력은 아니다.
홍명보호는 한국시간으로 내년 6월12일 오전 11시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아크론 스타디움에서 유럽 PO 승자와 조별리그 1차전을 치른다. 19일 오전 10시 같은 장소에서 개최국 멕시코와 2차전을 갖는다. 남아공과의 3차전은 25일 오전 10시 몬테레이의 BBVA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1·2차전까지 과달라하라에 머물고 3차전을 위해 몬테레이로 이동해야 하는 스케줄이다.
이번 월드컵은 48개국 체제가 되면서 경기 수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차기 대회도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3개국 공동개최로 결정될 만큼 더 많은 경기장을 필요로 한다. 그만큼 이동 거리도 과거 월드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번 북중미월드컵도 미국·캐나다·멕시코의 광활한 영토 곳곳에서 경기가 열린다. 역대 어떤 대회보다 이동 거리가 주는 변수가 크다.
조별리그 3경기를 치르는 데만 무려 5000km가 넘는 이동 거리를 소화해야 하는 국가가 있을 정도다. 반면 홍명보호는 637km를 이동하게 돼 48개국 중 7번째로 짧은 이동 거리를 소화한다. 같은 조의 멕시코(933km), 남아공(3926km), 유럽 PO 승자(4523km)와 비교하면 짧은 이동 거리가 확 체감된다. 1·2차전을 같은 도시에서 치르면서 얻은 효과다. 2차전에서 맞붙는 유럽 PO 승자와 남아공은 멕시코에서 미국 애틀랜타에 갔다가 다시 멕시코로 돌아와야 해 이동 거리가 폭증했다.
북중미월드컵 아닌 '멕시코월드컵' 될 가능성 커
반면 멕시코 고지대에서 치르는 조별리그 1·2차전은 한국 A대표팀에 가장 큰 부담이다. 과달라하라는 해발 1571m에 위치해 있다. 국제산악의학회 분류에서 1단계인 '고고도(high altitude)'에 해당한다. 고지대는 대기압이 낮아져 공기 밀도가 떨어진다. 같은 킥을 했을 때 공에 대한 공기의 저항이 감소해 궤적과 거리가 바뀐다. 호흡 시 산소 흡입량이 줄어들어 혈액 내 헤모글로빈이 증가하고 체력도 쉽게 저하된다. 신체적 적응을 위해서는 고도(km 기준)에 11.4일을 곱해야 한다는 게 의학적 견해인데 1500m 이상인 과달라하라에서의 적응을 위해선 17일 정도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도 고지대 변수에 직면한 바 있다. 당시 아르헨티나와 조별리그 2차전을 가진 요하네스버그가 해발 1753m 고지대였다. 당시 허정무 국가대표팀 감독은 해발 1200m에 위치한 오스트리아의 노이슈티프트에서 1차 훈련을 했고, 대회 일주일 전 1300m 고지대인 남아공 루스텐버그의 베이스캠프에 들어갔다. 고지대 적응을 돕는 산소 조절 장비까지 준비했지만 결과는 아르헨티나전 대패였다. 남아공월드컵은 21세기 들어 치른 월드컵 중 경기당 득점이 가장 적은 대회였다. 평균 2.27골로 타 대회보다 0.4골 정도 떨어졌는데 고지대 경기 여파로 분석됐다.
허정무호의 고지대 적응이 실패로 끝난 데 대해 여러 분석이 있었다. 가장 설득력 높았던 것은 저지대와 고지대를 오간 점이었다. 당시 1차전은 해발 0m인 포트엘리자베스에서 열렸다.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가서 훈련과 경기를 하는 것도 힘들지만, 반대로 고지대→저지대→고지대 역시 적응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1·2차전 모두 요하네스버그였기 때문에 고지대 적응을 계속하고 있었기에 실력 차이에 체력, 집중력 차이까지 명백히 드러났다.
16년 전의 결과를 통해 반추하면 이번 월드컵의 1·2차전 일정은 우리에게 유리하다. 2010년의 아르헨티나처럼 저지대 이동 없이 계속 과달라하라 혹은 비슷한 조건의 환경에서 머무르면 된다.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내려가면 향상된 신체 능력이 빛을 발휘하기 때문에 3차전 장소인 해발 500m의 몬테레이에서는 또 체력적 우위가 드러날 수 있다. 멕시코와 남아공이 상대적으로 고지대에 적응된 팀이라는 것은 변수지만 가장 중요한 유럽 PO 팀과의 1차전을 전략적으로 풀 수 있다.
월드컵이 48개국 체제가 되면서 토너먼트도 32강전부터 치러진다. 12개 조에서 각 조 1·2위뿐만 아니라 성적이 좋은 상위 8개의 3위 팀도 토너먼트에 오른다. 한국은 역대 대회마다 월드컵에서 조별리그를 통과해 토너먼트전에 진출하는 것을 항상 지상목표로 삼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3경기 중 1경기만 잡아도 32강 토너먼트에 오를 수 있다. 축구팬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지난 카타르월드컵도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했기에 32강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월드컵에서 성공이라는 기준점을 삼으려면 이제는 8강 이상을 내다봐야 한다. 홍명보 감독 역시 이번 월드컵의 목표를 8강으로 잡고 있다. 포트2에 속한 팀답게, 조별리그 3경기에 토너먼트 2~3경기를 더 소화할 수 있는 전략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조 편성 결과 한국엔 유리한 시나리오가 많다. 조 1위가 될 경우에는 32강전과 16강전을 멕시코에서 계속 치른다. 상대팀에 비해 이동 거리가 적고, 상대가 저지대에서만 경기를 하다 오는 팀이어서 컨디션 면에서 유리하다. 조 2위가 되면 그때부터는 모든 일정을 미국에서 소화한다. 특히 20만 명이 넘는 교민이 거주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32강전을, 역시 꽤 많은 교민이 몰리는 휴스턴에서 16강전을 치르기 때문에 경기장 분위기에서 이점을 누리게 된다.
상대도 해볼 만한 팀들이다. A조 1위는 3위 팀 중 하나와 격돌하고, A조 2위는 캐나다 혹은 스위스가 유력한 B조 2위와 맞붙는다. 반면 조 3위가 돼 32강전에 가면 E조 1위나 G조 1위와 맞붙는다. 독일·벨기에 같은 강팀을 만나고 보스턴 혹은 시애틀로 가야 하기 때문에 이동 거리도 늘어난다. 결국 홍명보호는 조 1위나 2위를 확보하는 전략적인 선택을 고민하는 게 최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2차전에서 승점 4점 이상을 확보하고 마지막 3차전에서 남아공을 잡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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