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행복 빼앗는 '피해의식'

행복한 사람들은 다 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사람들은 다 서로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는 말처럼 사람이 불행해지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누군가는 필요한 무엇을 가지지 못해서, 가족이나 친구의 사랑이 부족해서, 소중한 사람을 잃어서, 중요한 일에서 실패를 맛보아서, 일이 너무 힘들어서, 건강이 악화되어서, 잦은 이직과 이사 때문 등등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살면서 마음이 무너지는 상황을 겪게 된다.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불행도 다양하게 밀려올 수 있지만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불행 때문에 불행해지기도 한다. 믿음직한 테두리가 되어주는 가족·친구가 없거나, 가족·친구 중 누군가가 커다란 빚을 지고 있거나, 크게 상심해 있을 때에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는 별다른 일이 없어도 주변 사람들의 문제로 덩달아 골치 아파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또 비가 내리면 엄청나게 쏟아진다는 말처럼 불행은 한 번에 하나만 찾아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일이 힘들어서 스트레스를 받은 탓에 건강이 악화되고, 늘 신경이 곤두서서 주변 사람들에게 차갑게 대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친한 친구에게 상처를 입히고 말았는데 어느새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사람은 아주 다양한 방식과 경로로 불행해질 수 있다. 사실 삶의 모든 영역에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가 더 희귀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는 항상 크고 작은 슬픔과 불행의 요소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여기에 작은 문제도 크게 부풀려 걱정하고, 없는 문제도 만들어 두려워하고,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신경 쓰고, 행복(해 보이는 것)에 집착하며 문제들을 회피하는 우리의 성향을 고려하면 불행의 요소들은 내용과 정도가 다를 뿐 언제든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단면만 보고 행복한 사람이다, 불행한 사람이라고 단정하는 시도는 쓸모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고, 내 경험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나만 손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친절할 필요가 없으며, 큰 배려와 보상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고를 하기도 한다.
에밀리 지텍 코넬대 심리학자 등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사고방식은 오히려 힘든 일을 겪었음에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타인에게 더 차가운 태도를 보이게 만든다. 공감하기는커녕 경멸적인 태도를 보이며 남을 돕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게 된다.
지텍은 이를 “이기적일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문제는 정작 화를 낼 대상이 아닌 만만한 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한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서로 자신이 겪은 어려움이 가장 심각하고 가장 힘들었다고 주장하며 누가 더 억울한지를 놓고 경쟁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는 ‘경쟁적 피해의식(competitive victimhood)’이라 불린다. 많은 사회적 갈등에서 이미 소외된 계층끼리 누가 더 피해자인지 다투는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문제(애초에 아무도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됐다는 사실이나 해결 방법에 대한 논의)가 사라진다.
이런 점에서 누가 '왜' 힘들었는지에 대한 논의는 도움이 되더라도 누가 '얼마나,제일' 힘들었는지는 생산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든 억울함을 털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 물론 삶은 원래 힘들다. 나뿐만 아니라 타인도 그렇다. 그래서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가족·친구의 존재가 중요하며, 나 또한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루 24시간을 나와 관련된 문제에만 집중하며 살다 보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연말에라도 나에 대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타인을 떠올려 보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Zitek, E. M., Jordan, A. H., Monin, B., & Leach, F. R. (2010). Victim entitlement to behave selfishl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8(2), 245–255. https://doi.org/10.1037/a0017168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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