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신의 와인Pick!] 12월, 크리스마스와 함께 따뜻한 위로가 되는 뱅쇼의 향기

로피시엘=박경배 기자 2025. 12. 13.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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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필자
겨울 트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어린 시절 작은 시골 마을 교회 앞을 밝히던 커다란 트리는, 마을의 소박한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웅장했고, 눈송이가 흩날리던 크리스마스이브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더욱 빛났다. 트리의 불빛은 마치 세상의 모든 빛을 모은 듯 깊은 어둠을 밀어냈다.

트리는 바람이 불 때마다 조용한 소리를 냈고, 전구의 빛은 금빛 물결처럼 흔들렸다. 소복한 눈을 밟으며 걷던 순간 멀리서 들리던 종소리는 겨울의 차가움마저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크고 화려하게 장식된 트리를 마주하면 어릴 적 교회 앞 웅장했던 트리가 떠오르곤 한다.

12월이 되면 거리마다 앞다투어 장식되는 겨울 트리는, 한겨울에도 푸른 기운을 잃지 않는 상록수를 '생명의 상징'으로 여겼던 고대 게르만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이 전통이 세월을 건너 16세기 독일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자리 잡았고, 희망과 축복의 상징이 되었다. 이후 영국 왕실에 의해 화려한 장식이 대중화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화려한 트리의 모습으로 발전되었다.

◆겨울에 건네는 한 잔의 따뜻한 뱅쇼(Vin Chaud)
찬 바람이 스미는 겨울이면, 저절로 생각나는 따뜻한 음료가 있다. 바로 따뜻하게 데운 와인, 뱅쇼(Vin Chaud)다. 뱅쇼는 고대 로마인들이 추운 겨울 몸을 녹이고 와인의 보존 기간을 늘리거나 맛을 개선하기 위해 꿀과 향신료를 첨가해 데워 마시던 관습에서 비롯되었다.

프랑스어로 Vin(와인)과 Chaud(따뜻한)가 합쳐진 말이지만, 그 기원은 프랑스가 아니라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의 혹독한 겨울에서 시작되었다. 북유럽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사람들은 계피·정향·감귤류 등 향신료와 과일을 넣어 와인을 데워 마셨고, 체력을 회복하고 감기를 예방하기 위한 일종의 약용 음료였다.

뱅쇼(Vin Chaud)의 유래를 살펴보면, 독일/오스트리아에서는 '글뤼바인(Gluhwein)'이라 부르며, 글뤼바인은 '빛나는/타오르는 와인(glow-wine)'이라는 뜻으로 과거에 와인을 데울 때 사용했던 뜨겁게 달군 쇠막대기(hot iron rods)에서 유래했다. 이름처럼 계피와 정향, 오렌지의 향이 겨울 공기 속에서 서서히 퍼져 얼어붙은 손끝까지 따뜻하게 데워 준다. 이탈리아 '빈 브륄레(Vin Brule)'는 '불에 탄 와인(burned wine)'이라는 뜻으로, 와인을 가열하는 과정을 나타낸다.

영국/미국(멀드 와인, Mulled Wine)의 영어권에서는 주로 '멀드 와인(Mulled Wine)'이라고 부른다. 'Mull'은 와인에 향신료와 설탕을 넣고 데운다는 의미의 동사에서 유래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 (글뢰그, Glogg/Gløgg)의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에서는 '글뢰그(Glogg 또는 Gløgg)'라고 한다. 스웨덴어 동사 'glodga(태우다, 데우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와인을 데우는 방식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지역에 따라 건포도와 아몬드를 넣기도 한다.

유럽의 겨울을 대표하는 이 따뜻한 와인은 이제 우리 일상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으며, 집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을 만큼 친숙해졌다.
뱅쇼의 진정한 매력은 그 향에서 시작된다. 계피와 정향, 시트러스의 향이 은은하게 퍼질 때, 한 잔만으로도 추운 겨울을 조용히 녹여준다. 그 향기 속에는 와인이 품고 있는 계절의 온기도 진하게 올라온다.

◆맛있는 뱅쇼(Vin Chaud) 레시피:
1. 사과·오렌지·레몬을 깨끗이 씻어 껍질째 큼직하게 썬다. (추가 선택재료: 배, 블루베리·라즈베리 등 베리류)
2 냄비에 과일을 넣고 재료가 잠길 만큼 레드와인을 부어 약불에서 15분간 은근하게 끓인다.
3. 생강, 설탕(또는 꿀·흑설탕·올리고당·알룰로스·메이플시럽), 시나몬 스틱, 정향을 넣고 5분 더 끓인다.
4. 체에 걸러 과일을 제거하고, 따뜻할 때 잔에 따른다. (기호에 따라 알코올을 첨가하기 위한 브랜디·코냑을 약간 넣으면 풍미가 깊어진다.)
5. 시나몬 스틱이나 얇게 썬 과일, 혹은 말린 과일을 살짝 띄워 마무리한다.

/사진제공 : 크라우드픽

※ TIP 몇 가지
1. 강한 불에서 끓이면 향이 사라지므로 반드시 약불에서 천천히.
2. 알코올 정도는 기호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무알코올 버전: 뚜껑을 열고 약 1시간 정도 끓이면 대부분의 알코올이 날아간다. 또는 아예 와인 대신 포도즙으로 만들어도 된다.
-알코올 보강 버전: 완성 직전에 럼·브랜디·코냑을 약간 넣으면 향과 온기가 더욱 깊어진다.
3. 끓이는 시간에 따라 잔류 알코올이 남을 수 있으니, 알코올에 약한 사람은 주의가 필요하다.

어느 날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이, "요즘 아무것도 하기 싫어…"라고 털어놓는다면, 우리는 종종 조언이나 이유를 먼저 찾으려 한다. 하지만 때로는 옳은 말보다 "그동안 얼마나 애썼을까? 정말 고생했네~ 이제 좀 쉬어~."라는 말이 더 큰 힘이 될 것 같다. 논리나 해결책 대신 말없이 곁을 내어주는 마음,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온기가 중요하다. 우리는 마음이 힘들 때, 맞는 말만 하는 사람보다 진심으로 내 편이 되어준 사람을 원한다.

뱅쇼 한 잔은 그런 따뜻한 말과 닮아있다. 손수 만든 뱅쇼는 잠시 멈춰 서서 향긋한 향기로 아픈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이 한 잔의 따뜻한 와인이 여러분의 겨울을 포근하게 덮고, 바쁜 일상 속 작은 휴식과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박영신 와인 칼럼니스트
-박영신 와인 칼럼니스트-

" 와인은 향으로 기억되고, 뱅쇼는 온기로 기억된다. 그 온기가 누군가의 겨울을 다시 밝힌다."

박영신 와인 칼럼니스트는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와인 소믈리에를 전공.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조리외식경영학 박사 수료를 했다.

여러 국내 와인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다년간의 와인전문숍, 와인전문바, 그리고 와인스쿨 운영으로 실무 현장 경험을 쌓았다. 식음료와 교육 분야의 다양한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와인 문화의 깊이를 탐구하고 있다.

로피시엘=박경배 기자 pyoungbok@lofficie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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