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에서 눈감고 싶다’ 작은 소원 지켜드립니다

황지현 2025. 12. 12. 08:3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선택, 우리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③ 가정형 호스피스제도 공공화

우리 몸에서 심장이 뛰고 있으면 '살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의식이 없고, 누워서 오로지 인공 장치에 의존해 숨만 쉬는 상태라면 어떨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전문가들은 죽음을 '치료의 실패'가 아닌 '내 삶을 완성하는 순간'으로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과연 우리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제주의소리가 존엄한 죽음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편집자 글]

<글 싣는 순서>
① 생애 말년 3개월간 평생 의료비의 41.8%를 쓰다
② 중환자실 앞, 효자를 강요하는 사회
③ '내 집에서 눈감고 싶다' 작은 소원 지켜드립니다
출처=중앙호스피스센터

"내 마지막 소원은 하루라도 집에 가서 내 집에서 자다가 죽는거야."

요양병원에 근무할 당시 생일을 맞은 할머니에게 촛불을 불어드리며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내 손을 꼭 잡으며 하신 할머니의 소원입니다. 결국 할머니는 건강이 조금 회복되며 퇴원이 가능한 상태가 됐지만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요양원으로 이송되어야만 했습니다. 

"아직은 의식이 또렷하셔서 자꾸 병원에는 안가겠다고만 하는데, 더 나빠지시면 병원으로 모실거예요. 집에서 임종을 어떻게 해요." 대장암 말기를 진단받고 집에 계신 할머니를 모시는 가정에서 방문진료를 신청했습니다. 할머니는 첫 방문인데도 제 손을 꼭 잡고 좋아하시며 "안아프게만 해줘" 눈물을 글썽이며 힘겹게 이야기하셨습니다. "네, 어머니" 그리고 보호자분들에게 가정형 호스피스제도를 설명하고 등록절차를 마친 후 며칠간 매일 방문하며 마약성 진통제 농도를 올려가고, 영양제 등을 투여하며 할머니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되게끔 조치했습니다. 방문하면 자녀들이 자기 할 일들을 하며 간간이 어머니를 살피고, 손녀들이 있는 주말이면 함께 TV를 보며 웃음이 있는 공간. 할머님은 항상 '기다렸어'라며 손을 잡아주시고, 처치를 다 하고 나가려하면 집에 있는 뭐라도 싸주라며 매일 키위며 고구마며 촌에서 가져온 작물들을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임종이 다가올 것을 예상하셨는지 어느 날 문득 "나 집에 있게 해줘서 고마워" 할머니가 가녀린 목소리로 이야기하실 때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집으로 방문을 시작한 지 2달여가 지나가며 임종기에 들어선 것이라고 판단돼 보호자들에게 임종기에 접어들었고, 지금도 큰병원으로 옮기시고 싶으냐고 가족들을 불러 이야기하자 "어머님이 이렇게 편안해하시는데 병원으로는 못갈 것 같아요. 어머니 마지막 소원인데 들어드려야죠. 그런데 임종하시면 어떻게 하죠? 지금은 그게 제일 무섭고 걱정이예요."

가정형호스피스를 이용하는 집에서 가족을 돌보는 분들의 가장 마지막 걱정은 과연 집에서 임종이 가능할까, 너무 무섭지는 않을까, 경찰까지 집으로 와서 복잡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부분입니다. "임종이 거의 다가왔다, 숨이 멈췄다라는 부분은 이런 증상을 보면 아실 수 있어요. 그리고 곧바로 저희에게 전화를 주세요. 그러면 저희 의료진이 집으로 와서 임종 확인하고 사망 선언해 드리고, 경찰 부르지 않으시고 사망진단서 발급돼서 장례식장으로 이송이 가능하십니다."

집에서 가족을 끝까지 모시고자 하는 분들의 마지막 두려움인 집에서 임종 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라는 걱정 역시 덜어드리는 것이 가정형 호스피스의 역할입니다. 처음에는 1~2주만 집에서 모시다 병원에 입원시킬거라고 했던 할머니는 집에서 편안히 눈을 감으셨고, 연락을 받고 집에 도착하니 모든 가족들이 곱게 눈을 감고 계신 할머니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너무 편안해하셔서 집에서 끝까지 모신 것이 너무 다행이다 싶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따님이 내 손을 꼭 잡고 이야기하셨다. "아니요. 저희는 가족분들을 도와드렸을 뿐 가족들이 잘 보살피신 거예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2020년 기준 국내 사망 장소 통계에 따르면 의료기관(병원·요양병원 등)에서 사망하는 비율이 약 75.6%로 집에서 사망하는 경우보다 훨씬 많았다고 보고됩니다. 2022년 기준으로는 병원 사망 비율은 74.8%, 주택(집) 사망 비중은 16.5%로 자신의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경우는 20%가 채 되지 않습니다.

여러 조사에서 한국인 상당수가 "임종을 집에서 맞고 싶다"고 희망했는데, 2014년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57.2%가 "집에서 죽고 싶다"고 답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절반 이상이 집에서 죽고 싶다고 소망하지만, 집에서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채 20%가 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집에서 사망할 확률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나이, 거주지(도시 vs 농촌), 자녀 수, 질병 상태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는데, 다수의 만성질환을 중첩되게 가지고 있어 중증질환으로 이환될 확률이 높은 경우가 병원에서 사망할 확률이 높았을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사망할 확률이 높은 조건 중 하나가 '자녀가 많은 경우'라는 통계는 충격적이지 아닐 수 없습니다. 자녀가 많으면 순번을 정해 부모를 모시는 것만으로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입소가 답이 아닐 법한데, 자녀 수가 많을수록 부모를 모시는 것에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이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라는 점에서 씁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인데, 과연 내 집에서 눈감고 싶다라는 소원은 소박한 걸일까요. 아니요, 이 세상 가장 어려운 소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공공보건의료의 몫이 아닐까요?

2026년에는 의료·돌봄 통합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합니다. 정부는 의료·돌봄 통합시스템을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노년층을 관리하고, 예방적 접근을 통해 의료기관 이용률을 낮추는 등 국민들에게는 서비스를 넓히고, 의료비 지출은 낮추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완벽한 모델이 성립되어 있지 않아 시스템 도입 초반에는 불가피하게 다양한 문제점들이 속출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이재명 정부의 보건복지 로드맵은 "모든 시민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공공의료·돌봄 인프라 확충 vs 기존 민간 의료체계와의 조화'를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취지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이 '복지·의료 확대 vs 재정 건전성' 사이의 균형적 측면입니다. 복지를 확대하려면 재원이 필요한데, 어떻게 재원을 확보할 것이냐라는 비판이 있고, 이를 단순 포퓰리즘으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는 의료인 입장에서는 정부가 조금만 생각을 전환하거나 보는 시각을 달리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노년층은 집에서 죽기를 희망하고, 이런 희망은 우리 사회의 보건복지시스템 중 '방문진료',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만 제대로 가동시키면 충분히 현실로 만들 수 있습니다.

평생 의료비의 41.8%에 해당하는 생애 말년 3개월간의 의료비 지출을 최소화한다면 그만큼의 보건예산은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또한 노년기에서 임종기로 들어가는 순간 가족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으면 가족들은 우왕좌왕하며 응급실을 들락날락거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임종기에 들어선 개인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의료기관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만일 지역사회 방문의료 및 가정형 호스피스제도가 확대된다면 임종기 환자의 응급실 이용을 낮춤으로써 비효율성을 낮춰 소위 '응급실 뺑뺑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고, 응급실이 중증의료전담 고유의 역할을 하도록 돕는 의료의 선순환 역시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방문진료팀과 가정형 호스피스팀은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필요한 곳이면 달려가고 있습니다. 모두들 보람되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설 때가 있습니다. 눈이 오면 사고는 나지 않을까 창밖을 근심스럽게 바라봐야만 합니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의료진으로서는 손길을 내미는 한 분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충분한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데, 이것이 과연 개인의원 차원에서 가능한 것인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여건 때문에 대학병원의 호스피스 병동들이 홀대받고, 없어지는구나 하고 이제야 공감이 갑니다.

최근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제주도의회 제444회 제2차 정례회 도정질문에서 제주도에 절실한 호스피스 문제에 대해 어떤 해법이 있냐는 질문을 받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곧 이를 위한 협의체를 구성할 예정"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이런 답변이 공허한 말뿐이 아니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현 정부와 도정에 제주도민의 목소리를 모아 큰 목소리로 제안합니다. 
제주도에 '가정형 호스피스제도의 공공화' 그리고 이를 위한 시범사업을 도입해 줄 것을!

우리 제주도에 창밖으로 보슬보슬 내리는 눈을 자신의 방에서 따뜻한 담요 한 장 덮고 지긋이 바라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아지는 상상을 하며 연재를 마칩니다. <끝>

황지현

제주시 연동 소재 ◯◯가정의학과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전국 및 제주도 최초로 단독형 '가정형 호스피스' 기관으로 지정받아 제주도 곳곳 손길이 필요한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진료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가정의학과 전문의, 치매진단자격의 취득, 미국 Brenau Uni. 노인학 수료, J.W.Marriott Hotel VIP 전담.
SBS 잘먹고 잘사는 법 고정패널, 제주MBC 라디오 제주시대 건강주치의 패널, KBS 추적60분 출연.

저서로「닥터맘의 우리딸 건강다이어리」「욕하는 내 아이가 위험하다」,「나는 산소로 다이어트한다」,「행복한 다이어트다이어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