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볼레로와 골프, 그 미세한 변주의 중독성

[골프한국]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의 '볼레로(Bolero)'는 단 두 마디의 리듬과 한 줄기 멜로디로 15분을 이끌어가는 기적 같은 곡이다. 반복되는 선율은 조금도 다르지 않지만, 그 반복을 받쳐주는 악기들의 색채는 매 순간 달라진다. 미세한 변화가 축적될수록 듣는 이의 심장은 점점 더 빨라지고, 마침내 절정에서 폭발하듯 해방된다.
볼레로의 중독의 원리는 골프의 심장 구조와 너무나 닮았다. 볼레로의 선율은 완벽한 반복이다. 그러나 그 완벽한 반복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건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극미한 색 변화다.
골프도 같다. 스윙은 늘 같은 동작을 반복하지만 바람의 세기, 잔디의 결, 몸의 감각, 마음의 이음새가 매번 아주 조금씩 다르다. 이 조금씩 다른 동일함이 인간의 뇌를 가장 강하게 끌어당긴다.
볼레로는 15분 동안 화성도 거의 변하지 않고, 멜로디도 다른 세계로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듣는 이는 그 단순함 속에서 기묘한 긴장과 매혹을 경험한다.
골프의 스윙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백스윙–다운스윙–임팩트–피니시'라는 어쩌면 지나치게 단순해 보이는 동작 속에서 우리는 매번 다른 긴장감을 느낀다.
라벨이 음악으로 만든 긴장은 골퍼가 자기 몸과 마음으로 만들어내는 긴장과 닮았다. 둘 다 '단순함이 높은 집중을 부른다'는 원리를 공유한다.
볼레로의 클라이맥스는 사실 새로운 멜로디나 기교가 등장하지 않는다. 반복된 리듬과 선율이 오랜 시간 축적되다가 어느 한순간 임계점을 넘어 폭발하듯 터진다.
골프에서 맛보는 '최고의 샷'도 다르지 않다. 새로운 기술 때문이 아니라 수천, 수만 번의 반복이 쌓여 어느 순간 하나의 임계점을 돌파하며 전율이 흐르는 임팩트가 나오는 것이다. 이 순간은 '볼레로의 절정'과 같다. 조용히 다가와 갑자기 존재 전체를 흔든다.
인간은 왜 이런 구조에 이끌릴까. 우리 뇌는 '전부 새로운 것'보다 '조금씩 다른 반복'에 더 큰 중독성을 느낀다. 이는 생존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생물학적 구조로 봐야 할 것 같다. 예측 가능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50 대 50으로 교차할 때 우리는 가장 깊이 빠져들게 돼 있다고 한다.
볼레로는 이 원리를 음악으로, 골프는 이 원리를 몸의 언어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볼레로는 음악으로 골프를, 골프는 몸으로 볼레로를 연주한다고나 할까.
볼레로를 듣는 것은 같은 표면 아래 무한히 다른 세계를 체험하는 일이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반복이지만 속에서는 매 순간 새로운 변주가 일어난다.
결국 두 세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다름의 그릇이다." 그리고 "변주는 음악뿐 아니라, 스윙에도 흐른다."
이렇게 보면 골프 한 라운드는 길이가 7km 남짓한 하나의 거대한 '볼레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미세한 변주를 따라 우리는 18개의 악장을 걸어가는 것이다.
라벨의 볼레로와 골프를 나란히 놓는 순간, 두 세계는 마치 오래전부터 서로를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겉으론 전혀 다르지만, 안쪽의 구조는 놀라울 만큼 같다. '미세한 중독성'이 바로 그 공통의 심장이다. 골프가 갖는 무서운 중독성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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