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 독립나선 中, 시장 꽉 쥔 美·日…韓 '샌드위치' 전락
中 '자국 장비 50% 사용' 본격화
외산은 글로벌 업체 제품 사고
틈새 시장은 中기업이 파고들어
韓업체, 반도체 호황에도 힘 못써
"K반도체 장비 위기, 이제 시작"
정부 지원 업은 中에 '속수무책'
업계 "국산장비 쓰면 혜택 주고
中만큼 기술개발 속도 높여야"

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장비업체 키우기’를 노골화하면서 국내 장비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자국 반도체 기업에 “외국산 장비 1대를 들일 때마다 국산도 1대 구입한다”는 이른바 ‘50% 룰’을 사실상 적용하고 있어서다.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수요의 4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서 밀려나면 ‘K 반도체 장비’ 성장축이 꺾일 수 있다는 위기론이 업계에 퍼지고 있다.
◇현실이 된 ‘50% 룰’

11일 대체데이터 플랫폼 한경에이셀(Aicel)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한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액은 9억63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8% 줄었다. 중국이 대형 반도체 팹(제조 공장) 증설에 나선 2021년(22억6000만달러)과 비교하면 반 토막이 됐다. 반면 중국의 전체 반도체 장비 수입액은 올 1~10월 284억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6.7% 늘었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자국에 세우는 반도체 팹에 국산 장비를 50% 이상 사용하도록 하는 50% 룰을 올해부터 본격 시행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런 정책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모든 반도체 기업이 지키는 일종의 불문율이 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50% 룰을 실제 적용하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중국 장비의 성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중국 장비업체 기술력이 올라오자 상황은 달라졌다. 중국 정부가 국산품 사용 압박 수위를 높인 것도 한몫했다. 이로 인해 SMIC 등 중국 대형 반도체업체의 자국산 장비 채택률이 올 들어 대폭 상승한 것으로 업계는 파악했다.
50% 룰의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 장비업체에 쏟아지고 있다. 대체 불가능한 첨단 공정용 장비는 유럽 등지에서 계속 수입하고, 한국 장비는 값싼 중국산으로 대체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중국 매출이 80%가 넘는 주성엔지니어링의 올 1~3분기 매출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4% 줄었고, 넥스틴은 39% 급감했다. 중국에 세정 장비를 수출하는 제우스의 올 1~3분기 매출도 284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했다. “한국 장비업체들이 압도적 기술력을 갖춘 미국, 일본, 유럽과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될 것”이란 일각의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등 글로벌 기업의 장비는 중국산으로 대체가 불가능하다”며 “결국 중국 반도체업체가 50% 룰을 지키려면 상대적으로 난도가 낮은 한국산 장비를 타깃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법 못 찾은 韓 기업들
업계에선 한국 반도체 장비 산업의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정부는 2014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3390억위안(약 70조원) 규모의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빅펀드)을 조성해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 투자해왔다. 지난해엔 3400억위안 규모 3차 펀드를 조성했다.
중국 정부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을 자국 반도체 생태계의 가장 약한 고리라고 판단하고, 이 펀드의 절반 이상을 소부장에 쏟아붓기로 했다. 7㎚ 이하 첨단 공정 장비는 네덜란드 ASML과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KLA, 일본 TEL 등 이른바 ‘빅5’가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했다. 중국 업체의 기술력은 아직 14㎚ 이하 레거시(범용) 공정 장비에 머물러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중국의 장비 자립 정책 여파가 ‘대체 가능한’ 한국산 장비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들은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러 기업이 50% 룰을 감안해 중국에 공장을 짓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기술 유출, 미·중 갈등 우려로 실제 투자는 머뭇거리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중국 기업을 압도하는 기술력을 갖추거나 미국 대만 유럽 등 다른 시장을 뚫는 수밖에 없다”며 “국산 장비를 이용하는 국내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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