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불 피워 사용한 것은 40만년 전, 종전보다 35만년 당겨졌다

약 40만년 전 고인류가 본격적으로 불을 피워 사용한 흔적이 발견됐다. 기존의 가장 오래된 불을 피운 흔적보다 35만년가량 앞선 시점이다.
영국 대영박물관, 런던대(UCL) 고고학 연구소, 런던 자연사박물관 등 연구진은 10일(현지시간) 이 같은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영국 동부 서퍽의 구석기시대 유적지 반햄에서 약 40만년 전 고인류가 직접 불을 피워 사용했던 흔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고인류는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 인류의 친척뻘이라 할 수 있는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을 통칭하는 말이다.

인류가 자연적으로 일어난 산불 등에서 불씨를 얻어 사용한 것은 약 100만년 전의 호모 에렉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기존에 발견됐던 인위적 발화 흔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5만년 전 북프랑스의 유적지였다.
연구진은 반햄에서 불꽃을 내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황철석 파편과 700도 이상의 온도에서 반복적으로 달궈진 점토 덩어리를 발견했다. 불에 그을린 지층과 부싯돌로 사용되면서 열에 의해 변화된 손도끼도 확인됐다. 황철석을 부싯돌과 부딪히게 하면 불꽃이 생겨 마른 나무나 풀 등에 불을 붙일 수 있다.

연구진은 반복적으로 높은 온도의 가열이 이뤄진 것으로 보아 산불 등 자연 발화가 아니라 사람이 의도적으로 불을 피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초기 인류의 사촌 격인 네안데르탈인 집단이 의도적이고, 반복적으로 화덕에 불을 피운 것임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기존에는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먼저 불을 사용하고, 네안데르탈인에게 기술을 전수했을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번 발견을 통해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이 먼저 불을 쓴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황철석은 당시 반햄 지역에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광물이다. 이 광물이 반햄에서 발견된 것은 당시 이 지역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들이 불을 붙이기 위해 외부에서 황철석을 반입했을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고인류가 불을 피운 흔적은 남아있는 경우가 드문데 반햄에서는 고대 연못의 퇴적층에 흔적이 파묻히면서 보존돼 있었다.
연구진은 불을 피울 수 있게 된 것은 인류 진화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설명했다. 고인류는 뇌 크기가 커지는 과정에서 불을 피울 수 있게 됐으며 이는 사회를 형성하는 데에도 기여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불은 고인류에게 빛과 온기를 제공해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왔다. 불을 이용해 음식을 조리할 수 있게 되면서 뇌 발달에 필요한 에너지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리스 신화에는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준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로부터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는 형벌을 받게 되는 내용이 들어있다. 고대 인류에게 있어 불을 피우는 기술이 매우 중요했음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불은 사회 발달에도 기여했다. 고인류는 저녁에 불 주변에 모여 앉아 계획을 세우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관계를 강화할 수 있었는데, 이는 언어 발달과 조직적 사회 출현의 기반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를 이끈 대영박물관 고고학자 롭 데이비스 박사는 기자회견에서 “불을 제어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거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쳤다”며 “이후 농업과 야금학의 변화를 가능케 한 전환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모든 요인이 결합해 인간의 적응력을 높이고 더 추운 환경으로 퍼져나갈 수 있게 했으며, 영국 같은 북쪽 지역에서도 더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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