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 주고 산 아이디 ‘말금’, 관객들은 복도 많지

임지영 기자 2025. 12. 11. 06:4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당도〉는 강말금 배우가 주연을 맡은 두 번째 장편영화다. ‘나는 43살 중고 신인이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던 시상식 이후 5년,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11월26일 강말금 배우가 <고당도>의 개봉을 앞두고 <시사IN>에 방문해 인터뷰를 했다. ⓒ시사IN 신선영

2년 전 강말금 배우는 〈폭싹 속았수다〉의 촬영을 하루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텔레비전을 틀었더니 영화 〈무뢰한〉이 방영되고 있었다. 조금만 보다 자려고 했는데 끝까지 봤다. 전도연 배우의 연기를 보며 ‘최선을 다해 끝까지 가자’고 결심했다. 다음 날 여관집 주인과 ‘관식이 엄마’가 몸싸움을 하는 명장면이 탄생했다. 2019년 단편영화 〈조의〉를 촬영할 때도 전날 친구의 추천으로 〈밍크코트〉를 봤다. 연명치료를 소재로 한 수작이었다. 스토리가 밀도 있고 연기도 좋았다. ‘정신 차리자’고 생각했고 (정신) 무장을 한 채 현장에 갔다.

그날 배우의 연기를 본 권용재 감독은 “어떤 테이크를 써야 할지 고민일 정도로 밀도 높은 연기를 보여줬다”라고 회상한다. 두 사람이 6년 만에 다시 만났다. 12월10일 개봉하는 〈고당도〉는 강말금 배우가 주연을 맡은 두 번째 장편영화다. 단편영화 〈조의〉에서 출발한다. 골격은 비슷하지만 이야기가 확장됐다. 강말금 배우가 뇌사 상태의 아버지를 돌보는 간호사 선영 역을 맡았다. 아버지의 임종이 임박하자 사채업자에게 쫓겨 도망 다니던 남동생 일회의 가족이 나타난다. 일회의 아내 효연이 실수로 미리 작성해놓았던 부고 문자를 발송해버린다. 조카 동호의 의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짜 장례식’이 치러진다.

2007년 서른 나이로 서울 대학로에서 연기 생활을 시작한 강말금 배우는 2020년 첫 주연을 맡은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이하 〈찬실이〉)로 영화제에서 신인연기상을 받았다. ‘나는 43살 중고 신인이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던 시상식 이후 5년,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올해만 해도 〈말할 수 없는 비밀〉 〈로비〉 〈폭싹 속았수다〉 등에서 엄마, 여관 주인, 장관, 간호사로 관객과 만났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지만 대사 한마디 주어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인지도가 쌓여 좋은 건 “좋은 작품, 좋은 역할이 많이 들어온다”는 점이다. 연기로 찬사를 받으면서도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정신 차리자’고 되뇌는 건 여전하다.

〈고당도〉는 단편에서 시작된 영화다. 연기할 때 어떻게 달랐나.

같은 테마지만 〈조의〉는 반전이 중요했던 영화다. 당시 3일 정도 촬영을 했다. 나라는 사람은 너무 준비를 하면 연기가 딱딱해진다는 생각을 한참 할 때였다. 그래서 대본을 안 보고 걱정만 하고 갔다. 전날에서야 대사를 외웠다. 내가 하는 연기가 스스로 좀 답답해서 즉흥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하나의 대사에도 많은 의미가 있는데 그걸 다 표현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안 될 때가 있다. 이번에는 대사 양도 많고 여러 서사를 표현해야 해서 대본을 아주 열심히 봤다.

간병·죽음 같은 무거운 소재가 코미디적 요소와 어우러진다.

선영은 아버지의 임종이 가깝다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들으니 반가운 게 아니라 ‘멘붕’에 빠진다. 거기다가 동생 일이 계속 터지면서 수습하려고 꾀를 쓰다 보니 하루가 끔찍하게 흘러간다. 그게 선영의 기본 상태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했다. 또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수, 그다음 수가 내다보이는 사람이고 (의대에 합격한) 조카도 자기를 닮아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다 후반부로 가면서 약간 선영이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아버지가 ‘이상하게’ 떠나면 나도 온전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갖는다. 이 세 가지를 기둥으로 연기했다.

<고당도>는 조카의 의대 등록금을 위해 가짜 장례식을 치르는 가족들의 이야기다. ⓒ트리플픽쳐스 제공

연기하며 가족들 생각이 났을 것 같다.

선영이가 딱하다. 또 성격이 안 좋다. K장녀 중에 성격 좋은 사람이 있을까. 내 언니 얘기를 안 할 수 없는데 언니는 나의 뮤즈다. 〈서른, 아홉〉 드라마에서 손예진 배우와 자매 역할을 할 때도 언니를 생각하면 쉬웠다. 선영과 실제의 나는 공통점이 없고, 돈 문제만 빼면 남동생 일회랑 오히려 비슷하다. 실제로 어머니가 60대 후반에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언니가 계속 간병을 했다. 내가 일이 잘 풀리면서 돈을 좀 보탤 수 있게 되어 좀 나아졌다. 한 10년 전 일기를 보면 언젠가 언니와 나의 위치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그게 소원이라고 썼다. 어느 가족이든 〈고당도〉를 보며 가족 구성원의 입장을 공감하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

동생 역을 맡은 배우 봉태규와의 작업은 어땠나.

배우로 만날 때 한쪽이 너무 유명하면 스스로 벽을 없애는 게 제일 큰 숙제다. 〈찬실이〉에서 윤여정 선생님이 그랬다. 글자를 모르는 할머니로 보이지 않았다. 간극을 좁히지 못해서 끙끙 앓았다. 그때 지인이 조언을 해줬다. ‘찬실이 할머니는 찬실보다 더 가진 게 없는 분이다. 딸을 잃었으니까.’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들었다. 봉태규 배우는 내가 순수 관객이던 시절에 스타였기 때문에 역시 벽이 있었다. 그러나 봉태규라는 자연인의 수다력이 워낙 뛰어나 조근조근 소소한 얘기를 하며 풀렸다.

종종 단편영화에 출연하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에 자주 등장했다.

단편영화를 찍기 시작한 건 연극을 함께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TV에 나올 거라는 생각을 안 해봤다. 지금은 염혜란, 이정은 선배 같은 분이 있지만 연극을 하다 영화로 넘어간 여자 배우가 많이 없었다. 대학 때 극예술연구회를 해서 연극을 하게 된 건데 극단에 들어갔더니 대사가 없었다. 부산 사투리 쓰는 사람을 무대 위에서 쓸 수 없었다. 평소의 말투를 바꾸라는 조언을 들었는데 마음먹은 대로 안 되니 말의 시작이 항상 늦었다. 점점 자신감이 없어졌다. 길을 모르고 좌절을 많이 했다. 극단에서 연기 말고 인형을 조종하거나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어떻게 영화 출연할 기회가 왔나.

극단 재정이 어려워져서 모두 재연 드라마 아르바이트를 갔다. 그런데 다음 번에 나를 주인공으로 부르더라. 놀라웠다. 모니터를 하며 ‘내가 팔자로 걷는구나’ ‘목소리에 자신이 없구나’ 확인했다. 두 번째 주인공으로 불러주었다. 네 번 출연하는 동안 이 길이 있다는 걸 알았다. 다른 계기로 극단을 그만두었는데 인형 조립만 하던 사람을 초대해줄 곳이 없었다. 2010년 즈음 조연출로 연극을 다시 했다. 황석정·이정은 배우들의 리허설을 매일 보며 5년 정도 재밌게 살았는데 엄마가 아프시고 나서 시각이 좀 달라졌다. 돈을 벌지 않으면 아무리 재밌게 연극해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또 1년에 한두 개씩 단편영화를 찍었는데, 이 장르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그것만’ 해야 할 것 같아 연극을 잡지 않았다. 2017년이다. 그해 7월 〈자유연기〉를 찍었다.

김도영 감독(〈82년생 김지영〉)의 〈자유연기〉로 배우 강말금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임신 출산으로 경력 단절을 겪은 배우의 이야기다.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희곡 〈갈매기〉의 독백 부분이 나오는데 많은 배우들이 하고 싶어 하는 역할이다. 젊은 나이의 주인공 역할 배우들이 많이 하는데 마흔 살에 그걸 하게 되어서 신기했다. 좋은 말도 많이 들었다. 그 덕에 회사도 들어가 드라마 경험을 하게 되었고, 김초희 감독님이 〈찬실이〉 대본을 메일로 처음 줄 때도 그 연기에 대해 얘기했다. 감정의 다발을 느꼈다고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강말금 배우의 첫 장편영화 주연작이다.

대중에게는 무엇보다 〈찬실이〉로 각인됐다.

독립 장편영화에서 주연배우를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찬실이〉를 할 때도 몰랐다. 나는 연극무대에서 할머니를 많이 했다. 처음에는 재밌었는데 반복되니까 하기 싫더라. 그럼 또 안 했다(웃음). 철없이 살았는데 좋아하는 건 낭독 공연이었다. 낭독 공연은 읽는 사람이 그 감정의 주인공이다. 영화 주인공이 될 거라고 생각 못하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 얼떨떨했다. 더군다나 너무 좋은 글이 왔다. 그다음에는 책임감이 생겼다. 18회 차를 촬영했는데 체력 때문이든 지력 때문이든 한 신이라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지루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시야가 좀 넓어졌다. 주연이 아닐 때는 작품을 흉보기도 했는데 주연이 되니 작품 분위기에 문제 있으면 내가 개선해야 했다. 〈고당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회차를 찍는 동안 모인 스태프들이 크게 상처받거나 문제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교사가 된 친구의 아이디 ‘말금’을 500원 주고 샀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맑음’이라는 뜻이다. 그 당시 사는 게 너무 재미가 없어서 본래 이름을 버리고 싶었다. 본명이 강수혜인데 그때는 뭔가 연약하고 우울하게 느껴졌다. 연극 팸플릿에 찍히는 이름이 강말금처럼 ‘닫히는’ 느낌이고 꽉 찬 이름이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내가 크고 멋있는 사람도 아니라서 이모·고모 같은 역할을 할 텐데 정감 있고 촌스러운 이름이면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역회사를 7년 다녔다. 처음 연기를 한다고 할 때 대부분 말렸는데.

철이 없어서 가능성 없는 일에 베팅을 한 것 같다. 직장에 들어갔을 때 연봉 1950만원으로 시작했는데 6년 반 뒤에 2160만원이었다. (거의) 안 오른 거다. 일도 잘 못했고 사수를 잘못 만나서 내게 일을 안 줬다. 아침 7시50분에 출근해서 저녁 7시까지 일하는데 할 일 없이 버텼다. 퇴근 시간만 기다리다 끝나면 술을 마셨다. 우울증의 끝에 배우를 선택한 것이지 어떤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12월10일 개봉하는 <고당도>는 강말금 배우가 주연을 맡은 두 번째 장편영화다. ⓒ시사IN 신선영

그렇게 배우 생활을 시작했지만 마트, 교열 아르바이트 등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다. 비슷한 상황의 연기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돌이켜봤을 때 운이 상당히 좋았다. 주인공을 할 당시 여성 영화가 지원을 많이 받던 시절이고 〈벌새〉 〈메기〉 같은 영화가 나오던 흐름에서 김초희 감독님을 만날 수 있었다. 〈찬실이〉로 좋은 기회가 생겨서 드라마도 하게 됐다. 제작 편수도 많을 때라 드라마 출연 기회가 많았다. 만약 어떤 배우가 대사 때문에 고민이라고 하면 얘기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대사로 애를 많이 먹었고 지금도 연습하고 있다. 하지만 일이 잘되고 못되고는 알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찬실이〉를 할 때 40대 여성 배우가 주인공이 된 것 자체가 달라진 풍경이었다고 했다.

10년 전, 대학로에 있을 때 늘 화가 나 있었다. 처지도 처지지만 술자리에서 남성 연출가가 (부적절한) 농담을 하면 화만 내고 있을 수는 없어 장단을 맞추고, 그런 나 자신한테 화가 나서 잠을 못 자고 그러다 엉뚱한 데서 터졌다. 미투가 터지고 많은 질서가 재정비되었는데 남녀 간의 관계뿐 아니라 연출가와 배우의 위계도 정리되었다. 여성 캐릭터의 풍부함이 반영되어서 많은 역할을 경험할 수 있게 된 면도 있고, 일단 사는 데 머리가 덜 아프다.

출연한 작품이든 아니든 전환점이 된 작품이 있나.

한눈에 반한 영화가 〈천하장사 마돈나〉다. 같은 날 극장에서 〈괴물〉을 보고 이어 봤다. 〈괴물〉은 이후 한 번 더 보고 〈천하장사 마돈나〉는 네 번을 더 봤다. 당시 우울하고 굉장히 용기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민감한 소년의 이야기가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이해영 감독이 데뷔하기 전부터 쓰던 글을 좋아했다. 상상력이 좋았다. 같이 작업한 적은 없지만 언젠가 사적으로 뵙게 되면 그 얘기를 하고 싶다.

최근 〈세계의 주인〉을 보고 SNS에 ‘이 업을 하는 나에게도 큰 힘이 된다’고 올렸는데.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눈앞에 관객이 없으니 일단 위축이 된다. 〈대박부동산〉(2021) 촬영할 때 방영된 드라마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다른 배우와 내가 다르더라. 나 혼자 ‘독립영화같이’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른 배우들은 오히려 연극하듯이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방영되는 날이면 누워서 밤을 새웠다.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내 연기가 시청자 앞에까지 미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카메라 너머에 관객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걸 의식하고 연기하면서 좋아졌다. 이후로 카메라 앞에 서면 여기가 끝인 것 같지만 도달 지점은 시청자라는 걸 생각하고 그걸 자주 리마인드한다. 좋은 영화는 도달하는 자를 항상 품고 메시지나 방향성을 전한다. 〈세계의 주인〉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해서 감명받았다. 카메라 뒤에 관객이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한때 집 벽에 ‘배우는 몸과 말’이라고 적어놓았다는 인터뷰를 봤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얘기다. 은근히 운동을 많이 한다. 러닝 같은 걸 많이 한다는게 아니라 폼롤러로 몸을 계속 미는 식이다. 뭐 하는 짓인가 싶을 정도로 강박이 있다. 3년 정도는 매일 30분씩 듣기 좋은 말이 나오는 유튜브를 틀고 0.5초 늦게 ‘듣고 말하기’를 했다. 당시 뭔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느꼈지만 그게 너무 하기 싫어서 적어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배우의 표면은 몸과 말이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