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프로 워킹맘] 개근상? 요즘 아이들은 '개근거지'라고 부릅니다

하은정 기자 2025. 12. 11.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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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개근거지’라고 해서 개근상 받는 거 싫어해요.” 개근상이 하대 받는 세상이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우먼센스] 모 대학의 1년짜리 단기 교육과정에 등록했다. AI 등 첨단기술의 변화 흐름만큼은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매주 출석해야 한다는 부담은 만만치 않았다. 다른 일정과 수업이 겹칠 때는 곤혹스럽기도 했지만, 온갖 방법을 동원해 결국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수료식에서 개근상을 받아 조카에게 자랑했더니 돌아온 반응은 뜻밖이었다.

"어른들은 개근상이 좋아요? 애들은 '개근거지'라고 해서 개근상 받는 거 싫어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잊고 있었던 신조어 '개근거지'가 떠올랐다. 5년 전쯤 기사에 등장해 논란을 일으켰던 이 단어는, 성실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던 기성세대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슬며시 잊힌 듯했지만, 코로나 이후 해외여행이 일상화되면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체험학습이 공식 출석으로 인정되면서 아이들은 국내외 캠프나 부모와의 여행을 이유로 학교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반면 경제적 여유가 없거나 부모의 출근으로 인해 매일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은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더 놀라운 것은 아이들이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무례한 평가를 내리고, 아무렇지 않게 장난처럼 내뱉는 말들은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학교에 성실히 나가는 학생이 조롱을 받는 세상이라면,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을까.

코로나 시기 온라인 학습을 경험한 고등학생들의 자퇴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매일 등교해 시간을 '낭비'하느니 원하는 방식으로 입시를 치르겠다는 생각에서다. 학교가 그저 입시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만 전락한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 최초의 공교육은 고종이 소학교령을 제정하며 시작됐다. 모든 국민이 근대적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뜻에서 문을 연 소학교는, 글을 배우고 셈을 익히며 스승을 공경하고 친구를 배려하는 곳이었다. 부모들은 자식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라면 배를 곯더라도 학교부터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는 어떤가. 지식으로 무장해 경쟁을 벌이고, 타인의 실패를 발판 삼아 자신의 성공을 확인하는 '점수 공장'이 된 지 오래다. 스승과 제자의 따뜻한 정은 찾아보기 어렵고, 성적과 등수를 놓고 경쟁하는 또래 집단만이 학교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매일 소중한 시간을 바쳐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부모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 곳을 넘어 타인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사람의 존엄을 이해하는 사회성의 훈련장이기 때문이다. 규칙과 질서를 익히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공감 능력을 기르는 공간, 개인이나 온라인 환경에서는 결코 대신할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 바로 학교여야 한다.

핵가족 시대로 접어들고 SNS에 무방비로 노출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의 사회화를 일깨워 줄 수 있는 공간 역시 학교다. 아이들이 학교 생활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돕고, 사람을 존중하고 이웃을 이해하는 가치와 질서를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오만과 독선을 다스릴 줄 아는 슬기로운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개근거지라는 섬뜩한 조롱이 왜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지, 함께 사는 세상에서 최소한의 도리가 왜 필요한지.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이 기본을 배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글쓴이 유정임 MBC FM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작가 출신. 두 아들을 카이스트와 서울대에 진학시킨 워킹맘으로 <상위 1프로 워킹맘> <말과 태도 사이> <아이가 공부에 빠져드는 순간> 저자다. 유튜브 <유정임 채널_리스펙에듀> 운영 중이다. 

하은정 기자 hah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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