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 태양처럼, 빛나며 저무는 인생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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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유원(樂遊原)은 장안(長安)의 고지대로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장소였다고 한다.
이곳을 자주 찾던 당나라 이상은은 어느 우울한 날 석양 무렵의 감회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인생에 황혼이 드리울 때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을 아쉬워하기보다 남은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석양의 아름다움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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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유원(樂遊原)은 장안(長安)의 고지대로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장소였다고 한다. 이곳을 자주 찾던 당나라 이상은은 어느 우울한 날 석양 무렵의 감회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시에서 황혼에 가까워 석양의 아름다움이 오래갈 수 없음을 한탄하는 구절은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이키루(生きる·살다·1952년)’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는 아내의 죽음 뒤 오랜 세월 무기력하게 살아온 주인공 와타나베가 나온다. 그는 시청에서 오로지 복지부동의 자세로 형식적으로 서류만 처리하며 세월을 헛되이 보낼 뿐이다. 그러다 위암 말기로 자신의 여명(餘命)이 얼마 남지 않게 되자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결국 동네 사람들의 바람이었던 더러운 웅덩이를 아이들 놀이터로 바꿔주는 일에 자신의 남은 시간을 쏟아붓기로 결심한다. 놀이터 완성에 전심전력하던 와타나베가 우연히 석양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영화엔 와타나베가 부르는 “인생은 짧아요/사랑을 해요 아가씨/빨간 입술이 변하기 전에/뜨거운 젊은 피가 식기 전에/내일이란 없는 것을”(‘곤돌라의 노래’)이란 노래가 두 번 나온다. 첫 번째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연민으로 눈물을 흘리며, 두 번째는 완성된 놀이터에서 눈 내리는 밤 홀로 그네를 타며 행복한 얼굴로 부른다. 같은 가사지만 영화 끝 무렵 놀이터에서 부른 노래는 인생의 허무함보다 마지막 열정을 노래한 것처럼 느껴진다.
현대 학자 중엔 일본의 이리야 요시타카(入矢義高)나 중국의 저우루창(周汝昌)처럼 위 시의 후반부 두 구절을 달리 해석한 경우가 있다. 마지막 구의 ‘지시(只是)’란 말을 ‘다만’이 아니라 ‘바로’의 의미로 보아 “석양이 한없이 좋으니, 황혼이 가깝기에”로 풀이하는 시각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탄식이 아니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더 아름답다는 시인의 정서적 고양으로 재해석한 셈이다.
인생에 황혼이 드리울 때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을 아쉬워하기보다 남은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석양의 아름다움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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