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사랑하게 된 이유를 선율에 가득 담아 [지역에 사니다]
지난달 미니앨범 '아마추어의 집' 발매
“많은 이들에게 좋은 노래 불러주고파”

남해에 사는 문화기획자이자 싱어송라이터 안지원(34)이 지난달 12일 미니앨범(EP) <아마추어의 집>을 냈다. 인디음악계에서는 괜찮은 앨범이라고 제법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번 앨범에는 2018년 남해에 귀촌해 살면서 경험하고 느낀 걸 담아 만든 노래들이 담겼다. 듣다 보니 노래에 담긴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졌다. 대뜸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더니 안지원은 무척 기뻐하며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
남해군 서면에 있는 안지원의 집 마당 한쪽에는 길고양이들을 위한 사료통이 있다. 못 보던 검은색 길고양이가 사료를 먹고 있자 그가 난감해했다. 최근 그의 집에 정착한 어미 1마리, 새끼 3마리로 된 길고양이 가족이 먹이를 먹지 못할까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의 집고양이도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그의 집에 간 게 오후 1시였는데, 마당은 물론이고 대청마루까지 햇볕이 쨍하게 들어왔다. 그는 추울 수 있다며 난로를 켜주고 호지차를 내주었다. 햇볕과 난로, 따뜻한 차로 금방 훈훈해졌다.
그는 원래 하는 문화 기획 일도 바쁜데, 올해는 앨범 내느라 정신없는 연말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눈은 초롱초롱하고 입에 항상 웃음이 달려 있어 지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앨범 제목이 <아마추어의 집>이다. 안지원은 영국 인류학자 팀 잉골드의 책 <조응>에서 나오는 '아마추어'가 자기를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여겨져서 앨범명에 넣게 됐다고 했다.
"내 생각에 진정한 연구자는 모두 아마추어예요. 아마추어는 말 그대로, 전문가처럼 경력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정 주제를 향한 애정으로, 이끌림과 자율적 참여와 책임감이라는 동기로 연구하죠. 아마추어는 조응자들(correspondents)이고, 그들은 연구하면서 세계 전체의 삶의 방식과 조화를 이루는 자기 삶의 방식을 찾죠."
그의 앨범에 달린 해설(라이너 노트)에서 정병욱 음악평론가는 아마추어의 어원이 '사랑하는 사람', '헌신적인 숭배자'라는 뜻인 라틴어 'amtor'라고 전제하면서 "삶을 사랑하게 된 사람이 사랑의 방식을 노래로 만든 결과.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지은 노래"라고 평했다.
안지원은 자신의 노래를 두고 "삶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나만의 방식이 노래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노래는 남해서 살면서 겪은 일들,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 그 사람들하고 하는 대화 같은 것을 탐구해 나온 결과다.

일상이 자연스럽게 노래로
안지원이 가사를 쓰고, 노래를 짓게 된 건 포크가수 권나무 덕분이다. 경남에서 활동을 시작했던 권나무는 2015년 제12회, 2016년 제13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잇달아 최우수 포크상을 받았다. 또 지난해 EBS 음악 방송 <스페이스 공감>이 2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2000년대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에 3집 <새로운 날>이 선정되기도 했다.
안지원은 권나무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신도 노래를 지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2023년 3월 남해에서 열린 한 행사 뒤풀이에서 권나무를 만났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앨범을 어떻게 내게 되느냐는 질문에 권나무는 정규 3집을 예로 들면서 '러브 인 캠퍼스(LOVE IN CAMPUS)'를 만들고 보니 이를 중심으로 앨범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답했다. 안지원은 '그런 감각이 있구나' 생각하며 그 말을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러다 올해 이번 앨범 주제곡 '필주'를 지으며 그 감각을 마주했다.
필주는 그의 친구 이름이다. 농사를 짓는 필주는 마당에 나무가 있는 월셋집을 덜컥 구했고, 한 달에 한 번 충북 괴산에 가서 고리고리한 음식들을 배워다가 안지원에게 준단다. 성격이 호방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는데, 안지원은 그런 그가 부럽다.
안지원에게 이제 남해 살이에 대한 낭만은 없다. 현실적으로 헤쳐나가야 할 문제가 그의 앞에 산적했기 때문이다. 남해에 처음 왔을 때, 잠시 서울에 있다가 돌아왔을 때 겪었던 혼란과 내적 갈등은 아직 조금 남아있다. 그의 삶에 대해 현재 답을 내릴 수 있는 최선책이 노래 '필주'에 담겨있는 듯하다.
"…못 자국은 나뭇결에 묻히고/ 파란 꽃무늬 접시 아직 쓸만하고/ 그렇게 갑자기 이별할 줄 모르고/ 아끼는 것들 다 먼지 쌓인 채로/ 그대로 두고 간 사람이 살던 집/ 그때 유행하던 붉은 색 주방에/ 두부를 만들고 가지를 키우는/ 네가 살게 돼서 나도 놀러 가고/ 이렇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정말 좋다…"
앨범 두 번째 곡 '춘곤증', 세 번째 곡 '방지턱과 할머니'는 남해에 처음 왔을 때 만든 노래다. '춘곤증'에는 남해에 정착하기 직전 한 달에 몇 번씩 들를 시기의 경험이 담겼다. 남해에선 사람들 비가 오면 비온다고 일을 안 하고 눈이 오면 눈 온다고 일을 안 하는 것처럼 보였다. 서울에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대중교통에 어떻게든 몸을 싣고 가서 일을 해야 했다. 남해에서는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모습들을 발견한 것이다.
당시 안지원은 서울과 남해를 오가며 혼란을 겪고 있었다. 가사 중 "살랑살랑 잠이 오네 나를 막지 말아요 집에 갈 거예요"는 내가 속할 곳이 남해에 있을지 기대하는 그의 속내를 은유한 것이다. 농민들은 안지원이 한참 자고 있는 새벽에 나와 일을 하고 있었다. 안지원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됐다'며 멋쩍게 웃었지만 그가 영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많은 이들에게 노래 전하고픈 마음
안지원은 2020년 경제적인 어려움이 목전에 닥쳐 서울로 돌아간 적이 있다. 안지원은 이 시기를 '외도'라고 표현했다. 서울에 가 있던 2년 동안은 노래가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노래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이 '천지'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그중 절반만 내년 계획에 넣을 생각이라고 말할 정도다. 많은 일 중에서 미세하게 선택해 나가면서 그의 정체성을 지키려 한다. 기획자로서도 노래 부르는 가수로서도 말이다.
내년에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이번 모음집의 수록곡을 최대한 다양한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래야 자신의 삶에 노래가 의미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축제장, 행사장부터 동네책방 같은 문화 공간에서도 노래하고 싶어요. 장필순, 김광석의 노래처럼 포크 음악은 누구나 듣기 좋고 편한 음악이기에, 내 노래 또한 수용성 좋은 노래가 되면 좋겠어요."
그는 6일 열린 서울 복합문화공간 공상온도에서 열린 앨범 발매 공연을 시작으로 내년 2월까지 남해, 서울 등에서 5건의 공연을 하려 한다. 서울 공연에는 자신처럼 지역에서 음악하는 친구들이 세션으로 참여했다.


안지원은 녹음과 앨범 발매 공연을 서울에서 하게 되었지만, 굳이 서울과 지역을 구분하고 싶지는 않고 서로 교류하며 성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물론 지역 공연도 많이 다닐 테니 자주 불러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가 속한 '카카카친구들'은 지금 제법 규모가 큰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이 서면에서 책방과 식당을 운영하던 건물 1층을 카페로 바꾸고 있다. 올해 안에는 문을 열려고 하는데, 현재 메뉴 개발 막바지다. 건물 1층에 있던 책방 스테이위드북은 2층으로 올렸다.
그리고 손님이 오면 항상 안지원의 집을 아지트마냥 사용하곤 했는데, 그러기엔 안지원의 집이 남해에서도 한참 들어와야 해서, 이동면에 게스트하우스를 새로 열려고 준비 중이다.
이외에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계획들이 그에게 있다. 그는 지금처럼 하고 싶은 일들이 넘치는 상태가 좋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할 일이 떠오르지 않았던 2년이 그를 힘들게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