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수능, 문제풀이 훈련에 쏟는 학부모 재력 평가 수단 전락"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5. 12. 1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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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정시 합격 가능선 예측 및 지원전략 설명회'에서 학부모 및 수험생이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올해도 수능의 출제 오류와 난이도 논란을 비껴가지 못했다. 영어의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최교진 교육부 장관의 공식 발언으로 난이도 논란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절대평가가 적용되는 영어에서 1등급의 비율이 역대 최저인 3.11%에 그친 것이 문제였다. 실제로 2018년 이후 영어 1등급은 4.71%(2024학년도)에서 12.66%(2021학년도) 사이를 널뛰듯 출렁거렸다. 상대평가 1등급(4%)보다 더 많은 수험생에게 1등급의 짜릿함을 맛보게 해주겠다는 절대평가의 ‘선심성’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교육단체·교육부·정치권이 야단법석이다. 전교조를 비롯한 100여 개 교육단체가 일제히 교육과정평가원장의 사퇴를 요구하자 10일 급기야 사퇴했다. 이제라도 상위 4%에게 모두 1등급을 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교육부는 당장 영어 난이도 실패의 원인을 ‘조사’해서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평가원장이 사퇴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국회에서도 평가원을 국무총리실에서 교육부 산하로 이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의 정무위원회가 아니라 교육위원회가 수능 논란을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도 수능의 본질적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수능의 평가 방식이나 평가원의 소속을 바꾼다고 수능이 더 공정해지고 더 투명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정말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5지 선다형 객관식의 ‘짝퉁 수능’으로는 빠르게 실현되고 있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 수능 난이도 실패의 흑역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암기식 교육만 부추긴다는 ‘학력고사’의 폐해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1993년에 처음 도입했다. 미국의 SAT처럼 만들겠다는 호기로 첫해 수능은 2차례에 걸쳐 시행됐다. 

8월 20일의 1차 수능에는 72만 명이 응시했고 11월 16일의 2차 수능에는 73만 명이 응시했다. 그런데 “1차와 비슷한 난이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문항의 내용과 형식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성적이 다소 올라갈 것”이라던 출제위원장의 주장은 도무지 믿을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2차 수능 응시생의 80%가 1차 수능보다 낮은 성적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1994학년도 2차 수능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교육부의 괜한 객기에 수험생만 고초를 겪었고 엄청난 사회적 비용만 낭비하고 말았다. 물론 SAT 흉내내기도 막을 내렸다.

수능의 난이도 논란은 수능 시험 날 아침 “교육과정 범위 안에서 난이도를 적정하게 조절했다”는 출제위원장의 틀에 박힌 주장이 나오고 수능 시험이 끝난 직후부터 사교육 시장과 언론에 의해 난도질을 당하기 시작한다. 

평가원 원장의 점잖은 발언과 마찬가지로 사교육 시장의 예측과 분석이 제대로 들어맞았던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없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아무도 감히 그들의 ‘권위’와 ‘전문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02학년도 수능의 상황이 최악이었다. 당시 출제위원장은 “지난 2년 동안의 경험을 살려서 적정한 수준으로 출제했다”고 밝혔고 사교육 시장도 대체로 평균이 올라갈 것이라는 뜻밖의 분석을 내놓았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2002학년도 수능은 역대 최악의 ‘불수능’으로 귀결됐다. 

출제위원장과 사교육 사장의 무책임한 주장에 자신만 성적이 떨어졌다고 믿었던 수험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일도 벌어졌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까지 나서서 “쉽게 출제한다는 정부 약속을 믿었다가 충격을 받은 학부모와 학생들을 생각할 때 매우 유감스럽다”는 사과 메시지를 내놓아야만 했다.

‘불수능’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쉬운 ‘물수능’도 논란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상위권 대학의 변별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물수능이었던 2001학년도 수능의 경우가 그랬다. 

“조금 어렵게 출제해서 전체 평균이 조금 떨어질 것"이라던 출제위원장의 구체적인 발언은 수능 다음날 공개된 사교육 시장의 가채점 결과와 전혀 맞지 않았다. 2001학년도 대학입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전(混戰)이었다.

● SAT의 껍데기만 베낀 결과

난이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 출제 과정에서 현직 교사로 구성한 ‘검토위원’을 투입하면 수능의 난이도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수능 전문가들의 억지 신념 때문이다. 

그러나 검토위원의 난이도 예측은 그저 예측일 뿐이었다. 아무리 경험이 많은 검토위원이라고 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993년부터 34회의 수능을 통해 번번이 확인한 명백한 진실을 우리 수능 전문가들은 지금도 애써 거부하고 있다.

수능의 난이도 논란을 원천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SAT처럼 완벽한 ‘문제은행’을 활용하는 길뿐이다. 수험생의 정상적인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객관식 문제는 평가원이 급조하는 어설픈 전문가들이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난이도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능 문제의 난이도는 실제 수능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33년의 수능을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된 명백한 진실이다.

미국의 SAT는 시험 문항의 난이도를 확인하기 위한 표본 집단으로 실제 SAT 응시생을 활용한다. 응시생에게 주어지는 문제 중 약 10% 정도가 난이도 확인을 위한 ‘검토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응시생의 입장에서는 어느 문항이 검토용인지를 확인할 수 없고 검토용 문항의 결과는 수험생의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다. 

실제 SAT 상황에서 난이도가 확인된 문제만 응시생의 SAT 성적에 반영된다는 뜻이다. 검토용 문항은 단순히 난이도를 확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문항의 출제 오류를 검증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SAT가 수험생에게 복수의 응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것도 난이도 확인과 출제 오류 방지를 위한 그런 적극적인 노력 덕분이다. 

미국의 SAT를 시행하는 교육평가사(ETS)는 SAT 문제를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 진정한 문제은행을 위해 기출문제를 재활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모든 문제가 공개되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기출문제를 재활용하는 진짜 ‘문제은행’은 불가능하다. 결국 매년 새로운 수능 문제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출제 오류와 난이도 논란은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다.

● 극복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한 수능 출제

사실 오늘날 수능의 현실은 매우 심각하다. 극도로 제한된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범위 안에서 수능의 정상적인 출제가 불가능해졌다.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동안 34회나 시행된 수능에서 출제되었던 ‘기출문제’와 시중에 나와 있는 문제집의 문항은 모두 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최소한의 변별력을 확보하려면 지문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문항에 새로운 ‘수능형 함정’을 숨겨둘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인재를 5지선다의 객관식 짝퉁 수능으로 길러낼 수는 없다. 현재의 상처 투성이 수능으로는 창의 교육도 불가능하고 책임・배려・나눔을 목표로 하는 인성 교육도 불가능하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합리성과 예술적 창조력을 바탕으로 하는 융합 교육도 그림의 떡이다.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수능 성적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상위권 대학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상식이다. 오늘날 수능은 오히려 수능형 객관식 문제 풀이 훈련에 쏟아부을 수 있는 학부모의 재력(財力)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 사실이다. 개천에서 나는 용(龍)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2028학년도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문・이과 통합형’ 수능도 고등학교 현장을 더욱 심각하게 왜곡하는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의 ‘사회’와 ‘과학’이 고등학교 1학년의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으로 끝나버리게 된다.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은 수능 대비를 위해 1학년의 통합 과목을 반복하는 교육으로 채워지게 될 수밖에 없다. 

이제 현실적으로 출제도 불가능해지고 기능도 상실해 버린 ‘짝퉁 수능’의 대안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늦어도 너무 늦은 일이다.

※필자 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3200여 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질병의 연금술》《지금 과학》을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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