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소요로 가득 찬 일상서 빠져나와 고요에서 더 지혜롭기를” [나의 삶 나의 길]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프레임으로
싸움을 하며 정작 옳은 것은 잊어버려
고요와 만나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
소요의 시간을 고요의 시간으로 바꿔야
미대 꿈꾸다 얼결에 들어선 문학의 길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술
할 말은 하되 거칠지 않은 詩여야 의미
매일 고요로 가며 침착해진 나를 만나


“씨앗이 결심하면 새싹도 결심한다/ 뿌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나무도 포기하지 않는다/ 흙 속에서 살아 있으면/ 땅 위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흙이 말하면/ 바람도 알아듣는다고 말했을까/ 도토리는 몸을 녹여 새순을 만들고/ 살을 덜어 뿌리로 내려 보냈으리라/ 잘게 나누어진 도토리 뼈는 나무둥치가 되고/ 도토리 손은 나뭇가지가 되고/ 도토리 눈은 우듬지로 올라가/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리라/ 그렇게 여러 해가 흐른 뒤에/ 다시 수백 개의 도토리가 되었으리라.”(‘도토리’ 부문)
3선 국회의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뒤 본원자리인 시인의 자리로 복귀한 도종환이 ‘도토리’를 비롯해 85편의 시를 묶은 시집 ‘고요로 가야겠다’(열림원·사진)를 들고 돌아왔다.

그는 “현대인들은 소요(騷擾) 속에서 산다.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다”며 “소요의 시간을 고요의 시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차분해지고 침착해지는 시간을 갖고, 그 시간 속에서 더 지혜로워지고 슬기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인 도종환은 왜 고요로 가야겠다고 노래한 것일까. 그가 보고 느끼고 노래하는 고요는 과연 어떤 풍경일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도 시인을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시는 인간 세사에 대한 놀라운 알레고리로도 읽힙니다.
“어느 날 밭둑을 기어가는 달팽이를 보고 쓴 시입니다. 우리도 늘 등짐으로 허덕이면서 가고 있잖아요. 아이고, 이놈의 짐 무거워서 힘들어 죽겠어.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짐을 내려놓고 기댈 때도 있지요. 짐이라는 것은 자식이나 일이기도 한데, 모두 인생의 업이죠. 우리는 업을 짊어지고 살지만, 가끔은 그 업에 또 기대어 살기도 하죠.”
시집은 그리하여 단순한 관조가 아닌, 질풍노도와 같은 삶을 거쳐 왔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어떤 고요의 마음을 향기롭게 담는 데 성공하는 듯하다.
―우리 현대인들은 왜 고요로 가야 하는 겁니까.

“객지에 있지 말고 여기 고향으로 내려와라. 등록금이 전액 면제되는 국립대 사범대학이 있는데, 이곳에 진학하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젊은 도종환은 가난 때문에 등록금이 면제되는 국립 충북대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사범대학에는 미술교육과가 없었고, 대신 국어교육과에 진학해야 했다. 미대를 가지 못했다는 좌절감 때문에 그는 한동안 방황하고 헤맸다. 대학 1학년 시절 자주 술에 취했다고, 그는 고백했다.
“책가방에 소주병과 잔을 들고 다니며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점심 내내 술을 마시기도 했고요. 노래도 잘 하지 못하면서 괜히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기도 했죠.”
그런데 문학 서클에 있던 선배들은 그의 이런 모습을 오히려 문학에 끼가 있어 그러는 것으로 오해하고 그를 문학 서클로 이끌었다. 서클 이름은 ‘오리 새끼’. 대학 2학년 시절, 글 쓰는 길로 접어들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1955년 청주에서 태어난 도종환은 군에서 제대한 뒤인 1984년 대구와 청주 지역 교직원 및 문인들과 함께 만든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흔들리며 피는 꽃’, ‘해인으로 가는 길’,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등을 발표했다.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등도 출간했다. 신동엽창작상과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대상, 백석문학상, 공초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박용철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시 창작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론이 있으신지요.
“특별한 원칙과 방법을 세워놓고 글을 쓰지는 않고요. 다만, 내면으로 도피하거나 시간 공간으로 도피하는 문학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문학과 예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만 리얼리즘 문학을 한다고 하더라도 예술성과 작품 그 자체가 아름다워야 합니다. 할 말을 하되 거칠지 않은 시여야 하고, 예술성과 사회성이 균형 잡힌 문장이어야 하지요.”
현실 정치에 몸을 담기도 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3선 국회의원을 거쳤고, 2017년 6월부터 2년 가까이 문체부 장관도 역임했다.
―시인 출신으로 이례적으로 3선 국회의원과 문화체육부 장관을 역임하셨는데요.
“시를 쓰던 사람이 정치적인 역할을 부여받아서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게 고맙고, 특히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보람찬 일은 무엇이었는지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체를 파악해 블랙리스트를 작성 시행한 사람들이 처벌받고 다시는 이유 없이 배제되거나 차별받거나 검열받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든 것이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친일 역사 교과서가 채택되지 않도록 하고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던 박근혜정부의 시도를 막아낸 것도 보람 있었고요. 세 번째론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를 도입해 예술인들이 공연이나 촬영이 없을 때 실업급여를 받도록 해 기본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만명 이상의 예술인들이 밥을 굶지 않도록 한 제도인데, 굉장히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오디오부터 켜고 마음을 치유하는 명상 음악을 듣는다. 매일 한두 시간 정도 오디오를 틀어놓는다.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기도 하고, 고요 속에서 시의 언어를 만나기도 한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남성의 평범하면서도 충만한 일상을 잔잔하게 그린 영화 ‘퍼펙트 데이즈’ 주인공처럼.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연예인은 고급 거지” 300번 실직 체험 황현희, 100억 만든 ‘독한 공부’
- “13억 빚 정리 후 작은 월세방이 내겐 우주”…김혜수·한소희의 ‘용기’
- 보일러 없던 월세방서 ‘2000억’…배용준, 욘사마 버리고 ‘투자 거물’ 됐다
- “45만 월세의 반란” 박군, 30억 연금 던지고 ‘15억 등기부’ 찍었다
- 냉동실에 오래 둔 고기 하얗게 변했다면 먹어도 될까
- ‘200배 수익설’ 이제훈, 부동산 대신 스타트업 투자한 이유
- 정비공 출신·국가대표 꿈꾸던 소년이 톱배우로…원빈·송중기의 반전 과거
- “언니 변호사, 동생 의사” 로제·송중기 무서운 ‘집안 내력’ 보니
- “포르쉐 팔고 모닝 탄다… 훨씬 편해”…은혁·신혜선·경수진이 경차 타는 이유
- 연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하정우·차인표·유준상 ‘제2의 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