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 정산에 돈줄 막혀…쿠팡 입점 판매자는 물류센터로 내몰렸다

서혜미 기자 2025. 12. 1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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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제국의 그늘
시장 지배력 남용한 ‘슈퍼 갑’
지난 8일 서울 시내의 한 쿠팡 물류센터 앞 배송차량 모습. 연합뉴스

연 매출 30억원 규모 판매업체의 ㄱ씨는 지난 2021년 로켓배송(쿠팡이 직매입해 새벽배송)으로 건강관리용품을 공급하다가 쿠팡으로부터 납품가 인하 압박을 받았다. ㄱ씨는 “당시 쿠팡이 네이버 (가격 비교 서비스) 최저가보다 낮은 가격에 맞추라고 요구했다. 그 가격으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 금액으로도 납품하겠다는 업체는 많다’고 압박했다”고 했다. 그는 “두 차례 납품했지만, 불가능한 가격도 ‘되게 만들라’는 식이라 역마진을 지속할 순 없어서 결국 납품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외국계 브랜드의 제품을 국내 유통하는 한 총판업체도 최근 쿠팡으로부터 직납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이 업체는 수차례 제안을 거절했다. 총판이 직접 쿠팡에 공급하면 단기적 이익은 있을 수 있으나, 오랜 기간 거래해온 국내 대리점들이 큰 피해를 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거절에도 쿠팡 쪽 인사는 수차례 업체를 찾아와 ‘그렇다면 외국계 브랜드 본사와 직접 거래하겠다’는 압박성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류센터 확충, 직매입 기반의 풀필먼트 시스템(물류업체가 상품 입고·보관·포장·배송·반품까지 대행하는 통합 물류 서비스)을 앞세워 새벽배송으로 국내 유통 판도를 장악한 쿠팡은, 그 과정에서 각종 사회적 비용과 부담을 판매자·납품업체·노동자·소비자 등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쿠팡식 혁신’과 편리함, 최저가라는 소비자 후생 이면엔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이용한 가격 후려치기, 알고리즘 조작, 노동자 사망 등 다양한 부작용이 켜켜이 쌓여 있다는 지적이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쿠팡을 둘러싸고 불거진 논란에 대해 “쿠팡이 10여년 동안 성장하겠다고 꾹꾹 눌러놓은 병폐들이 지금 한번에 다 터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쿠팡 물류 알바 뛰는 셀러

쿠팡은 미국 기업 아마존의 ‘플라이휠’(Flywheel) 전략을 벤치마킹해 빠른 배송과 편리한 반품·교환 서비스로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이를 기반으로 판매자를 모아 기업 규모를 키워왔다. 문제는 이렇게 몸집을 불린 쿠팡이 경쟁력 유지를 위해 입점 판매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쥐어짜고 있다는 것이다.

판매자들은 쿠팡의 여러 거래 관행 중에서도 ‘지나치게 늦은 정산’을 가장 큰 부담으로 꼽는다. 쿠팡은 직매입(로켓배송) 상품의 판매 대금을 60일째에 정산하는데, 대규모유통업법상 직매입 정산 기한을 ‘60일 이내’로 규정하고 있어 위법은 아니다. 그러나 대형마트·백화점 등 전통 유통기업의 직매입 정산 주기가 20~40일 수준임을 고려하면 판매자의 자금 유동성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자금 압박에 물품을 납품하는 셀러들이 쿠팡에서 아르바이트를 뛰는 일까지 생긴다. 2023년에 쿠팡에 처음 입점한 판매자 ㄴ씨는 올해 초 3개월간 쿠팡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7시까지 업무를 하다가, 저녁 8시에 셔틀버스를 타고 쿠팡 물류센터로 넘어가 일을 했다. ㄴ씨는 “물건이 잘 팔려도 쿠팡의 최종 정산이 늦어 자금 회전이 안돼 제품을 추가로 조달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뒤늦게 3천만원을 대출받아 물건을 조달했지만, 며칠 물건이 품절된 사이 ‘품질 점수’가 내려가 상품이 상단에 노출되지 않았고 판매량도 뚝 떨어졌다. 3천만원어치 상품은 고스란히 재고로 남았다. 결국 ㄴ씨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ㄴ씨는 “쿠팡 정산이 늦은 탓에, 물건값을 조달하기 위해 대출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판매자가 많다. 정산 부담이 커도 사람들이 그만큼 쿠팡을 많이 사용하니, 판매자도 쿠팡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성장장려금·광고비 등 각종 비용 요구도 끊이지 않는다. 2023년부터 쿠팡에서 포장용품을 판매했던 ㄷ씨는 “입점 1년 뒤부터, 매출 10%를 성장장려금으로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 거절하니 쿠팡에서 발주가 안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6개월간 버티던 ㄷ씨는 결국 매출의 8%를 성장장려금으로 내기로 계약했다. 이후 2024년 하반기, 2025년 상반기 두 차례 단가 인하 요구가 있었다. 지난 4월 ㄷ씨는 결국 폐업했다. ㄷ씨는 “성장장려금 내고, 광고 돌리고, 단가도 인하했다. 이걸 어떻게 버텨내냐”라고 하소연했다.

쿠팡 앞에선 대기업도 ‘을’

쿠팡의 압박은 대기업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씨제이(CJ)제일제당 등이 쿠팡과 벌인 갈등 사례가 대표적이다. 쿠팡은 2022년 씨제이제일제당의 햇반·비비고 등 주요 제품의 단가 인하, 물량 확대를 요구했지만, 씨제이제일제당이 이를 거부하자 로켓배송용 직매입 발주를 중단했다. 양쪽은 약 1년8개월의 휴지기를 거친 뒤 거래를 재개했다. 이 밖에도 쿠팡은 엘지생활건강, 존슨앤드존슨, 유니레버 등 글로벌 기업과도 유사한 갈등을 벌였다. 한 식품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은 그나마 부딪치고 버티며 협상을 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과 개인 판매자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납품업체 쥐어짜기와 불공정 거래 관행은 경쟁당국과의 마찰로 이어지고 있다. 쿠팡은 자체 브랜드(PB) 상품 등을 상위에 노출하도록 알고리즘을 조작하고 임직원을 동원해 후기를 작성한 혐의로 지난해 6월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1628억원을 부과받았다. 현재 공정위는 쿠팡의 유료 서비스인 ‘와우 멤버십’에 쿠팡이츠와 쿠팡플레이 등 부가 서비스를 묶어 판매한 방식이 ‘끼워팔기’(묶음판매)에 해당한다고 보고, 관련 제재 절차에도 착수했다. 쿠팡의 배달앱인 쿠팡이츠는 입점업체에 음식 가격과 각종 혜택을 경쟁사와 같은 수준으로 낮추도록 하는 ‘최혜대우’를 강요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쿠팡의 시장 영향력이 막대하고, 설사 불공정 행위를 저지르더라도 조사와 제재까지 최소 2~3년이 소요되니 입점업체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탈팡’하기 어렵다”며 “현행법으로는 쿠팡의 불공정 행위를 적시에 규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회가 조속히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법(한국형 디지털시장법(DMA)) 제정 등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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