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혁명 재판소 만든 걸 후회한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선 “한 세대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거대한 회고전”(파이낸셜타임스)이 열리고 있다. 신고전주의 거장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 사망 200주기 특별전이다. 루브르가 소장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1807), ‘테르모필레 전투의 레오니다스’(1814),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1785) 같은 대표작뿐 아니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대여한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 등 세계 각지의 다비드 작품 100여 점을 망라한다.
전시의 클라이맥스는 벨기에 왕립미술관에서 온 ‘마라의 죽음’(1793)이다. 1793년 7월, 로베스피에르, 당통과 함께 자코뱅 혁명 정부 3인방이던 마라가 목욕 도중 암살당한 장면을 그렸다. 그러나 사실과 다른 그림이다. 현장은 혈액, 집기 등으로 어수선했고 피부병 환자였던 마라의 살갗도 그림처럼 매끈하지 않았다. 자코뱅 당원이자 국민공회 의원으로 루이 16세 처형에 찬성표를 던진 다비드는 사실을 과감히 변형·왜곡한다. 루브르는 “마라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묘사한 이 그림은 혁명의 선전 도구였다”고 했다.
루브르·베르사유가 각각 소장 중이던 복제품 두 점과 원화가 이루는 삼각형 정중앙에 서면, 당시 프랑스 사람들이 느낀 전율을 짐작할 수 있다. “인민의 적에게 줄 것은 죽음밖에 없다”며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다가 암살된 마라는 이 그림 한 점으로 무결한 순교자로 각인됐다. 프랑스 혁명 시기 단두대에서 죽은 사람이 수만 명이라거나, 혁명 이후 수십 년간 민중은 전쟁과 식량난에 시달렸다는 참혹한 진상은 다비드식 ‘선동 예술’의 위력에 가린 면이 있다.
마라가 죽기 몇 달 전인 1793년 3월 혁명 재판소를 만든 사람이 당통이다. ‘인민의 적’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소문만으로도 고발할 수 있었고 밀고와 모함이 판을 쳤다. 혁명 재판소에서 단두대로 간 사람이 2500명가량이었다. 나중에는 당통마저 로베스피에르의 눈 밖에 나 법정에 섰다. 1794년 4월, 당통은 혁명 재판소 창설을 후회한다며 “다음은 로베스피에르 당신 차례”라는 말을 한 뒤 목이 잘린다. 공포에 지친 민심은 석 달 뒤 로베스피에르도 단두대로 보냈다. “혁명은 사투르누스와 같아서 자기 자식들을 잡아먹는다.”(게오르크 뷔히너 ‘당통의 죽음’)
루브르는 이번 전시에서 혁명의 주역으로 역사의 부침(浮沈)을 감당한 다비드의 면모를 재조명한다고 했다. 로베스피에르 처형 이후 투옥됐고, 그 뒤엔 나폴레옹을 섬겼다가 부르봉 왕정이 복고되자 브뤼셀로 피신해 거기서 죽은 다비드의 여정을 관조하는 전시였다. 암살, 처형, 그리고 망명. 법원·검찰을 갈아엎어 불리한 재판은 중단한 채 ‘내란 재판소’에서 ‘계엄 가담자’를 색출하겠다는 한국의 집권 세력은 200년 전 프랑스가 치른 공포 정치의 대가를 헤아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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