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저널리즘을 위하여 [미디어 전망대]

한겨레 2025. 12. 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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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

언덕 애(厓)에 기린 린(麟). 화가인 아버지는 민중의 한을 노래한 시집에서 딸의 이름을 떠올렸다.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 본 이들’이라는 의미였다. 이름을 닮았을까. 딸 애린은 “가장 빛나지 않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연일지라도 귀 기울여 구조의 문제를 밝혀내겠다”는 포부를 지닌 기자가 되었다.

“탑승자 명단에 김애린이 있습니다.” 긴급 문자 한줄에 한국방송(KBS) 광주보도국은 무너져 내렸다. 2024년 12월29일, 평범했던 휴일 아침. 전남 무안공항에 착륙하던 방콕발 제주항공 여객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철근 콘크리트 둔덕을 들이받고 폭발했다. 탑승객 179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 참사였다. 김애린 기자의 시간도 멈춰버렸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불법 계엄과 조기 대선으로 이어진 정치적 격랑 속에서 어느 때보다 빠르게 뉴스에서 밀려났다. 우리 사회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기억하고 애도할 틈도 없이.

유머와 해학이 넘쳤던, “아무리 암담한 상황이 닥쳐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던 아빠는 딸의 죽음 앞에서 무너졌다.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진상 규명을 위해 거리로 나섰다. 국회 앞과 광주송정역, 사고 현장을 오가며 “죽음의 이유를 설명하라”고 외쳤다.

그러나 참사 발생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진상 규명은 제자리다. 경찰은 추가 입건만 반복할 뿐, 구속 혐의도 특정하지 못해 수사는 지연되고 있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는 사실조사 보고서도 없이 공청회를 추진했다가 유족들의 삭발과 노숙 농성으로 무산됐다. 항철위를 국토교통부 산하에서 국무총리 소속 독립기구로 전환하는 법안은 12월4일에야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뒤늦게나마 진상 규명의 문은 열렸지만, 사고 발생 1년 만에 조사기구를 다시 꾸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는 사이 또 하나의 안타까운 부고가 전해졌다. 김애린 기자의 부친이자 민중미술가인 김경학씨가 지난 11월23일 세상을 떠났다.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고인은 아픈 몸에도 진상 규명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섰다. 어떤 사실도 확인하지 못한 채 떠났다는 게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참사 1주기를 한달 앞둔 시점이었다.

김애린 기자는 ‘잘하는 기자'로 성장하길 꿈꾸며, 더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 늘 열정적이었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저널리즘혁신학과에 진학해 매주 9시간 강의를 듣고,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힘든 일정 속에서도 저널리즘 수업을 “유일한 낙”이라 말했다. 그 시간을 “마음에 별이 박히는 기분”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기자 일을 사랑했다.

그는 대학원 지원서에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밀려나 보이지 않는 사람과 사건 곁에 서겠다.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라는 어느 소설가의 말을 기억한다. 사안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그네처럼 나란한 마음으로 일하겠다.”

소설 ‘경애의 마음’은 고등학교 시절 화재 사건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경애와, 같은 사고 현장에서 단 한명의 소중한 친구를 잃은 상수가 서로의 연결고리를 모른 채 만나며 시작된다. 경애는 ‘불량한 애들이 술을 마시다 죽었다’고 피해자를 비난하며 추모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현실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이는 1999년 청소년 등 56명이 숨진 인천 호프집 화재 참사를 극화한 것이다. 비극은 이렇게 되풀이된다.

광주문화방송(MBC) 기자 출신 작가 김인정은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생각에 매달리지 않고, 나와 닮지 않은 것들을 향해, 닮음을 넘어 다름과 접속하는 공감이 가능하다는 믿음에 대해 말했다. 김애린 기자가 말한 ‘그네처럼 나란한 마음’과 다르지 않다. 아마 그것이 김경학씨가 딸의 이름 ‘애린’에 담아 전하고 싶었던, 삶을 ‘경애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 마음이야말로 참사의 재발을 막는 애도의 저널리즘에 꼭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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