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힐링속으로-경북을 걷다] 93. 의성 고분군·박물관·화석산지

김동현 기자 2025. 12. 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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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기 고분·1억 년 발자국 만나는 시간의 길
▲ 경북 의성 금성면 조문국사적지에서 새하얀 적설이 덮인 고분 두 기가 한겨울 햇살 아래 고요한 실루엣을 드러내며 장대한 설원 풍경을 이루고 있다. 의성군

겨울의 눈빛이 번지는 들판 너머로 봉분의 윤곽과 공룡 발자국이 한 경로 위에서 이어진다.

그 길 끝에는 2000년 전 고대 왕국의 무덤과 1억 년 전 공룡의 흔적이 나란히 누워 있다.

경북 의성 금성면은 인간의 역사와 지구의 시간이 한 지층 위에 포개진 국내에서도 유례 드문 공간이다.

조문국(召文國)의 숨결이 남아 있는 고분군에서 출발해 백악기 공룡의 보폭을 따라 걷는 이 길은 고분의 곡선과 화석의 자취를 같은 발걸음 위에서 밟을 수 있는 대표적인 역사·지질 융합형 탐방 코스다.

시간의 층위가 전혀 다른 두 유산이 맞닿는 이곳은 겨울이 깊어갈수록 '시간의 길'이라는 이름이 더욱 또렷하게 떠오른다.

▲ 경북 의성군 금성면 조문국사적지에서 드론이 담아낸 항공뷰에는 374기 고분군과 조문정, 탐방로가 초록 능선을 따라 유려하게 펼쳐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고대 조문국 중심지가 원형 그대로 드러난다. 의성군

△ 의성금성면고분군(조문국사적지), 왕국의 언덕 위에 서다.

금성산 능선에 자리한 의성금성면고분군(조문국사적지)은 서기 185년 신라에 병합되기 전까지 독자적인 왕국을 이뤘던 조문국(召文國)의 중심지다.

지금도 374기의 봉분이 완만한 언덕을 따라 이어지며, 천년의 시간을 고요히 품고 있다.

잔디가 덮인 고분군은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가진다.

봄엔 작약과 유채가 언덕을 채우고, 가을엔 코스모스가 들판을 덮는다. 겨울이면 봉분마다 흰 눈이 내려앉아, 왕국의 잠을 덮은 듯 장엄하다.

고분군 한가운데 자리한 조문정(召文亭)에 오르면 고분의 곡선이 들판의 결과 맞물려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바람은 그 위를 스쳐가며 왕국의 숨결을 되살린다.

▲ 경북 의성군 금성면 조문국사적지에서 노을빛이 들판을 물들이는 시간, 탐방객들이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초록 언덕과 고분군이 겹친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의성군

△ 낮에는 역사를, 밤에는 빛을 걷는다.

조문국사적지는 '걷는 박물관'이다.

길은 완만하고 폭이 넓어 누구나 걸을 수 있다. 낮에는 햇살이 봉분을 따라 흐르고, 밤에는 볼라드 조명이 켜져 은은한 불빛이 길을 비춘다.

의성군 관계자는 "야간에도 고분을 볼 수 있도록 조명이 설치돼 있다"며 "겨울철에는 서리와 눈으로 길이 미끄러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별도의 설경 조명은 없지만, 하얀 눈이 내린 고분군은 자연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다. 빛과 그림자가 얽힌 봉분 사이를 걷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한 장면으로 겹친다.

▲ 경북 의성군 일대 발굴 현장에서 흙층 속에 묻혀 있던 금동관모 조각과 금속 장신구편이 원형을 유지한 채 드러나며, 조사단이 문화재 출토 지점을 확인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기록됐다. 의성군

△ 조문국박물관, 왕국의 삶을 복원하다.

사적지에서 불과 1㎞ 거리에 자리한 의성조문국박물관은 고대 조문국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전시하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고분군에서 발굴된 금동모관, 조익형금동관, 세환이식(누금기법 귀걸이) 등 왕릉급 유물이 전시돼 있다.

1층의 열린수장고에서는 유물 보관 과정을 직접 볼 수 있고, 2층 상설전시실에는 토기·무기·장신구·생활도구 등 선조들의 지혜와 예술성이 빼곡히 담겨 있다. 3층 기획전시실에서는 현재 '이수지 작가 특별전(2025년 9월15일~2026년 1월 25일)'이 열리고 있다.

이수지 작가는 한국인 최초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자로, 그의 원화와 영상이 어린이 관람객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관람객은 박물관 옆 상상놀이터에서 '고대의 성'과 '모험의 성'을 체험할 수 있다.

여름엔 야외 물놀이장도 개장해 역사와 휴식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 경북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지에서 보호막 아래 드러난 경사면 암반에 다수의 공룡 발자국이 선명한 형태로 남아 있어 지질 시대의 보행 흔적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다. 의성군

△ 제오리 화석산지, 1억 년 전 공룡의 보폭.

의성조문국박물관에서 남쪽으로 10분 거리의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는 1억 년 전 백악기의 호수 평야가 남긴 지질 유산이다.

384개의 발자국과 35개의 보행렬이 보호각 아래 보존돼 있으며, 육식공룡의 발톱 자국과 초식공룡의 둥근 발자국이 공존한다.

공룡의 보행 간격을 통해 당시 생태 환경과 이동 속도까지 유추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지구의 교과서', 연구자에게는 '살아 있는 백악기 실험실'로 평가된다.

발자국 사이를 따라 걸으면 공룡의 심장 박동에 맞춰 시간이 되감기는 듯한 착각이 스민다.

▲ 경북 의성군 금성면 만천리 아기공룡 화석산지에서 전망데크 앞 암반층에 새겨진 둥근 발자국과 균열 지형이 주변 숲과 함께 원형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 지상 촬영으로 담겼다. 의성군

△ 만천리, 아기공룡의 가족이 남긴 길.

제오리에서 남쪽으로 2㎞ 떨어진 만천리 아기공룡 화석산지는 면적 210㎡의 암반 위에 126개의 발자국과 8개의 보행렬이 남아 있다.

그중 두 마리 새끼 공룡의 보행렬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다.

작은 보폭이 일정하게 이어진 흔적은 어미를 따라 걷던 새끼 공룡의 보행으로 추정된다.

암반층의 사암과 실트암 교호 구조, 건열(마른 진흙 갈라짐) 흔적은 당시 백악기의 건조한 기후와 범람원의 환경을 생생히 증언한다.

단단히 굳은 진흙 위를 걸었던 공룡들의 움직임이 그대로 암반 위에 '시간의 문장'으로 새겨져 있다.

어린이에게는 과학적 호기심을, 연구자에게는 지질학적 가치를 주는 이곳은 의성 금성면이 품은 '지구의 도서관'이라 불린다.

▲ 경북 의성군 금성면 만천리 아기공룡 발자국 화석지에서 드론 촬영 화면이 울창한 숲 사이로 드러난 암반 위 1억 년 전 새끼 공룡 보행렬을 위에서 포착해, 화석 보호 울타리와 주변 식생 분포까지 한눈에 담아냈다. 의성군

△ 제오리-만천리, 지질트레킹 코스로 잇는다.

의성군은 2026년을 목표로 제오리 고분군 일대와 만천리 공룡 화석산지를 잇는 지질트레킹 코스를 조성할 계획이다.

총 20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야자매트 설치, 노면 정비, 신규 이정표 보강 등을 통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시간의 길'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정비 구간은 기존 안내 체계를 토대로, 만천리 산116·915-7 일대에 이정표를 새로 세우고 자연 지형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탐방 동선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공룡 발자국을 형상화한 바닥 패턴과 구간별 해설판을 도입해, 걷는 것만으로도 지질·역사 해설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도록 설계한다는 구상이다.

코스가 완성되면 조문국사적지와 의성조문국박물관, 제오리 화석산지, 만천리 아기공룡 화석산지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 '의성형 역사·지질 융합 힐링벨트'가 본격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다.

고대 왕국의 흔적과 1억 년 전 공룡의 발자국을 하루에 함께 밟을 수 있는, 이른바 '시간 여행자의 길'이 열릴 전망이다.

▲ 경북 의성군 금성면 조문국사적지에서 겨울철 얕게 쌓인 눈과 누런 갈대빛이 고분군의 곡선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을 담아, 사적지 내부 탐방로·전망데크·조문국박물관 돔형 건물의 배치를 계절 대비로 강조한 장면이 촬영됐다. 의성군

△ 시간이 들려주는 길.

의성금성면고분군(조문국사적지)과 공룡화석산지는 '걸으며 배우는 야외 교과서', '살아 있는 시간의 박물관'이다.

봉분 위로 부는 바람, 발밑에 새겨진 공룡의 흔적, 그리고 그 둘을 잇는 길 위에서 여행자는 시간을 따라 걷는 역사의 독자이자 지질의 탐험가가 된다.

겨울의 들판을 걷는 발자국마다 2000년의 역사와 1억 년의 지구가 겹쳐 울린다. 그 길에서,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시간의 행인(行人)'이 된다.

▲ 경북 의성군 금성면 조문국고분군에 함박눈이 쉴 새 없이 내려 고분 봉우리와 소나무 숲 전체가 순백의 곡선으로 잠기며, 고대 왕국의 능선이 겨울 안개 속에서 유적지 특유의 고요한 시간층을 드러내는 장면. 원덕희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