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를 사랑한 건축 거장, 하늘에서 물고기들과 놀고 있을까

자유롭게 드로잉한 선이나 춤추는 듯한 몸짓을 구현한 건물 디자인으로 지난 40여년간 세계적 명성을 누린 미국 건축 거장 프랭크 게리가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집에서 지병인 호흡기 질환으로 96살의 삶을 마쳤다. 스페인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체코 프라하 댄싱 하우스, 로스앤젤레스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등 명작을 남긴 그는 종묘를 비롯한 한국 고건축유산을 답사하며 각별한 관심을 보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생전 지인인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추모 글을 보내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삼성미술관은 설계만을 끝으로 그의 손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 많은 악재가 겹쳤다. 약속한 운현동 터를 내놓지 않은 한 기업체와의 매각 협상 불발과 당시로는 파격적인 그의 건축 양식에 대한 주변의 비호감, 그리고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위기 상황까지 터지자 결국 삼성 쪽은 손을 들고 말았다. 이후 이 사업은 다른 3명의 세계적 건축가(렘 콜하스, 장 누벨, 마리오 보타)의 손으로 넘어가 2004년 ‘리움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그들은 모두 게리의 친구들이었다.

그중 가장 절친한 사이였던 누벨은, 2013년 게리로 거의 확정된 중국 베이징 국립미술관 설계를 프랑스 정부의 외교력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따내면서 다시 한번 그를 울렸다. 건축계의 비정함과 살벌함을 실감하는 사건들로 기억된다. 발표 직후 그는 베이징에서 서울로 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또 하나의 설계로만 남은 리움 건물 강당에서, 마치 꿈을 노래하듯 그가 설계했으나 실현되지 못한, 또 하나의 아름다운 비운의 작품인 베이징 국립미술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잊지 못할 슬픈 순간이었다.
2019년 그가 방한한 건 서울 강남 청담동에 들어선 루이비통 메종 서울의 개관 행사 참석을 위해서였다. 물론 그의 설계로 지어진 파리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의 연계선상에서 건축이 이뤄졌겠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놀랄 정도로 작은 프로젝트였다. 파티 내내 그는 거의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의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그가 애정한 한국에서는 세 건축 대가의 리움미술관과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디디피(DDP),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아모레 사옥, 헤어초크와 드뫼롱 듀오의 송은미술관 등 굵직굵직한 건축 사업들이 벌어졌고, 그는 이미 90살이 되어 있었다. 상처받기 쉬운 게리의 여린 마음을 난 잘 알고 있었기에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한편 1997년 10월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개관식에서 보았던, 세상 다 얻은 것 같은 그의 행복한 미소를 기억하면서 ‘1989년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게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내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었다.

게리는 늙어가면서도 어린애 같은 천진성과 장난기를 잃지 않았고, 유년 시절의 경험과 추억이 삶과 작품의 일부가 되었던 사람이다. 난 그런 그가 좋았다. 캐나다 유대인 마을에서의 어린 시절, 할머니가 식탁에 올리려 시장에서 사 와 욕조에 풀어놓은 물고기들과 놀기를 좋아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을 때, 비로소 그의 건축 예술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다. 게리의 첫 국외 커미션 중 하나인 일본 고베의 피시 댄스 레스토랑(1986년)은 한마리의 거대한 물고기가 꿈틀대며 수직적으로 비상하는 듯한 ‘조각건축’이었다. 그는 조각과 건축, 가구까지도 분리해서 보지 않았다. 심지어 종묘에 들어섰을 때 첫 탄성이 “How sculptural, how democratic!”(이렇게도 조각적이고 민주적일 수가!)이었으니!

할머니의 물고기들은 그의 모든 주요 건물들, 자택 천장에 단 물고기램프 등에 사실적이든 추상적이든 어김없이 등장한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네르비온강에서 유영하는 한마리의 거대한 물고기! 거장으로 향한 여정의 모든 작품들에서 유선형의 리듬과 비늘들의 은빛 반짝임으로 어린 시절의 물고기들을 추억한 나의 사랑하는 친구. 이제 저 하늘에서 그 물고기들과 놀고 있는 그를 보는 듯하다. 그의 영혼이 손짓하고 있다. “Hongnam, I will be waiting for you. Let’s build a beautiful museum together.”(홍남, 널 기다리고 있을게. 우리 함께 아름다운 뮤지엄을 지어보자고.)

김홍남 이화여대 명예교수·전 국립중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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