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초점] 대통령과 지방시대위원장은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신헌호 기자 2025. 12. 9. 17:1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잊혀져 가던 TK 통합, 이재명 대통령 발언 화제
이 대통령, “대구시장 궐위 상태 TK 통합 기회”
전국 최초 광역단체 통합, 경북 북부권 반대 등
광역 연합 구성 강한 드라이브 지방시대위원회
대구시 권한대행 체제 부담 작용…내로남불 여지
지난해 열린 대구경북 행정통합 설명회. 대구일보 DB

지난해 대구·경북 지역사회는 대구경북특별시를 목표로 한 '행정통합' 추진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탄핵정국, 조기 대선 등의 여파로 전국 최초로 추진되던 광역지자체 간 통합의 시계는 멈췄다. 그렇게 잊혀져 가던 TK 통합은 지난 8일 열린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의 업무보고에서 다시 등장하면서 세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과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이 이어간 대화의 논점이 어긋나면서 지역사회에서는 기대보단 실망감이 크다는 분위기다. TK 통합이 중단된 이유가 '왜곡'됐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대구시장 자리가 공석이기에 통합이 빨리 될 수 있다'는 것으로 들렸다. 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인 광역단체장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일부 사라진 지금이 적기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대구가 무주공산이 됐다고 해서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니냐'라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이 대통령은 '통합'을, 김 위원장은 '연합'을 이야기하면서 벌어진 해프닝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5일 호텔수성에서 열린 '5극 3특, 함꼐 그리는 지역의 미래' 대구·경북 권역 간담회에 참석한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과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 등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대구시 제공

TK 통합 과정 알면 이상한 대화

TK 통합 추진 과정을 잘 아는 공무원, 기자, 시·도민의 경우 이재명 대통령과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의 대화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함을 느낄 수 있다.

"대구 쪽은 연합을 만들고 싶은데, 대구시장이 지금 궐위 상태니까 행정부시장이 권한대행으로서 그걸 할 수 있나. 이 고민을 하고 있더라구요."(김 위원장)

"제가 보기로는 대구 쪽이 아니라, 경북 쪽에서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닌가요? 주민들의 반대가 상당히 또 조직화하고 있는 것 같은데…."(이 대통령)

김 위원장은 5극 3특의 핵심인 특별지방자치단체(연합) 구성에 있어 권한대행 체제인 대구시의 어려움을 언급한 대목이다. 이에 반해 이 대통령이 언급한 내용은 'TK 통합'이 멈춰 서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이처럼 논점이 어긋나다 보니 대통령과 지방시대위원장의 어색한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김 위원장은 "통합은 시일이 걸리고 어려우니 사업을 함께할 수 있는 연합을, 특별지자체를 만들고 싶은데 대구시장 권한대행 입장에서는 본인이 판단하기 어렵다. 대통령께서 지시를 해 주시면 바로 시작될 것 같긴 하다"고 말했고, 이 대통령은 "이럴 때가 찬스 아니냐. 행정통합 문제든 연합 문제는 이거는 마지막에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답했다.

이 대목에서도 김 위원장은 특별지자체 구성에 대한 내용을 거론했다. 이 대통령은 행정통합과 연합을 동시에 언급하면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강조했다. 이 대목은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TK 통합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언론매체는 관련 기사 헤드라인을 '대구시장이 궐위상태이기에 지금이 TK 통합의 기회'라는 어조로 뽑았다.
지난해 10월 대구시, 경북도, 행안부, 지방시대위가 정부서울청사에서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위상을 갖는 대구경북특별시로 통합하기로 하는 4자 합의문에 공동서명하고, 서로 손을 맞잡았다. 행정안전부 제공

특별법까지 준비됐던 TK 통합 왜 멈췄나

윤석열 정부 시절 홍준표 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통합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한 갈등이 없었기 때문이다.

홍 전 시장은 일찍이 대구경북특별시장직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기자간담회 등에서 "통합이 추진될 수 있는 것은 내가 (특별시장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발언을 입버릇처럼 했다.

광역지방자치단체 두 곳이 통합하면 단체장 자리가 두 개에서 한 개로 줄어드는데, 이때 단체장 자리를 놓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펼쳐진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홍 전 시장은 특별시장보다는 대권에 관심이 더 많았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합심해 중앙정부로부터 이양받을 권한과 특례를 담은 특별법안을 준비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렇다면 TK 통합이 멈추게 된 진짜 이유가 뭘까. 대구시는 광역단체에서 할 수 있는 행정절차를 끝내놓자는 입장인 반면, 경북도는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 약속이 먼저였다.

이에 대구시는 통합에 대한 대구시의회의 동의를 신속하게 받았고, 경북도는 경북도의회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 이 대통령이 알고 있는 대로 경북 북부권의 반발이 심했다. 경북도는 북부권을 설득하려면 권한 이양 약속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라는 의견 대립으로 인해 시간만 흘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그 결과는 탄핵과 정권교체로 이어지는 바람에 TK 통합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우동기 전 지방시대위원장은 대구일보와의 통화에서 "시·도 연합은 협의체다. 대구도 그것을 하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통합으로 바로 간 것"이라며 "통합이 되려면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 등 특별법을 통과시켜 줘야 하는데,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없으면 법안 통과는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호텔수성에서 열린 '5극 3특, 함께 그리는 지역의 미래' 대구·경북권역 간담회에 참석한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지방시대위, 강한 드라이브⋯난처한 대구시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이 '5극 3특 실현을 위한 낮은 단계의 통합', 즉 특별지방자치단체(연합) 구성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대구시는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5극 3특이 국정과제로 채택되자, 대구시와 경북도는 대구·경북 공동협력TF를 가동하는 등 민선 9기 시작과 동시에 TK 특별지방자치단체가 출범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지방시대위원회의 기조는 '선 협력(연합) 후 통합'이었는데, '병행 추진도 가능하다'고 바뀌었다. 행정통합으로 가기엔 시간이 걸리니 연합부터 하면서 생활권과 신성장동력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 같은 기조 변화가 이번 지방시대위원회 업무보고에서도 확인됐고, 대구시는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특별지자체를 만들고 싶은데 대구시장 권한대행 입장에서는 본인이 판단하기가 좀 어렵다. 대통령께서 지시를 해 주시면 바로 시작될 것 같긴 합니다"라는 김 위원장의 발언 탓이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논쟁거리가 발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 권한대행과 대구시장 권한대행을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라는 관점에서 보면 엄연히 '내로남불'이다.

과거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한 것과 관련해 '월권' 논란이 일었던 것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당시 법제처의 헌법 주석서는 대통령의 궐위나 사고로 인한 권한대행의 직무범위에 대해 '현상유지가 정당하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현재 김정기 권한대행은 시장의 공백 속에서 '현상유지 행정'에 집중하고 있다. 김 대행이 강조하는 현상유지 행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통해 현상의 악화를 막는 것'이다.

여기서 '적극'이라는 단어를 특별지방자치단체 출범과 연관시키기는 어렵다. 권한대행 입장에서는 대구시장의 권한을 특별지자체에 넘겨야 하는데, 향후 정당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서다. 권한대행을 맡은 공직자 한 명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사안이다.

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Copyright © 대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